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떨어지다

2012. 3. 25. 17:12시우 수필집/개갈 안나고 뜬금없는2(우물을 나온 개구리)

 

 

 

 

 

내가 실패를 맛 본 것은 많지만 대부분 남들이 모르는 일이어서 공개 망신을 당한 적은 그리 많지 않다. 나는 내가 하고자 마음먹은 일은 어떻게든 하는 편이기 때문에 시작을 하지 않으면 몰라도 착수하면 웬만큼은 이루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중학교 다닐 때에 한 가지 일에 두 번이나 실패하여 공개 망신을 당한 씁쓸한 기억이 있다. 중학교 학생회장 선거에 두 번 출마하여 두 번 다 떨어진 거다.

 

나는 초등학교 때 3학년부터 6학년까지 혼자서 반장을 독식했다. 그냥 지명으로 한 것은 아니고 늘 선거를 통해서 선출했어도 내가 되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가서는 반장 후보로조차 지명을 받지 못했다. 내가 있던 반이 우수반이라 우리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다 거기 모였고, 그 친구들은 광천과 그 인근지역에서 웬만큼 알아주는 학생들이라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거기서 반장을 한번 못했다는 것은 반장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존심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2학년 2학기 가을에 직선으로 선출하는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를 결심했다. 비록 공부는 상위권이 아니었지만 학교 내에서는 이런 저런 일로 꽤 지명도가 있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내가 믿은 것은 우리 광흥중학교에서 지역 단위로는 상당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장곡 팀이었다.

 

광흥중학교에서 장곡 팀은 광천 아이들을 빼면 상당히 큰 집단이었다. 장곡면의 장곡초등학교와 홍동면의 대평초등학교, 그리고 오서산 아래의 오서초등학교까지를 보통 장곡 팀으로 분류했었다. 장곡에서 대평리를 거쳐 광천으로 오기 때문에 그 두 학교 출신들은 같은 버스를 타고 통학하였고, 우리 오서 출신들은 길이 달라서 걸어 다녔어도 학교 안에서 볼 때는 다 장곡 팀이었다.

 

물론 이들이 다 동질적인 집단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출신 초등학교가 다르면 보는 관점도 차이가 나고, 학교간의 경쟁의식도 있어서 같이 만나면 오히려 다른 곳보다 더 껄끄러울 수가 있다. 하지만 더 많은 큰 집단 속에서는 본능적으로 뭉쳐지게 마련이다. 이런 연유에서 장곡, 대평, 오서를 장곡 팀으로 불렀고, 우리들 간에는 웬 만큼의 친근감은 가지고 있었다.

 

내가 학생회장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은 '장곡 팀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입후보를 하기 전에 장곡 팀에서는 나 말고 나올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기 때문에 표만 결집되면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사람이 대부분 우리 반 학생들이었는데 우리 반에서의 지지율은 내가 상대적으로 높아서 여러 모로 계산해도 괜찮았다.

 

그런데 세상의 일은 알 수가 없는 거였다. 나를 지지해주는 쪽으로 가던 몇 아이들이 독자 후보를 내세워 등록 마감 직전에 입후보를 하였다. 입후보한 친구는 광천 출신으로 전교 1, 2위를 다투는 실력에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 학생이었다. 입후보 직전까지는 나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다가 그 친구가 입후보를 했으니 내가 타격이 제일 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친구를 입후보하게 만든 애들이 장곡 팀의 핵심 인물들이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사실 학생회장이 성적이 우수해야 된다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지만 당시 분위기에서는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이 어디서나 먹힐 때였다. 학생의 본분이 공부에 있으니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나오면 당연히 표가 그리로 쏠릴 거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 친구가 나오기 전까지는 다들 성적이 무기가 될 정도는 아니었었다.

 

쉽게 생각했던 선거가 어렵게 되었고, 분위기가 반전되어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반에서 나를 지지하던 아이들 대부분이 돌아섰고, ‘장곡 팀도 분열될 수밖에 없어 어려워진 거였다. 내가 오서 출신이 아니라 장곡을 나왔거나, 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더라면 그런대로 분위기를 이어 나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나 나는 장곡 팀의 주류가 아니었다. 선거 전에는 생각지 못한 것들이 이럴 때에 뼈아프게 작용할 줄은 정말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나는 선거유세에서 학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모든 학생들이 모인 발표장에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 거였다. 그날 웅변을 잘 하는 친구보다 오히려 공부를 잘 하는 친구가 훨씬 설득력 있는 발표를 해서 나도 놀랐다. 마지막 유세가 끝난 뒤에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막판에 후보 사퇴를 해서 연합하자는 제의가 들어왔지만 아무리 떨어진다 해도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거절했다.

 

투표결과는 다섯 명 중에 세 번째였다. 솔직히 요즘 말로 쪽 팔리고 분하기도 했지만 이미 결과가 나온 것에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는가? 학급에서 성적이 뒤에 있는 사람도 이렇게 출마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으로 위안을 삼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래도 출마를 했던 덕에 학교 안에서는 더 이름이 알려졌던 것 같다.

 

기회는 자주 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들 하지만 우습게도 기회가 다시 왔다. 학생회장에 당선된 친구가 3학년이 되기 전에 서울로 전학을 갔다. 그렇게 전학을 갈 계획이 있었다면 애초에 출마를 안 했어야 옳았을 것이나 생각지 않았다가 갑자기 그렇게 된 모양이다. 그래서 선거를 다시 하게 되었다.

 

솔직히 출마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한번 망신당했으면 되었지 두 번씩이나 그러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먼저 선거에서 부회장이 되었던 친구가 은밀히 찾아와 출마를 간곡히 권했다. 자신은 다시 출마하려고 했더니 부회장이라서 출마를 할 수가 없다는 학생부의 통지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생부장이 만만한 학생을 내보내 시키려하니까 내가 꼭 출마를 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그런 음모를 알면서도 가만히 있으면 되겠냐며 나를 부추겼다. 나도 생각해 보니 이번엔 누가 나와도 해 볼 만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다섯 중에 3등을 했지만, 1, 2등이 빠져 나갔으니 여기서야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다시 출마를 했고, 이번에 셋 중에 2등을 해 떨어졌다. 세상은 의욕만 가지고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야 산골 출신이고 늘 추천받아 출마하면 그대로 반장이 되었으니 선거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그러나 광천만 해도 크게 달랐다. 표를 받으려면 조직력이 있어야 하고, 조직을 움직이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이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건만 나는 몰랐다. 게다가 내가 여자 선배와 동기들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것도 큰 패인이었다고 생각했다. 여자를 좋아하기야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였지만 그때는 숫기가 없어 여자들 앞에 나가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었다. 좋든 싫든 여학생들과도 가까운 관계를 가졌어야 하는 것인데 그때는 그런 생각조차 못했다. 내가 스스로 가까이 하지 않는데 어떤 여자가 호감을 가지고 표를 주었으랴!

 

그리고 많이 안다고 해서 말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때 실감했다. 내가 전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사람들에게 먹혀들지가 않았다. 또 길게 연설을 하면 오히려 산만해진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비록 실패는 했지만 실패가 좋은 경험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셈이다.

 

지금도 변함이 없는 것이지만, 어느 조직의 장이 되려면 그 조직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그럴 능력이 없으면 차라리 맡지 않는 것이 그 조직을 위해서나 본인을 위해서 훨씬 낫다. 나는 그 때 내가 회장에 당선이 안 된 것에 감사하고 있다. 회장을 하고 싶다는 욕심만 있었지 어떻게 이끌어 가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