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하사를 만나다

2012. 3. 23. 21:39시우 수필집/개갈 안나고 뜬금없는2(우물을 나온 개구리)

 

 

 

 

   

 

군에서 가장 먼저 따지는 것은 지연(地緣)이다. 우리 소대에는 제주도 출신만 없었고 각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다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전라도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경상도, 그리고 충청도였다. 충청도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내서 내색을 않는 편이었다.

 

나와 삼흥이가 충청도 출신인데도 따로 불러서 고향 얘기를 하거나 안부를 특별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이것은 신병인 우리에게는 좀 서운한 일이기도 했었다.

 

우리 소대에 분대장, 그러니까 하사가 네 명이 있었다. 지금은 일반 하사라는 계급이 없어졌지만 그 당시는 대부분 일반 하사가 분대장이었다. 일반 하사는 지원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일반 입영장정 중에서 차출하여 원주의 제1하사관학교나 여산의 제2하사관학교에서 6개월간의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임용이 되어 분대장으로 근무하다가 일반 병과 같이 전역했다.

 

6개월의 훈련을 받고 하사가 되지만 부대에 오면 보통 이등병 고참과 비슷한 근무 경력밖에 안 되니 분대장이 되어 분대를 통솔하는데 문제가 많았다. 군대야 당연히 직위와 직책에 의해 명령체계가 이뤄지지만 일반 하사는 하사관이 아닌데도 짧은 경력에 분대장이 되고 봉급을 조금 더 받는다는 것이 일반 병들의 불만을 사게 돼서 갈등을 일으킬 때가 많다고 했다.

 

그 갈등은 겉으로 드러날 때도 있기는 했지만 보이지 않는 갈등이 더 많았다. 훈련소에서는 생각도 못했던 그런 갈등들을 보면서 나는 삼흥이와 늘 얘기하기를 우리가 고참이 되면 절대 저렇게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고향을 떠나서 서로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고생하는 마당에 왜 사소한 것들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인지 우리 같은 신병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1분대장 이○○ 하사가 우리 소대의 분대장 중에 가장 고참이었다. 이 하사는 우리 소대뿐만 아니라 우리 중대에서도 고참하사였고 언행에 거리낌이 없었다. 다른 세 명의 분대장은 크게 튀지 않았고 특히 우리 2분대 분대장인 공○○ 하사는 아주 점잖아서 다른 병들과 부딪히지 않는 편이었다.

 

거기에 비해 이 하사는 눈에 거슬리는 것은 조금도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고 할 말은 아끼지 않았다. 그는 충남 천안이 고향이고 나와 같은 전주 이가 덕천군파의 한 항렬 위인 아저씨였다.

 

나와 삼흥이를 데리고는 늘 실없는 농담이나 실실하고 잘 대해줬지만 다른 병, 특히 고참병들과 중고참들에게는 일고의 양보도 없었다. 늘 웃는 얼굴이지만 표정을 가다듬으면 금방 서리라도 내릴 것 같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우리 소대에 날고 기는 중고참이 여럿 있었지만 내가 보기엔 이 하사를 당할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솔직히 언제나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하게 나가는 우리 소대 고참들이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또 당연히 분대장의 통솔에 잘 따르는 것이 사병의 본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러는 것이 고참들 눈에는 많이 거슬렸겠지만 너무 졸병이라 나를 교육시키기엔 아직 시기가 이르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냥 넘어가고 내 바로 위의 일병만 자주 혼이 났다. 내 입을 제대로 막으라는 지시를 했는데도 내가 늘 쓸데없는 것에 참견하고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 때문에 고참들에게 많이 맞은 내 직속 고참이 대중 일병이다.

 

전라도 어느 시골에서 온 대중 일병은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 안쓰러워 보일 정도로 생겼지만 고참들에게 혼이 나면서도 나를 한 번도 개인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나는 그게 늘 고맙고 미안했지만 휴가 갈 적에 내 돈 2만원을 꾸어가고는 귀대한 뒤에 갚지 않아서 그것으로 갚았다는 위안을 삼기도 했다. 하여튼 내 바로 위의 고참들은 나 때문에 그 위의 고참들로부터 혼이 많이 났다.

 

내가 이○○ 하사를 존경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같은 고향이고 게다가 촌수를 따지기가 멀다고 해도 같은 파의 아저씨임에는 틀림이 없으니 더 따랐던 거였다. 그러던 중에 우리가 철책으로 근무지원을 나갔을 때에 이 하사가 특별 휴가를 받아 열흘 간 휴가를 갔었다. 그게 기회가 되었다. 눈엣가시이던 이 하사가 휴가를 나가자 바로 병사들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하루는 철책 근무를 서고 들어와서 최고참들이 중고참들을 부추겨 남아 있는 세 분대장에게 린치를 가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일은 당사자들만 아는 일로 되어 있었으나 우리 소대원들은 다 알고 있었다. 나와 삼흥이는 아직 이등병이라 그런 일에 부르지도 않았고 낄 일도 아니어서 분위기로만 알았을 뿐이다.

 

당한 쪽이나 가한 쪽이나 다 말없이 지냈으니 솔직히 어떻게 일이 진행되었고 얼마나 크게 사건이 났는지는 모른다. 다만 분위기로 짐작할 때에 무엇인가 큰 일이 있었던 것은 확실했다.

 

철책선 근무라는 것은 매우 단순하다. 저녁을 일찍 먹고 해가 지기 전에 휴전선으로 나간다. 철책에 나갈 때는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각각 실탄 108발과 소총, 수류탄 1발을 받아가지고 가서 자기 지정된 위치에서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에 해가 뜨면 들어와 실탄과 수류탄을 반납하고 아침밥을 먹은 뒤에 오전 내내 잠을 잔다. 점심에 깨우면 일어나서 밥을 먹고 작업을 하다가 다시 저녁을 일찍 먹고 나가서 밤을 새우는 것이 전부였다.

 

며칠 분위기가 뒤숭숭해서 내심으로 많이 불안했지만 누구에게 물을 수도 없고 참 어색하게 지났다. 그러다가 하루는 낮잠에서 일어나보니 휴가를 갔던 이 하사가 귀대를 해 부대에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했더니 이 하사는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해서 머쓱했다. 그러고는 다음 날 다시 근무에서 돌아와 잠을 자는데 갑자기 비상이 걸렸다.

 

잠에서 깨어보니 이 하사가 실탄이 장전된 소총을 들고 소대원을 향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데 누구 하나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잠을 자고 있던 선임 하사가 놀라 깨어 자기가 처리할 테니 제발 총을 놓고 얘기하자고 사정하는 게 다였다. 물론 총 앞에서 용기를 낸다는 것은 만용이겠지만 그 상황에서 아무 말도 못한 채 떨고 있는 고참들을 보니 정말 경멸스러웠다. 그 정도 뒷감당도 못할 것이라면 아예 일을 만들지 말았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선임 하사가 간신히 말려서 총을 내려놓게 하고 모든 소대원은 작은 마당으로 맨발로 불려나갔다. 화가 난 선임 하사는 고참병들부터 두들겨 패면서 사건의 발단과 처리 과정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고참들이 나와 삼흥이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말해서 우리는 막사로 돌아왔다.

 

막사에 와서는 잠을 자야 했지만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그 사건에 관련된 고참들이 전부 분대장에게 사과를 했고 최고참들은 고참들을 잘못 지도했다고 이 하사에게 사과를 하는 선에서 매듭지어졌다고 한다.

 

나는 그때 이 하사를 보면서, ‘저 정도는 되어야 하사라고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비굴하게 행동하던 고참들에게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다. 분대장이 없는 자리에서는 내가 언제 누구를 손 봤다느니, 누가 자기에게는 꼼짝 못한다느니 하는 말들이 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그때 확실히 알았다.

 

내가 나중에 하사관학교에 가느라 이○○ 하사가 전역을 하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큰 탈 없이 전역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소대에 있던 뜸부기라는 별명의 논산 출신 3분대장 여동생과 결혼할 거라고 들었는데 어디를 가도 어떤 역경도 다 이겨나갈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군대라는 곳이 아주 웃기는 곳이라 힘이 있는 사람은 건드리지 못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만 괴롭히는 곳이라는 것을 거기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