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교에서 강등된 하사

2012. 3. 21. 20:17시우 수필집/개갈 안나고 뜬금없는2(우물을 나온 개구리)

 

 

 

 

 

우리 중대뿐이 아니고 훈련소에 있는 여러 소대장이나 분대장들이 사고를 쳐서 훈련소로 왔다는 것은 사실여부를 떠나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얘기로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기엔 훈련소의 교관, 조교라면 가장 우수한 병력으로 선발해야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솔직히 내가 보기엔 하사관학교의 조교들 중에도 제대로 알고 교육을 하는 조교는 많지 않았다.

 

병기학이야 외우면 된다고 하지만 전술학은 개념 없이 외워서 될 일이 아니다. 이것저것에 관심이 많았던 내가 보기엔 교관의 이론교육부터 시원찮았고 실습을 시키는 조교들도 대부분 제대로 알고 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훌륭한 군인을 만들기 위한 첫 단추가 훈련소 교육이다. 훈련소 교육은 군인이 되기 위한 기본 소양부터 시작하여 모든 임무 수행이 가능한 쓸모 있는 사병을 만들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

 

훈련소에서 확실한 기본기를 교육시켜 내보내면 어느 부대에 가서든 잘 적응할 수 있어 좋고, 부대에서도 2중으로 신경 쓸 일이 없어서 좋을 텐데 내가 본 현실은 그렇지가 못했다. 마치 요즘 대학생들이 회사에 들어가면 다시 전부 교육시켜야 한다고 투덜거리는 회사의 현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미 훈련소의 교관이나 조교가 어디서 사고나 치고 부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인데 이들이 훈련병들에게 무슨 교육을 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솔직히 내 눈에 우습게 보인 소대장이나 분대장들이 여럿 있었다. 그런 분대장들 중에 군계일학으로 돋보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 사람이 금 하사였다.

 

우리 중대 중대장은 교육에 관한 것은 소대장들과 상의하지 않고 대부분을 금 하사하고 얘기했다. 소대장 넷 중에 장교가 둘, 하사관이 둘인데 장교들은 ROTC출신이고 하사관들은 고참 중사였다. 그 넷 중에 교육에 관한 이론에서 금 하사를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엔 그게 무척 의아했지만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금 하사는 조금 특별한 경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금 하사는 대전 사람으로 충남고를 졸업했다. 당시 충남고는 대전에서 대전고 다음으로 알아주던 곳이다. 그때는 서울과 부산을 제외하고는 자기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시험을 보고 합격해야 들어갔기 때문에 대전에서 충남고에 다녔다고 하면 공부를 상당히 잘한 학생으로 인정받았다.

 

고등학교를 갈 때까지는 무척 잘 했던 모양이나 고등학교에 가서는 열심히 안 했던지 금 하사는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삼군사관학교에 진학을 했다. 금 하사 말대로 한국에서 충남대학교에 가장 많이 진학하는 고등학교가 충남고였지만 정작 본인은 거기 갈 실력이 안 되었던 모양이다.

 

삼군사관학교는 2년제라 2학년을 마치면 졸업이고 바로 소위로 임관을 하는데 금 하사는 졸업식을 앞두고 외출하였다가 술 마시고 싸워 졸업식을 하루 앞두고 퇴교를 당했다고 했다. 퇴교를 당하면서 강제 징병이 되었고 학교에서 교육받은 것이 인정이 되어 훈련소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자대로 배속이 되면서 계급은 하사가 되었다. 그러나 학교에 다닌 2년은 군복무기간으로 인정되지 않아 사병으로 33개월을 근무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중대에서는 부대에 전입한 순서로 고참 대우를 해주고 있어서 내가 전입해 갔을 때에 금 하사가 꽤 고참인 줄 알았더니 나중에 보니까 우리보다 겨우 두세 달 앞서 전역을 했다. 솔직히 그 입장이 안 되어 본 사람이 그 심정을 어떻게 알 수 있으랴만 금 하사는 아무 티도 안 내고 군 생활을 아주 잘 했으며 확실하게 아는 것이 많아 중대장이 많이 인정해 주고 있었다.

 

우리는 그가 같은 충청도 출신이라는 것에 우선 연민이 갔고 또 박식한 것에 끌려 확실하게 고참 대우를 해주었다. 우리가 중대에 전입을 갔을 때는 금 하사가 가장 아래였던 셈이다. 금 하사에게 겉으로는 존댓말을 쓰는 후임들이 다섯이 넘게 있었으나 군대에서는 먼저 나가는 사람이 더 나은 것이어서 전입 고참이라는 것은 말로만 대우해주는 허울에 불과했다.

 

군에서는 빨리 나가는 사람이 최고였다. 전입이 먼저인 것은 아무 것도 아니고 늦게 왔어도 먼저 나가는 사람이 훨씬 낫다. 오히려 먼저 와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에 뒤에 온 사람이 먼저 나간다면 속이 뒤집힐 일이었다. 그런 시점에서 우리가 중대로 간 것은 금 하사에게는 큰 행운이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거다.

 

우리는 중대에서 동기가 넷이나 되었고 훈련소 전체로 하자면 우리 동기는 열 명이 훨씬 넘었다. 하사관학교 졸업 순서에 따라 먼저 오고, 나중에 오고 차이는 있었지만 그래도 다 훈련소 동기였고 전역도 다 같이할 친구였다.

 

게다가 대부분 자기 중대에서 웬만큼 실력으로 인정을 받아 초반부터 훈련소의 중심 세력으로 자리를 넓혀 나갔다. 그러니 훈련소의 세대교체 세력으로 확실하게 인정을 받았던 셈이다. 그때까지 훈련소에는 우리를 가르쳤던 소대장이나 분대장들이 조금 남아 있기는 했지만 그들조차 우리를 무시하지 못했다.

 

그런 우리 동기들이 금 하사를 깍듯하게 고참으로 대접하면서 금 하사의 위상이 확 달라졌다. 중대에서 우리가 그렇게 하니까 다른 중대의 우리 동기들도 대접을 해줬고 그것이 우리 위의 고참들에게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동기 넷은 중대에서도 그랬지만 훈련소 안에서도 제법 잘 나가는 편이었다. 어딜 가나 인사성이 바른데다 특히 나하고 정 하사는 붙임성이 있어서 누구하고나 잘 어울려 다른 중대 고참들도 좋아했다. 게다가 누가 봐도 우리가 중대를 이끌어가는 핵심이라는 것을 알만큼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런 우리가 금 하사를 끔찍하게 위하니까 비록 우리만큼은 아니더라도 금 하사를 새롭게 인식하고 무시하지 않았다.

 

내가 어디 가서 우쭐거리기를 잘 했던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어서였다. 솔직히 훈련소에서나 하사관학교에서 장교들이나 하사들이 하는 것을 보면 마음에 안 찼다. 아무리 군대라 해도 잘 해야 아랫사람들이 배울 것이 아닌가? 어떤 사안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면 교본에 나온 대로만 답변할 뿐이지 자기 생각은 전혀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교본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지만 그게 훈련소나 하사관학교의 현실에 맞는 것이나 얘기가 되는 것이지 교본의 모형에 맞지 않는 전혀 다른 지형에서는 무용지물인데도 그대로 외워서 하는 것을 보면 솔직히 우스웠다.

 

조금 알면서 다 아는 것처럼 까부는 내게 금 하사는 지금까지 봐왔던 누구보다도 큰 대화 상대가 되었다. 내가 군대 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 중에 금 하사보다 낫다고 생각할 수 있는 군인은 우리 중대장인 신 대위밖에 보지 못했다.

 

예전 8연대 중대장이 육사를 나왔다고 했지만 그분하고는 별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어서 잘은 모른다. 그 밖의 장교나 하사관 중에서 내가 정말 군인답다고 생각한 사람은 신 대위가 최고이고 그 다음이 금 하사였다.

 

그런 금 하사도 우리 때문에 군대생활을 편하게 했다. 금 하사가 전역을 얼마 앞두고서 우리 넷에게 그 고마움을 절절하게 얘기해서 좀 더 잘 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아주 변덕이 심한 것이어서 평소에 잘 해주다가도 사소한 것에 마음이 돌변하여 서운하게 할 때도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금 하사는 전역을 한 뒤에 경찰이 되었다고 한다. 비록 사관학교는 막판에 잘렸어도 그 실력이면 훌륭한 경찰이 되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