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샤와 흰 당나귀

2012. 3. 27. 19:41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3(마지막 휴머니스트)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대학생이 선생님께 무슨 선물을 하냐고 웃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선생님께 선물을 한 적이 두 번 있다. 한 번은 어머니가 보내주신 꿀을 선물이라고 갔다 드렸고, 다른 한 번은 선생님 생신 때에 어렵게 양주를 구해서 선물로 가져다 드렸다.

 

내가 군에 가기 전에는 큰 누님 댁에서 벌을 쳤었다. 원래 그 벌은 오서초등학교의 초대 교장이셨던 김종성 선생님이 어디 다른 곳에서 구해오신 거였다. 처음에 양봉 한 통을 구해오신 것이 자꾸 새끼를 쳐서 학교에도 여러 통이 되었으며 교장 선생님과 가까운 분들이 얻어다가 양봉을 쳤다.

 

내가 대학교 2학년 2학기에 모범장학금을 받았는데 학비 전액은 아니었고 반액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나는 고등학교 때도 2년간 장학금을 받았지만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았다는 것은 시골에서 대단한 일로 생각해주었던 시절이다.

 

가을에 아우 결혼식이 있어서 집에 왔을 때에 어머니가 교수님 드리라고 꿀을 한 병 주셨다. 내가 서울까지 조심해서 가져다 놓기는 했지만 그것을 학교로 들고 가서 교수님께 드리기가 영 민망했다. 그래서 한참을 이문동 영세네 집에 두었었다. 어느 날 책상 위에서 무엇인가를 내리다가 꿀 병을 밀어 떨어트렸더니 병이 아주 바스러져 버렸다.

 

영세네 아주머니가 얼른 그릇을 가져다가 체로 바쳐 놓았고 밖으로 흘러 나간 것이 없어서 다시 병에 담아보니 도로 한 병이었다. 나도 놀랐지만 영세네 아주머니도 많이 놀랐고 꿀의 효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과학으로 증명한 것은 아니지만 꿀은 유리병을 약하게 만드는 성질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 꿀 병을 교수회관으로 가져다 드리자니 선생님이 들고 가시기가 불편할 것 같고, 그렇다고 내가 선생님 댁으로 그것을 들고 찾아가자니 너무 어색한 것 같아서 계속 영세네 집에 두었다가 방학을 할 무렵에 할 수 없이 내가 댁으로 가져다 드렸다.

 

대학 4학년 때에 선생님 생신이 다가와서 양주를 한 병 선물하고 싶었다. 지금이야 그게 다 내 환상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양주가 최고로 좋은 술인 줄 알았고 교수님들은 다 양주를 좋아하시는 줄로 알고 있을 때였다. 그때만 해도 양주는 가짜가 많다고 해서 아무데서나 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것이 신라호텔에서 근무하고 있는 군 시절 훈련병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교육한 서울병력 중에 산적이라는 별명을 가진 훈련병이 입대 전에 신라호텔에 있었고 전역한 뒤에도 거기 근무하고 있었다.

 

먼저 내가 전화로 얘기를 했더니 그 친구가 신라호텔로 오라고 해서 삼의원에서 가깝게 지내던 기계학과 동호하고 같이 찾아갔다. 나는 거기서 양주를 구할 수 있을 줄 알았으나 그는 남대문에 있는 밀수품가게를 연결해주었다. 신라호텔에서 콜라 한잔씩 마시고 나와 그 친구가 알려준 대로 찾아갔더니 노점에서 장사하는 아저씨가 감춰두었던 양주를 내어주었다.

 

나는 당시에 양주라고 하면 시바스리갈이나 죠니워커뿐인 줄만 알았지만 거기서 내준 것은 화이트호스였다. 흔히 말하는 백마표가 그것이었다. 그 화이트호스도 15,000원이나 하는 당시로는 비싼 거였다. 그 돈이면 우리끼리 가는 술집에 세 번은 갈 수 있었다. 내가 양주를 사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고 마지막인 셈이다. 그 술은 박스도 없는 것이어서 포장을 하기도 어려웠다. 나는 포장지로 둘둘 말아서 교수회관으로 선생님께 생신선물이라고 가져다 드렸다.

 

그날 같이 갔던 동호는 내가 양주를 산 것이 무척 신기했던 모양이다. 동호는 내가 늘 바른 생활만 한다고 생각했던 터라 밀수 양주를 사는 것이 이상했던지 나를 여러 차례 놀렸다. 사실 선생님을 위한 것이라면 밀수 양주를 사는 것이 문제였겠는가? 지금 생각하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지만 그때는 그랬다.

 

나중에 학교에 근무하면서 스승의 날 무렵이 되면 나도 양주를 선물로 받았다. 한 때는 술을 좋아한다고 소문이 나서 상당히 많은 양주가 들어왔다. 집에 한두 병은 가져갔지만 그 술의 대부분은 연세든 어른이 계신 젊은 교사들에게 주었다.

 

교수회관으로 불쑥 양주를 들고 온 나를 선생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셨을지 모르지만 그 술이 내가 선생님께 선물했던 유일한 양주였다. 내가 선생님을 모실 적에는 거의 소주를 마셨다. 나는 선생님을 뵐 때 양주를 들고 다니지는 않았다.

 

내가 선생님 댁에 세배를 가면 선생님께서 소주를 마시고 계시다가도 내가 들어가면 양주를 내어 놓으셨다. 선생님이 그러시는 것이 솔직히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안했지만 그게 다 나를 아끼시는 정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셨다.

 

어떤 때는 선생님 댁에 가면 집에 들어 온 양주를 내어주시며 집에 가져가라고 하신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선생님께서 양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사실 나도 양주를 좋아하지 않았다.

눈이 나린다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백 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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