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1. 21:10ㆍ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다.고향, 추억)
내 고향은 충청도이다.
충청도는 충청남도와 북도로 나뉘어져 있지만 흔히 말할 때는 그냥 충청도라고 한다. 원래 충청도라는 지명은 충주와 청주에서 온 것으로 충주와 청주는 모두 북도에 있다. 남도에 공주와 홍주가 있긴 하나 ‘공홍도’나 ‘홍공도’라는 이름보다는 충청도가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전국 8도에는 그 지역의 특성에 맞게 예전부터 내려오는 말들이 있어, 충청도를 지칭하는 말이 청풍명월(淸風明月)이다. 그리고 충청도 하면 양반이라는 말이 대명사처럼 따라 붙는다. 청풍명월이라든가 양반의 고장이란 말들은 그만큼 충청도 사람들이 온순하고 부드럽다는 의미로 받아드리고 싶다.
충청북도는 청주시, 충주시, 제천시, 음성군, 진천군, 괴산군, 증평군, 청원군, 보은군, 옥천군, 단양군, 영동군으로 이루어져 있고 속리산 국립공원과 월악산 국립공원, 수안보 온천 등의 관광지가 있다.
충청남도는 대전광역시와 분리되어 공주시, 천안시, 서산시, 보령시, 논산시, 아산시, 계룡시와 당진군, 예산군, 연기군, 홍성군, 청양군, 부여군, 서천군, 금산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룡산 국립공원, 태안 해안국립공원, 온양, 도고, 덕산, 유성 온천의 관광지가 있다.
속리산의 법주사, 덕숭산의 수덕사, 계룡산의 갑사와 동학사, 공주 사곡면의 마곡사, 홍산 만수산의 무량사, 칠갑산의 장곡사, 해미 상왕산의 개심사 등이 널리 알려진 절이며, 중부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가 확장 개통되어 ‘교통의 오지(奧地)’라는 옛 이름을 버리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남한에서 본다면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가장 도세(道勢)가 약한 곳이 충남과 충북이다. 충남은 대전광역시가 분리되어 나가기 전에는 그런 대로 강원도나 전라북도보다 앞서기는 했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예전부터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남⋅북이 제주를 제외하면 끝에서 1, 2등을 다투는 것이 일반적인 양상이었다. 이런 전통을 깨고 지난 2001년 전국체전에서는 충남이 우승을 차지하여 전국은 물론 나까지도 놀라게 만들었다. 천안시 등 충남 여러 곳에서 분산 개최하여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최대한 살렸고 편파 판정 시비도 많았지만 나는 충남이 우승하였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예전에 대전이 충남에서 분리되기 전에 개최했을 때도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는데 그때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도세로 우승을 하다니…….
충청도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 야구단은 한화 이글스이다. 충청남⋅북도와 대전시까지 통틀어 고교 야구부가 있는 곳은 대전고, 공주고, 천안북일고, 세광고, 청주기계공고 등 다섯 학교가 전부이다. 다른 팀에 비해 그 저변이 많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한화 이글스는 잘 버티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팬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한 이상군은 천안북일고, 한희민은 청주 세광고를 나온 선수들이다. 이들이 활약할 때가 빙그레 이글스 시절인데 3년 전에 한화가 우승할 때보다 전력이 더 나았다. 그 화려한 시절에 우승을 하지 못한 것이 지금도 늘 아쉽다.
3년 전에 한화 이글스가 코리언시리즈에서 우승했을 때 난 너무 기뻐서 학교 선생님들께 요구르트를 돌렸다. 이러는 나더러 지방색이 강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난 개의치 않는다. 지방색과 애향심은 다른 것이고 난 애향심이 강하다고 스스로 믿기 때문이다.
『택리지』에 보면, ‘충청도는 산천이 편편하고 예쁘며 서울에서 가까운 남쪽이어서 사대부들이 모여 사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서울에 여러 대(代)를 사는 집으로 이 도(道)에다 전답과 집을 마련하여 생활의 근본 되는 터로 만들지 않은 집이 없다. 또 서울과 가까워서 풍속에 심한 차이가 없으므로 터를 고르면 가장 살 만하다’라고 하였다.
오늘날에는 옛날의 충청도 양반들이 존중해 온 체면치레와 충청도 평민들의 순종하는 미덕이 조화를 이룬 덕택인지는 몰라도 여기 사람들은 ‘인심 좋은 충청도 사람’으로 고정되어 모두 온후하고 명랑하며 안일하고 평온한 지방성을 나타내게 되었다.
어느 지역 출신이든 자기 고향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으랴마는 충청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충청도 출신이라는 것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른 지역보다 단결력이 약하고,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나는 조금 불만이지만 내가 충청도 출신이라는 것에 불만스러웠던 적은 아직 없었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충청도의 자랑은 우리 역사에 자랑스러운 인물을 많이 배출했다는 점이다. 충청도 사람은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맺고 끊는 것이 없어 우유부단하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사실은 결정적일 때 목숨을 내어놓는 일이 많았다.
최영, 성삼문, 한용운, 김좌진은 홍성에서 태어났고, 윤봉길은 덕산, 유관순은 천안, 이색, 이상재는 서천이 고향이고, 이순신은 아산에서 자랐다. 이밖에도 맹사성, 김옥균, 손병희, 신채호, 정인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인물이 충청도에서 태어나고 자라 일일이 열거하기가 쑥스러울 정도이다.
내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성웅 이순신’이라고 말한다. 충무공에 대한 이야기야 여기서 따로 할 것도 없고, 나는 장군으로서의 이순신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이순신을 존경한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것도 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이기에 그 뛰어난 전략도 자랑스럽지만 한 가정의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그 솔직하고 다정다감한 모습을 더 존경한다.
예전에 고등학교 국어책에 나왔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란 글에서 위당 정인보 선생님이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 저 현충사를 보라’라고 했던 대목이 지금도 생각난다. 여러 차례 읽은 『난중일기(亂中日記)』에 뛰어난 군인으로서가 아닌, 솔직한 사람으로서 고뇌하는 모습이 늘 내 가슴에 남아 있다. 나도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따라 하고 싶다.
현대사의 인물 중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이문구 님이다. 소설가를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문열은 알아도 이문구는 잘 모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인지도가 바뀔 것이라 확신한다. 이문구님은 30년대, 40년대에 이름을 날린 김유정, 채만식의 해학적, 풍자적 문체를 뛰어넘는 요설체(饒舌體)의 문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문구 님이 생전에 만해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을 수상할 적에 내가 우연히 그 자리에 가서 사진을 찍어서 보내드린 적이 있다. 언제 술 한 잔 하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는 지키지 못한 채 타계하신 것이 못내 아쉽다.
최근에는 박찬호, 박세리, 이봉주가 우리 국민들에게 큰 희망을 주고 있어 몹시 흐뭇하다. 내가 가수 이선희를 열렬히 좋아하니까 그것을 지방색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혀 그런 게 아니다. 난 이선희가 어디 출신인지도 모른 채 그 폭발적인 가창력을 좋아했다. 나는 누구든 한번 좋아하면 끝까지 좋아한다. 이선희도 그런 경우의 하나일 뿐이다.
근래에 대통령 선거 때마다 충청도의 표심이 그 향방을 갈랐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충청도에서 이긴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늘 다른 지역보다 합심단결이 덜 되는 충청도의 민심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떤 면에서는 자랑스럽게 여긴다. 다른 지역은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게 90%가 넘는 몰표를 주지만 우리는 언제나 70퍼센트 이상의 몰표를 특정인이나 특정 정당에 준 적이 없었다.
나는 충청도 사람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어딜 가도 충청도가 고향이라고 하면 욕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충청도 사람들이 출신지를 잘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나만이라도 확실하게 충청도 사람임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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