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까마귀가 더 반갑다지만

2012. 3. 1. 21:08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다.고향, 추억)

 

 

   

오서산은 충남 홍성군 장곡면과 광천읍, 청양군 화성면, 보령시 청라면의 경계에 우뚝 선, 금북정맥(錦北正脈)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금북정맥은 금강의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겠지만 그 시작은 경기도 안성의 칠현산에 갈래를 두고 있다. 거기서 시작되어 충남 천안의 흑성산, 온양의 광덕산을 거쳐 충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청양에서 활발하다가 마무리되는 곳이 주산(主山)인 오서산이다.

 

천안의 흑성산이 518.3미터, 온양의 광덕산이 699.3미터, 청양의 칠갑산이 560.6미터, 보령의 성주산이 680.4미터, 옥마산이 601.6미터, 월명산이 544미터이니까, 791미터인 오서산은 금북정맥 뿐이 아니라 중부 서해안에서도 가장 높게 솟아있는 산이다.

 

오서(烏棲)라는 이름은 까마귀가 깃들여 있다는 뜻이지만 내 생각에는 무엇인가 잘못 된 것 같다. 내가 까마귀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오서산에는 정말 이렇다 할 까마귀가 없기 때문이다. 나 어렸을 때, 겨울에 춥다고 하면 할아버지 말씀이 물 아래 까마귀 다 얼어 죽었단다라고 하시었다. 그 말씀을 기억해 봐도 오서산 까마귀는 없었다.

 

만약에 오서산에 까마귀가 많았다면 할아버지 말씀이 오서산 까마귀 다 얼어 죽었다가 되지 않았을까? 사실 오서산의 이름이 까마귀와 관련 있다는 얘기를 아는 분들은 오서산 아래에 많지 않을 거다. 그것은 오서산에 까마귀가 없다는 얘기와 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옛날 말에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가 더 반갑다고 했지만 내가 오서산에 있는 까마귀를 없다거나 없는 까마귀를 있다고 우기고 싶지는 않다.

 

내가 어릴 적에는 시골 어디에나 흔한 것이 까마귀와 까치였으나 지금은 까마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람이 죽으면 그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는 것이 까마귀라고 알려져 예전엔 까마귀가 까악, 까악울고 다니면 어디 초상났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흉물스럽게 여기던 것이 까마귀였다가 우리가 20대쯤 되었을 때 까마귀가 정력에 좋다는 말이 뜬금없이 퍼져 요즘은 구경하기조차 힘든 새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싫어하던 까마귀를 좋아할 리도 없고, 좌우간 누가 뭐라 해도 오서산과 까마귀는 관계가 없다.

 

오서산이 어떤 지도에는 조루산(鳥樓山)으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나 이것은 아마 오서산을 잘못 읽고 표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서로 한자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오서산에 까마귀도 없지만 이렇다 할 새들도 다른 곳보다 더 많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저 어느 산에서나 볼 수 있는 꿩, 산비둘기, 새매, , 뻐꾸기, 소쩍새, 부엉이, 올빼미, 명새, 박새, 물총새, 골리새(휘파람새), 어치, 솔개 등이 더 많지도, 적지도 않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관심 있는 분들은 오서산, 조루산의 까마귀나 새는 조류가 아닌 풀, 즉 억새가 아닌가 하고 말씀도 하신다. 내 생각에도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오서산 정상은 억새가 무척 많기 때문에 이런 견해에 조금 신빙성을 주기도 한다.

 

오서산은 보는 방향에 따라, 높아도 보이고 길쭉하게도 보인다. 장항선 기차를 타거나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홍성을 지나면서부터 광천을 통과할 때가 가장 높게 보인다. 광천에서 담산리 방향으로 걸어 올라가면 산이 웅장해 보이지만, 장곡에서 광성리로 올라가면 그리 높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서산이 병풍처럼 길쭉하게 보이는 것은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대천 근처를 지날 때에 그렇다.

 

산 정상에 올라가 보면 능선이 높고 낮게 펼쳐져 일정하지 않지만 어떻게 돼서 그런지 대천에서 보면 마치 자로 대고 자른 것처럼 일정한 높이로 보인다. 그래서 볼 때마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동지지에 이르면 오서산은 산세가 궁륭이라 그 위가 병풍을 펼쳐 놓은 듯이 높고 평평하다고 했다. 궁륭이란 하늘이나 무지개같이 가운데가 높고 사방 둘레가 차차 낮아지는 모양새를 말한다. 이것은 광천 쪽에서 바라 본 모양일 거다. 내가 늘 아쉬운 것은 오서산이, 산이 높되 홑 산이어서 내세울만한 계곡이나 골짜기가 없다는 점이다. 산세가 궁륭으로 중앙이 높고 사방 둘레가 차차 낮아지니 봉우리 하나만 우뚝 솟은 것처럼 보인다. 청양의 칠갑산은 높이가 오서산에 한참 못 미치지만 굽이굽이 골짜기가 많아 그 아래 이름 있는 계곡이 많으나 오서산은 그런 면에서 칠갑산에 미치지 못한다.

 

예전에 땔감으로 나무를 땔 때에는 오서산으로 땔나무를 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오서산 아래의 광성리나 화계리, 신풍리, 오성리는 그렇다하더라도 멀리 대밭이나 홍동, 홍성에서까지 나무꾼들이 새벽부터 몰려 왔었다. 오서산에 큰 나무가 다 사라지고 잡목만 가득하게 된 것은 계획성 없이 나무를 베어내기만 한 탓이다. 오서산은 예전에 구황실(舊皇室)의 재산으로 잡혀 있어 관리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너도 나도 임자 없는 산으로 여겨 많은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나무를 베어냈다. 그러다보니 그 큰 산의 나무가 다 사라져 헐벗은 산으로 바뀌었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산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어릴 때의 일이라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자유당 정권 때 이승만 대통령의 생신 사절로 오던 자유중국의 비행기가 오서산에서 추락한 일이 있다고 한다. 그 때에 잠깐 매스컴을 탄 적이 있다고 들었다. 비행기가 추락하며 큰 불이 나서 산의 많은 부분을 태워 오서산이 헐벗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어른들께 들으니 이미 그 전에 다 나무가 없어져서 비행기 추락사고와 민둥산은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신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에 오서산 상봉에 작은 초소를 짓고 경찰이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거기서 사용할 연료를 광천 담산리에서 헬기로 실어 날랐다. 기름이 가득 찬 군용 드럼통을 수백 개 날랐는데 그것을 구경하러 광천에 갔었고, 헬기 아래 그물 속에 네 개씩인가 넣어 나르는 것을 보았다. 나중에 오서산에 불이 났을 때, 그 기름이 불에 터질까봐 아주 놀란 적도 있었다.

 

중학교 1학년 식목일인지 어느 일요일인지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산에 나무를 심으러 비럭질 나갔다가 불이 난 것을 보았다. 나무를 심던 모든 사람들이 다 쫓아 올라갔으나 불길이 잡히질 않아 고생을 많이 했다. 불이 타 올라가다가 정상까지 가니까 넘어서는 내려가지 않아 다행히 잡을 수 있었다.

 

오서산은 오서산 아래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요람이고 고향이었다. 근래에 들으니 보령시와 청양군 등에서 오서산을 자기네 구역이라고 우긴다고 해서 황당했다. 수만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고 누가 순을 댄 것도 아닌데 얄팍한 이익을 바라면서 네 것, 내 것을 따진다니 이것은 충청도 인심이 아니다.

 

오서산 아래에 어느 학교가 오서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던가? 나는 오서산이 홍성군이나 장곡면의 소유라고 따지려는 게 아니다. 그냥 우리 모두의 고향인 산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싫을 뿐이다.

 

어디 가든 오서산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고향 사람을 만난 것만큼이나 반갑다. 게다가 나는 오서산 아래 유일한 오서초등학교의 졸업생이라 오서산이라는 이름에 더욱 애착이 가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오서라는 이름은 다른 어떤 단어보다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집안의 직계 조상이 다 오서산 아래에 묻히셨고 나도 재가 되어서 오서산 아래에 내려갈 것이라 생각한다.

 

오서산을 접한 지역인 광천이나 화성, 청라 지방 사람들은 스스로들 다 자기들이 오서산 아래에 산다고 말하지만 오서산 아래에서 나고 자란 나와 우리들은 우리만이 오서산 아래라고 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것이 어쩌면 억지일지도 모르나 오서산 아래 자락에 가장 가까이 오서초등학교가 있었고 우린 거기서 자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