2012. 2. 28. 17:58ㆍ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다.고향, 추억)
곤충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사슴벌레다. ‘벌레’라는 말이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사슴벌레를 한번 보면 누구나 다 애착을 가질 거다. 이름으로야 하늘소나 장수하늘소가 훨씬 멋지지만 실제로 본다면 사슴벌레가 더 멋지다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슴벌레나 하늘소나 다 ‘딱정벌레목’에 속하지만 ‘과’에서 나누어진다. 사슴벌레는 턱이 발달하여 사슴뿔처럼 멋지게 보여 그런 이름을 갖고 있다. 그게 뿔이 아니라 턱이라는 것을 안 것은 최근의 일이다. 사슴벌레는 마치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걸친 장수와 같은 멋진 몸매를 가졌다. 갈색도 있다고 들었으나 내가 본 것은 전부 검은 색이었고 윤기가 흘러 정말 멋진 모습이었다. 무척 강인하게 생겼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온순하여 나무수액을 먹는 초식성이다. 내게 사슴벌레를 처음 갖게 해 주고 해마다 잡아다 준 친구가 광제에 살던 우리 반 광석이다.
광석이에 대한 얘기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르다. 벌써 세상을 뜬 지가 20년이 넘었는데도 초등학교 동창들 사이에서 여러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그만큼 광석이가 비중이 컸다는 얘기로 들린다. 우리 친구들이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었다면 아마 거기 나오는 주인공인 ‘엄석대’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나는 전혀 아니라고 자신 있게 얘기하겠지만 충분히 그렇게 받아들일 친구도 있을 거다.
내가 광석이를 처음 만난 것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장곡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같은 반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그 때는 서로 잘 알지 못하고 지냈다. 하긴 나도 드러낼 것이 없었고 광석이도 평범한 아이였으니 서로 같은 반이었다고 해도 ‘그랬나?’ 하고 고개를 갸웃할 정도 쯤 된다. 그 때는 각 지역별로 반을 지정해 주던 때라 그렇게 추정할 뿐이다.
2학년 2학기에 오서 분교로 오고 3학년이 되면서 광석이와 친해졌다. 그 때는 우리 2학년이 두 반이었으나 3학년이 되면서 일부 아이들이 다시 장곡으로 가고 우리는 80명이나 되는 한 반으로 재편성되었다. 그리고 내가 학급 반장이 되었다.
내가 반장이 된 것에 대해서 아버지의 후광이었을 거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2학년 때부터 성적이 반에서 3등을 벗어난 적이 없다.
나야 싸움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싸움에서 1등은 단연 우리 동네 아이들이었고, 다른 마을에서 온 아이들은 힘을 쓰지 못했다. 설령 싸움을 잘 한다고 해도 텃세까지 있으니 당하기가 어려웠다. 그렇지만 광석인 싸움을 하지 않았어도 누가 귀찮게 하지 않았다.
광석이네는 우리 윗동네인 광제에서 살았다. 광제는 광성리 3구로, 광석이, 광삼이, 경순이, 우상이, 장룡이, 주몽이, 주원이, 용순이, 자순이, 주철이 형 등 남학생만 열 명이 넘었는데 그중에서 광석이가 우두머리 역할을 했다. 광석이는 광제 아이들 중에서 공부도 잘 하는 편이었고 덩치도 제법 컸었다.
내가 다른 동네까지 다 잘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광석이가 동네 애들을 괴롭히거나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광석이는 내가 알기로는 학교에서도 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고 다른 아이들을 괴롭혔다거나 무슨 갈취를 한 적이 전혀 없는데 다른 아이들이 광석이에게 거리를 두었다.
나는 그런 광석이와 학교에서 친하게 지냈을 뿐 아니라 수업이 끝나면 자기 집에 놀러 가자고 하여 광석이를 따라 광제로 자주 놀러 다녔다.
광제는 바로 오서산 아래라 우리보다 더 산골이지만 가을에 산과일하며, 이른 봄에 칡뿌리, 가재 잡기 등 먹고 놀 거리가 풍부했다. 그래서 나는 동네에서 놀기보다 광제에 가서 노는 것을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놀러 가면 다른 아이들도 다 잘 해주었고 우리 밭이 옻밭들에 있어서도 자주 갔었다. 밭에 심부름을 갔다가 잠깐 놀다 온다고 올라가곤 했었다.
광제 마을에 잔치가 있으면 나는 늘 광석이를 따라갔다. 내가 잘 모르는 어른들이라 해도 아버지를 모르는 분은 없으니까 어디를 가도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었고, 애들도 다 잘 해주어서 오히려 우리 마을보다 편했던 적이 많았다. 광제는 술에 대해 많이 너그러워 잔치를 하는 집에서는 초등학생들도 술을 마셨다. 내가 어려서 술을 많이 마셨던 거는 다 광제에 다니면서 술을 배운 것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석이는 봄이 되면 내게 칡뿌리를 캐어준다고 가자고 하여 자주 가기도 했다. 광제 애들은 멀리 안 가고 바로 동네 뒤에 가서도 칡뿌리를 잘 캐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칡을 캐러 가도 큰 것만 찾아서 캐는데 비해 광제 애들은 큰 것은 놔두고 작은 것으로 골라 캐는 것이 달랐다.
큰 것은 보기엔 그럴 듯하지만 묵어서 맛이 없고, 작은 것들이 씹기도 좋고 고소한 맛이 훨씬 강했다. 게다가 우리 동네에서는 칡뿌리를 캐려면 날을 잡아서 공덕재 너머로 멀리 갔지만 광제로 가면 바로 뒷산으로 가서 캐니 힘이 들지 않아서 좋았다.
가을이 되면 광제로 가자고 해서 밤을 많이 따줬다. 광제는 산 아래 동네라 집집마다 밤나무가 많았고, 동네에서 조금만 나가면 밤나무 밭들도 많았다. 그런 곳으로 둘이 밤 서리를 갔다가 들켜 내가 붙잡힌 적도 있지만 그일 말고도 자주 서리를 다녔다. 광석이네 집은 처음에는 아주 작은 집이었으나 나중에 이사를 간 곳은 크고 넓고 밤나무도 여럿 있어서 남의 것을 따지 않고도 자기네 밤을 가득 줄 수 있었다.
광석이가 세도를 부린 것은 5학년이 되고서부터였다. 세도를 부렸다기보다는 우리 반 남자 아이들이 광석이를 중심으로 모였고, 일을 저지른 뒤에는 항상 광석이가 있었다는 게 맞을 거다. 우리가 5학년 때에 반 아이들이 개구리를 잡아다 팔아서 교실 커튼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일이 있은 뒤에 우리는 1년 선배들도 우습게 알았고, 그 중심에 광석이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하고 광석이가 가깝게 지낸 것이 어떤 상승작용을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나는 내리 3년을 반장을 했고, 광석이는 부반장을 했다. 학교가 광성리에 있으니까 다른 마을 애들보다 광성리 애들이 텃세를 부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학년을 막론하고 다 광성리 1구 아이들이 좀 심하게 텃세를 부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도 우리 2회가 특히 심했다. 그런데도 아무도 광석이를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은 광석이에게 보이지 않는 무엇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와 광석이는 중학교도 같은 학교에 배정이 되어 3년을 같이 다녔다. 중학교는 광천에 있어서 오서산 아래에서 간 우리는 아주 변두리 취급을 받았다. 광천은 오랜 시간 상업도시로 명성을 이어왔고 장항선지역에서는 누구도 무시를 못하는 지역이었다.
광천 아이들도 그만큼 드세게 놀았다. 그러니 다른 지역에서 광천으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특별하지 않으면 기를 펴지 못하고 지내는 것이 그 시절의 일이었다.
처음에 중학교에 갔을 때는 아무래도 위축이 되어서 지냈으나 몇 번의 싸움이 계속 된 뒤에는 서로들 위치가 정립이 되어 상대를 인정하게 되었는데 그때 우리 오서 출신에서 먼저 자신의 위치를 찾은 사람이 광석이와 선교였다.
선교는 여러 차례 싸움을 하며 자리를 만들어 갔지만 광석이는 싸우지 않고도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광석이가 누구와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다른 아이들이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 노는 모습을 보이면 서로 기를 꺾기 위해서 싸움이 일어나기 쉬운데도 광석이를 집적거리는 아이들을 보지 못했다.
광석이네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서울로 이사를 갔다. 고등학교는 서울서 다닌다고 했지만 서로 만나지 못하다가 징병검사를 할 때에 만났다. 그러고서 헤어졌다가 우리는 다시 입영열차에서 만났다. 경후와 장룡이, 그리고 광석이와 나 넷이서 함께 103보충대로 갔다.
103보충대에서 다 헤어졌다가 다시 원주 제1하사관학교에서 광석이를 만났다. 입학기수가 다르고 중대가 달라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면 서로 얼굴은 볼 수 있었다.
광석이가 간암으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대학 2학년 때의 일이다. 너무 놀라운 소식에 광화문 부근에 있던 원자력병원으로 문병을 갔더니 이미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몸이 마를 대로 말라서 뼈만 남았고 말을 하기도 힘에 부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누가 광석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서 벽제로 갈 적에 따라 갔다. 그날이 음력 7월 보름이었다. 한줌의 재가 되어 나온 모습을 보니 너무 허무했다. 그때 처음 재가 된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
동창모임에 가면 광석이 얘기가 많이 나온다. 다 자기가 겪은 대로, 보았던 대로 얘기하는 것이니까 그 얘기들이 옳다 틀리다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나는 지금도 광석이가 좋은 친구였다는 거 말고는 다른 이야기를 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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