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던 고참

2012. 3. 23. 21:35시우 수필집/개갈 안나고 뜬금없는2(우물을 나온 개구리)

 

 

 

 

 

내가 훈련소에 입소한 것이 197947일이고 퇴소한 것이 62일이다. 토요일에 8연대로 가서 이틀 자고 월요일인 64일에 대대 본부를 거쳐 중대로 갔다. 거기서 하사관학교 차출을 받은 것이 그해 1223일이니 부대생활을 한 것은 7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7개월의 군대생활을 대부분 철책에서 보내, 다양한 것을 경험했다고 말 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군인들 사이의 갈등이 엉뚱한 곳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거였다.

 

부대에 가서 보니까 일반 하사와 사병들의 갈등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전방 부대에서 이런 정도라면 후방 부대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거다. 전방 부대는 늘 총과 실탄을 휴대하고 다니니까 성질이 나서 한번 쏘아버리면 잘잘못을 가리기 이전에 다 죽고 말 것이니 웬만하면 참고 지나지만 개인 화기가 지급되지 않는 후방은 툭하면 싸울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인지 입영장정을 차출하여 하사관학교에 보내는 방식이 지양되고 부대에서 8~12개월 근무한 사병을 선발하여 12주의 교육을 시켜 하사로 진급시키는 방식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방식은 우리가 입대하기 얼마 전부터 시행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까지 우리 중대에는 그렇게 교육을 받고 온 하사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우리 중대에서 차출당하여 가서 하사를 달고 다른 중대에 가서 근무하는 사람은 있다고 들었다. 나는 겉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런 기회가 오면 당연히 부대를 뜨려고 생각했다. 내게 부담스런 고참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내게 맡겨진 일을 못한 것은 전혀 없었다. 나는 어디 가서나 분위기메이커였고 누구나 잘 따라서 귀여움을 받았다. 나는 말로만 대학생이었고 교련 혜택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반감도 사지 않았다. 다 좋은데 문제는 내가 말이 너무 많다는 거였다.

 

부대 내의 분위기 등을 잘 파악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혼자만 생각하고 있어야 했는데 내 생각을 윗사람들에게 자주 얘기한 것이 화근이었다. 특히 소대장이 무엇을 물을 때는 내가 아는 사실만 얘기하면 될 것을 내 추측까지 덧붙여 얘기를 했으니 내 바로 위의 고참들이 나 때문에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것이 누적되어 가는데도 이등병이라 쉽게 손을 못 대고 내가 일등병 이상으로 경력이 쌓이기를 바라며 기다린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우리 소대에서 가장 고참인 방 병장에 대해 좋지 않게 이야기한 것이 그대로 그에게 전달이 되어 사건이 생겼다. 방 병장은 입대 전에 결혼까지 하고 온 사람으로 아들인가가 하나 있었다고 들었으나 내 눈에는 영 군인답지 않게 보였다. 소대에서 고참 병장이라고 하면 후배들에게 매사에 모범이 되어야 함에도 전혀 그렇게 보이질 않았다.

 

게다가 자기 고향 사람들을 챙기느라 우리 소대의 위계질서까지 서질 않아서 그것을 내가 소대장에게 보고했었다. 내가 본 것이 정확한 것인지는 솔직히 지금도 의문이기는 하다. 다만 사천 출신의 중고참이 있었고 그보다 조금 아래인 신안 출신의 고참이 있었는데 이 신안 출신의 고참이 내 눈에는 방 병장을 믿고 방자하게 구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아무도 말을 못하고 있어 나는 그것도 싫었다. 군대 질서라는 것이 한번 정해지면 바꾸기 쉽지 않은 일이라 초반부터 후배가 선배 앞에서 맞먹다보면 나중에 가서도 그렇게 굳어져서 그 선배만 우습게 된다.

 

간혹 동기가 많은 아랫것들이 수를 믿고 자기보다 위인 고참들에게 어영부영 맞먹는 것을 봐왔던 터라 그렇게 굳기 전에 잡아놓고 싶었다. 나는 나보다 하루라도 고참이면 깎듯이 했고, 반대로 하루라도 늦으면 철저하게 아래 취급을 했다.

 

내가 소대장에게 보고했다는 것이 알려져서 나보다 서너 달 고참인 반 일병에게 불려가서 한 마디 듣기는 했지만 내 스스로는 크게 틀린 것이 아니라고 믿었기에 당당하게 대꾸를 했다. 아래 후배를 손보려면 반드시 위에 고참에게 보고를 하고 때려야 했기 때문에 그것은 걱정하지 않았다. 소대원 구조로 볼 때 나를 손보는 일이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 말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충분히 타당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방 병장을 무척 싫어했다. 1분대장이 휴가 갔을 때에 발생한 사건도 최종 주모자는 방 병장이라고 믿고 있었고, 분대장들과 갈등을 조장하는 것도 다 방 병장이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들 집을 떠나서 고생하는데 조금만 서로 돕고 이해하면 좋은 분위기에서 즐겁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인데 병장이 무슨 대단한 벼슬이라고 유세를 하는 것이 정말 싫었다.

 

반 일병의 훈계로 끝나는 것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초가을 어느 날 근무를 서고 있는데 밀어내기로 방 병장이 나를 불렀다. 방 병장은 휴전선으로 들어가는 통문이 있는 곳에서 근무를 서고 있다가 밤 열두 시가 넘어서 자기와 같이 근무를 서던 병을 내보냈다. 밀어내기는 한 사람이 다음 초소로 가면서 거기 서 있던 초병은 다음 초소로 가고 그렇게 한 사람씩 밀어내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나를 부르기 위해 그런 방식을 썼던 거다. 내가 방 병장이 있는 초소로 가니까 먼저 하는 일이 내 무장을 해제하는 거였다.

 

서로 총을 가지고 있으니까 잘못 건드리면 바로 총알이 날아올 지도 모르는 일이라 우선 총을 내려놓게 하고 다음에 탄띠를 풀게 했다. 탄띠에는 대검이 부착되어 있고 실탄이 든 탄창이 들어 있어 휘두르면 위험하다. 그 다음에는 철모를 벗기었다. 철모도 벗어서 휘두르면 충분히 상처를 입힐 수 있으니까 벗겨 놔야 안전할 것이다. 그렇게 하고서야 얘기가 시작되었다.

 

그날 방 병장의 태도가 참으로 우스워서 나는 다른 사람에게는 얘기하지 않았다. 나를 무장해제 시켜놓고서 협박도 하고 회유도 했다.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소대장에게 그런 얘기를 했느냐고 물었다. 자신이 소대에서 최고 고참병인데 나 때문에 소대원들이 자신을 우습게 안다고 눈물까지 흘렸다.

솔직히 황당했지만 내가 잘못했다고 사과했다, 처음에는 나를 두들겨 패려고 무장해제를 시키는 것 같아 많이 쫄기도 했지만 억울하다며 그렇게 얘기하는 것을 보니까 우습기도 하고 안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두들겨 맞았으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사실 이것은 신고하면 군법회의에 회부될 일이었다. 물론 무장해제를 당한 나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군에서는 직속상관의 명령 없이는 누구도 자신의 무장을 해제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나는 그렇게라도 권위를 세우고 싶어 하는 방 병장이 안쓰러워 그 뒤로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면서 우리 중대를 뜨고 싶었다. 중대를 뜨려고 했던 것 중에는 새로 온 중대장에게 찍힌 것도 큰 작용을 했다. 그것도 황당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중대장이 새로 오면서 시행한 몇 가지 일에 내가 잘못 보여 크게 찍혔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서로 상대적이어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나는 내가 잘났다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남을 무시하는 일도 거의 없다고 자신한다.

 

또 사람을 사람만 볼 뿐이지 무슨 출신을 따지거나 배경을 따지면서 대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새로 만난 중대장과는 악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상대적이어서 제 삼자는 알기가 쉽지 않다. 본인들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악연은 서로 보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정이 들고 내가 좋아하는 고참들도 많이 있었지만 단 한 사람하고라도 악연이라면 둘 중의 하나가 그곳을 뜨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닿자마자 기꺼이 부대를 떠나고 싶었다. 하사관학교 차출이 바로 그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