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28. 19:11ㆍ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3(마지막 휴머니스트)
지금 어디메쯤 /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 그분을 위하여
나는 대학 3학년이 되면서 국문과 학회장에 출마할 생각을 했다. 내가 복학을 했을 때는 79학번 학수가 학회장이었다. 학수는 아주 멋쟁이였다. 코가 우뚝하고 잘 생긴 귀공자스타일로 긴 버버리외투를 입고 1학년 강의실에 들어와 학회장선거에 대해서 설명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학수가 아주 멋지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복학을 하고 나서 얼마 안 지난 3월 중순에 국문과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새 학회장을 직접 선거로 뽑았다. 78학번인 관식이 형과 81학번인 범수, 현진이가 출마하여 3파전을 벌인 선거였다.
우리 국문과 1학년인 정원이의 누나가 가정관리학과에 다니고 있으면서 범수하고 친하다고 하여 1학년 학생들은 범수에게 많은 표를 주었다. 선거에 참여한 학생들은 대부분 1학년 2학년이고 3, 4학년은 얼마 안 나왔었다.
나는 이왕이면 복학생이고 나보다 선배인 관식이 형이 되기를 바랐지만 내어놓고 선거에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범수의 발언이 나를 아주 기분 나쁘게 하였다. 딱 한 마디로 끝낸 소견이, ‘늙은 개는 짓지 못한다.’였다.
내가 분개했던 안 했던 선거는 아주 재미있게 진행이 되었다. 선거규정상 투표자의 과반수이상의 득표를 해야 학회장에 당선이 될 수 있어서 후보가 셋이 나오면 재투표를 하는 상황까지 가기가 쉬웠다. 아닌 게 아니라 1차에 과반수를 얻은 사람이 없어서 관식이 형과 범수를 놓고 재투표를 하였으나 동점이 되어 3차까지 갔다.
재투표가 끝나고 잠시 쉬는 사이에 나는 밖에 나와서 눈에 띄는 1학년 학생이 있으면 무조건 관식이 형을 찍으라고 얘기를 했다. 되든 안 되든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해주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해서인지 잠시 뒤에 있은 3차 투표에서는 관식이 형이 두 표를 더 얻어 학회장에 당선이 되었다.
그 다음 해에 학회장은 77학번 정재 형이 단독출마로 찬반을 묻는 선거에서 당선이 되었다. 정재 형이 학회장을 할 때에 내가 2학년 과대표를 했다. 나는 정재 형의 우유부단한 일처리를 아주 싫어했다. 일을 함에 있어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하지가 않아서 불만스러웠던 거였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서 정재 형이 임기를 다하고 새로 학회장을 선출할 때가 왔다. 나는 총학생회장이나 문리대학생회장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국문과 학회장은 꼭 하고 싶었다. 이것은 이미 2학년 때 마음을 굳힌 거였다.
나는 2학년 1학기에 과대표를 한데다가 학과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여 장학금을 받는 모범 학생의 반열에 올라 있어 누가 나오든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누가 나와도 별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을 했더니 하필이면 선일이가 출마를 하겠다고 나온 거였다. 거기다가 시만이 까지 출마를 하여 학회장 후보가 셋이 되었다.
선일이는 내가 국문과에 복학하여 아주 가깝게 지내는 사이인데다가 집에도 자주 놀러가서 그 가족들과도 친한 사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일이가 출마한 것이 이해가 안 되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선일이는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어도 노래를 잘 하고 노는 자리에는 나보다 훨씬 나은 실력이 있었다.
나와 선일이 둘 다와 친한 대희와 수명이가 가운데서 난처해했지만 나도 선일이도 중간에서 쉽게 생각을 꺾을 사람들이 아니었다.선일이가 선거운동을 하고 다녀도 나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당당하게 겨루어서 지면 깨끗하게 승복할 생각이었다. 아니 나는 자신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제대로 봤다면 내가 안 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선일이와는 늘 가깝게 지내는 사이여서 나하고 친한 사람들은 다 선일이하고도 친한 것이 조금 껄끄러웠지만 그 사람들에게도 부탁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은경이가 나를 찾아와서 선거에 나갔으면 선거운동을 해야지 왜 형만 가만히 있느냐고 따져서 조금 미안했을 뿐이다.
나는 국문과에서 철저한 보수주의자로 자타가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학회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운동권의 결집도 있었다. 그들은 선일이를 지지했다. 그러나 당시엔 운동권으로 분류가 되던 국문과 학생들 중에서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나를 무시하지 않았다. 나도 그런 사람들은 무시하지 않았고 공부를 안 하면서 운동에 열심인 사람들을 싫어했을 뿐이다.
일주일 정도의 선거 운동기간이 끝나고 마침내 국문과 학회장을 뽑는 시간이 왔다. 선일이와 시만이가 양복을 빼 입고 올라가서 길게 얘기했지만 나는 점퍼차림으로 올라가서 단 3분도 걸리지 않았다.
국문과를 위해서 내가 학회장이 되어야겠다는 책임감, 내가 국문과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명감, 그리고 국문과가 나를 원한다는 소명의식 때문에 출마했으니 나를 믿고 표를 달라는 간단한 호소로 끝냈다.
다른 때 같으면 4학년과 3학년은 거의가 투표에 참석하지 않았으나 나를 싫어해서 참석한 사람들과 나를 지지하기 위해서 참석한 사람들이 대거 몰려 국문과 학생 거의 전부가 투표에 참석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나를 지지하는 발언을 한 사람이 4학년인 81학번 승인이었고, 선일이를 지지하는 발언을 한 사람은 3학년인 82학번 권우였다. 시만이는 1학년인 84학번 선호가 지지발언을 했다.
이미 여기서 승패가 갈렸다. 승인이는 당시 국문과에서 열심히 공부하기로 손에 꼽히는 친구였다. 승인이는 운동권이라고 말을 하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진보적인 성격이었고 누구에게도 욕을 먹지 않은 성실한 학생의 표상이었다. 그런 승인이의 지지발언은 4학년 표를 대거 내게로 끌어오는 효과를 가져왔다.
국문과 전체 학생이 270여 명이 채 안 되는 숫자였으나 투표에 참석한 사람은 250명이 넘었다. 1차 투표에서 내가 173표를 얻어 한 번에 선거가 끝이 났다. 나는 솔직히 2차까지 가게 되면 중간에 사퇴할 생각을 했었다.
내가 압승을 거둔 것은 나를 잘 알지 못하는 1학년에서도 몰표가 나왔고 각 학년에서 골고루 표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다들 나의 압승에 놀랐다고 한다. 학회장이 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성적우수 장학생으로 학비 전액을 받고 있어서 필요가 없었다. 그 장학금이 누구에게 갔는지는 모르지만 운이라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십니다. / 그 분을 위하여
-조병화, 「의 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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