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와 마루

2012. 3. 25. 17:23시우 수필집/개갈 안나고 뜬금없는2(우물을 나온 개구리)

 

 

 

 

 

 

 

다른 것은 다 자기 스스로 할 수 있어도 자신의 이름을 짓는 것은 할 수가 없다. 누군가가 먼저 이름을 지어줘야 그 아기의 이름이 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뒤에 스스로 이름을 바꿀 수도 있기는 하지만 이름은 바꾸기가 어렵다. 어려서부터 불리어진 이름은 그 사람과 굳게 연결이 되어 떼어내기가 쉽지 않다.

 

이름을 짓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중국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아버지가 이름을 짓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는 성인이 되어 붙이는 이름으로, 임금이나 부모 등 윗사람 외에는 반드시 자를 불러야 한다.

 

()는 죽은 뒤에 얻는 이름이다. 신하의 경우 임금이 내리고, 임금의 경우 신하들이 생전의 공덕을 생각하여 짓는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는 생전의 이름은 입에 올리지 않는다. 이 밖에 유명(乳名동명(童名) 또는 서재의 이름이나 사는 곳의 이름 등을 따서 짓는 아호(雅號별호(別號)가 있어, 중국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이름을 가질 수 있었다.

 

서양 사람의 이름은 기본적으로 2종류로 이루어진다. , 개인을 나타내는 퍼스트 네임(또는 세례이름)과 가문의 이름인 패밀리 네임(또는 surname)이다. 그러나 11세기 이전의 영국에서는 하나의 이름 밖에 가지지 못했다. 그것을 이크네임(ekename : 지금의 닉네임)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성()이 된 둘리틀(Dolittle), 롱펠로(Longfellow)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성들이 이 이크네임에서 유래한 거였다.

 

유럽의 이름들은 개인 이름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가문 이름인데, 헝가리만은 가문 이름이 먼저이고 개인 이름은 나중이다. 그 점은 한국이나 중국, 일본의 경우와 같다. 인도네시아나 미얀마와 같이 성은 없고 이름만 있는 나라의 경우도 있다고 한다. 거기는 대통령이건 천민이건 이름이 모두 같아서 수카르노 ·수하르토 ·나수티온이라는 이름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의 이름 짓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해서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오늘날의 이름 방식은 조선시대 후기부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인과 상민 계층이 대거 양반으로 편입되면서 족보(族譜)가 유행하게 되었고, 족보에 올리는 이름은 정해진 항렬(行列)에 따라 지어야 했기 때문에 대부분 성과 합하여 석자로 굳어졌다. 아마 이렇게 이름의 글자 수가 일정하게 되어 있는 나라도 흔치 않을 거라 생각한다.

 

내 처음 이름은 덕주였다고 들었다. 솔직히 덕주보다는 영주가 훨씬 낫다. 아마 덕주였으면 덕 덕()’자를 썼을 거다. ()자는 항렬(行列)이니까 덕주는 두루 덕을 쌓으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내 이름의 자가 옥빛 영()’인 줄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알았다. 남자들 이름에 많이 쓰이는 길 영()’이고, 여자들 이름에는 꽃부리 영()’이 많이 쓰인다. 내 이름을 지을 때 옥빛 영으로 한 것은 세상에 두루 이름을 떨치라고 지으신 이름이겠으나 나이가 지천명에 이르도록 별 볼일이 없으니 이름을 지어주신 분께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하기는 옥편에서 찾아보면 옥빛 영은 자 중에서 저 뒤에 가 있다. 구슬 ()’변에 꽃부리 이 합해서 된 글자인데도 임금 ()’변에서 찾아 글자를 못 찾은 적이 여러 번 있으니 아마 뒤에 옥빛을 떨칠지는 모를 일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에 광천에서 버스를 타고 홍성에 가는데, 어느 연세 드신 분이 교복에 부착된 이름표의 한자를 보고서 너는 문인이 아니라 무인이 될 이름이다라고 하셨다. 그분께서는 군인만 무인이 아니라 남을 지휘하는 일을 하는 것이 무인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해주셨다.

 

나는 그때 내 이름에 무척 자부심을 느꼈다. 내가 어렸을 때는 군인이 되고자 생각한 적도 있었고, 정치가가 되었으면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게 이름과 관계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쪽으로 나갔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유명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나에 만족하고 있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나는 내 이름이 여자 이름 같다고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나는 전주(全州) 이가(李家) 덕천군파(德泉君派) 19세 손()이다. 우리 덕천군파의 19세 손 항렬이 두루 ()’이기 때문에 우리 족보를 보면 로 끝나는 이름을 셀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영주가 여자 이름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예전에 서울에 처음 올라 왔을 때, 그러니까 1978년에 서울시 전화번호부에 이영주라는 이름이 144명이 등재되어 있다고 했다. 내가 직접 세어 본 것은 아니지만 용인이가 세어봤다니 정확할 것이다. 144명 중에 남녀 구분은 없었지만 적어도 90% 이상이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전화번호부에는 남자 이름을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영주라는 이름이 그만큼 많다는 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이름이라는 얘기이다. ‘서용인이라는 이름은 그 당시에 8명인가가 등재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름을 한글로 짓는 것도 한 때 유행이었다. 내가 국어과목을 가르치는 교사이다 보니 우리 애들 이름을 한글로 짓지 않을까 생각한 사람들이 있다. 내 바로 아래 아우는 딸 이름 셋을 전부 한글로 지어, 누리, 우리, 나래로 지었지만 나는 애들 이름을 혜경(惠敬), 용범(鎔範)이로 지었다.

 

한글 이름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글 이름은 특이한 것이 아니면 너무 흔한 것이라 마음에 안 들어서다. 자람이, 보람이, 하늘이, 샛별이 등은 너무 흔하고 초롱초롱 빛나리’, ‘박차고 오름등은 애 이름 가지고 장난하는 것 같아 싫었다.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ID(identification)라는 것을 다 가지고 있지만 예전엔 이름 앞에 호()를 가지고 있어 이름을 부르는 대신 그 호를 불렀다. ID는 인터넷사이트에서 자기 주소를 찾을 때에 쓰는 것이라서 남들이 부르기 쉬운 것보다는 복잡한 기호체계로 되어 있지만 호는 보통 두 글자로 되어 있어 기억하기도 좋고 부르기도 좋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대부분의 사대부가 호를 가지고 있었으나 요즘 시대에는 학자나 예술가들만이 가지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대개 사제지간에 스승이 호를 내려주거나 동문 간의 항렬에 따라서 호를 짓던 풍습이 있다 보니 보통 사람들은 스스로 호를 짓기가 어색하거나 쑥스러워 그럴 거다.

 

나는 취미로 사진을 찍으면서 스스로 호를 지었다. 아니 스스로 지은 것은 아니고, 호를 어떻게 지을까 하고 고민할 적에 같이 사진을 찍으러 다니던 훈식이 형님이 장난삼아 몇 개를 들어 주셔서 그 중의 하나로 정했다.

 

내가 건방을 떨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술자리에서 장난삼아 호를 하나 지으려고 고민 중이라 했더니 훈식이 형님 얘기가 늘 다니는 술집이, 진미통닭이고 대청마루집이니 진미통닭이나 대청마루로 해라라고 했다. 장난삼아 한 얘기였지만 언뜻 스치는 것이 대청마루의 마루였다. 그래서 그날로 내 스스로 호를 마루라고 정하고 여기저기에 알리고 다녔다.

 

무슨 시건방을 떠느냐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것은 내 스스로 선택한 내 이름이나 다름없다. ‘영주라는 이름은 부모님께서 주신 것이지만 마루는 내 스스로 지은 이름이다. 사진을 하는 동호인들 중에서 인터넷을 자주 찾는 사람들은 마루라는 이름이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마루라는 이름으로 글을 많이 올렸기 때문이다.

 

마루는 넓고 평평하다는 뜻으로도 쓰이고, 높은 꼭대기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대청마루, 쪽마루, 튓마루 등이 있고, 산마루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마루는 꼭대기의 뜻보다는 그저 넓고 평평해서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그런 공간이기를 바랄 뿐이다.

 

예전처럼 한다면, 내 이름은 마루 이영주이다. 그냥 마루라고 불러도 좋고 또는 이 마루라고 불러도 괜찮다. ‘영주혹은 이영주가 더 맞겠지만 나중에 공식적인 이름으로는 마루 이영주로 불리어지길 바란다.

 

인터넷상에서 마루(maru)라는 아이디(ID)를 쓰는 사람이 여럿 있다. 다른 곳은 잘 알지 못해도 사진클럽들에서는 자주 보인다. 나보다 먼저 사이트에 등록을 해 놓았으니 내가 늦은 셈이다. 그래서 나는 사이트에 가입할 때는 k2maru를 즐겨 쓴다. 내가 'maru' 앞에 굳이 k2를 붙인 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진기가 펜탁스 K2DMD이고 히말라야의 고봉 중에 K2봉이 있기 때문이다.

 

야후(www.yahoo.co.kr)에는 이미 k2maru가 등록이 되어 있어 거기는 내가 k2maru_kr로 등록할 수밖에 없었지만 다른 사이트들은 내가 먼저여서 k2maru로 내가 등록한 곳이 많다.

 

이름을 잘 지어야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 이름도 그렇지만 상호(商號)도 그렇다고 한다. 내가 사물을 인지하고 인식할 때부터 영주(瑛周)’는 내 이름이었다. 아버지가 지어주신 영주(瑛周)’도 좋은 이름이라 생각하고, 내가 스스로 지은 마루'k2maru'도 잘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나의 이름에 걸맞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