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로 모시고

2012. 3. 30. 20:25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3(마지막 휴머니스트)

   

 

 

200688일이 선생님 생신이셨다. 선생님의 이번 생신은 장어집으로 모실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 자주 가는 장어집이 강화도에 있었다. 벌써 20여 년 전부터 강화도 덜머리의 장어구이가 아주 유명했다.

 

박희문 선생님이 계신 자리에서 강화도 장어집 얘기를 했더니 선생님께서는 강화도에서 가장 싸고 맛있는 집을 알고 계시다고 했다. 강화읍에서 외포리로 가는 길가에 있다고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나서 나는 선생님을 그 집으로 모실 생각을 했다.

 

선생님께서 지난 초여름에 용인으로 이사하셨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나는 가서 뵙지 못했었다. 생신 일주일 전에 선생님께 시간을 내시라고 전화를 드리고는 8일 아침에 경후와 둘이서 용인 민속촌으로 갔다.

 

아침에 선생님과 통화를 하면서 선생님이 알려 주신대로 이리저리 찾아서 갔으나 우리는 쉽게 찾지 못해서 아파트단지를 두 바퀴나 돈 뒤에 선생님이 사시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거기는 광장동에 사시던 아파트보다 많이 넓어 보였고 구조가 네모지게 딱 떨어진 것이 달라 보였다.

 

우리는 음료수 한 잔씩을 마시고는 선생님을 모시고 나왔다. 다른 해 같으면 선생님 친구이신 전 교수님도 함께 모셨을 것이나 용인으로 해서 강화도로 가는 길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해마다 선생님 생신에 참석하는 기윤이에게만 전화를 했더니 기윤이가 오늘 일이 있다고 해서 나중에 보자고 했다.

 

선생님께 바람도 쐬실 겸해서 강화도로 모시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여름이라 회는 조금 조심스러워서 오늘은 장어구이로 모시겠다고 말씀 드렸다. 선생님은 아주 좋아하시면서 영주가 같이 가는 곳이라면 무엇이든 좋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다시 선생님께 강화도에 살고 있는 예전 선배 선생도 같이 자리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니까 선생님께서는 쾌히 그러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박희문 선생님께 전화를 드리고 댁으로 모시러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박희문 선생님이 계시는 팬션 숲속의 아침에 가서 선생님을 만났다. 나는 사모님도 같이 가시자고 말씀드렸으나 아니라고 하셔서 박희문 선생님만 타시고 선생님이 안내하는 대로 경후가 장어구이집을 찾아갔다. 그 집은 내가저수지 바로 부근 동네 길가에 위치해 있었다.

 

강화도에서 제일 싸고 맛있는 집이라고 간판이 붙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서너 팀이 앉을 수 있는 공간으로 되어 있어 우리는 마루에 올라가서 자리를 했다. 그러고서 두 분 선생님은 정식으로 인사를 하셨다. 경후는 나하고 워낙 많이 돌아다녀서 두 분 선생님과 자주 보는 편이라 그냥 편하게 인사를 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우리 선생님과 박희문 선생님은 내 일로 인해서 서로 보신 적이 있었다. 출판기념회를 두 번 했으니 그때마다 서로 만나셨고 어느 술자리인가에 내가 두 분을 같이 모신 적이 있었다. 연세는 우리 선생님이 다섯 살 쯤 더 드셨지만 혹 선생님이 박 선생님께 하대를 하실까봐 조심스럽긴 했다. 다행이도 그것은 기우였다. 선생님은 박 선생님이 편하시도록 신경을 써 주셨다.

 

나는 언젠가 선생님이 술에 취하셔서 함께 자리한 다른 분께 하대말씀을 쓰셔서 놀란 적이 있다. 내가 여러 선생님을 함께 모신 자리였다. 우리 선생님은 거기 오신 분들이 다 비슷하게 선생님보다 연세가 아래인 줄로 아셨던 모양이다. 그 자리엔 선생님보다 세 살 더 드신 분도 계셨었다. 나는 그때 놀라서 선생님과 다른 분이 함께 하실 때는 신경이 쓰였다.

 

나는 박 선생님께도 넌지시 선생님이 술에 취하시면 실수를 하실 지도 모르니 이해하시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박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영주 은사이면 내게도 같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셔서 마음을 놓았다.

 

두 분 선생님은 술로는 좋은 상대가 되실 만하셨다. 두 분 다 보통 두세 병은 마시는 편이시고 나도 그만큼은 마시니 오늘 자리는 잘 된 거였다. 나는 우리 선생님이 취한 모습은 가끔 보지만 박 선생님이 취한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어느 곳을 가도 박 선생님하고 있으면 걱정할 일이 없었다.

 

선생님은 몇 잔 드시면서 말씀을 시작하셨다. 이런 자리에서는 늘 시작이 우리 영주는…….’ 이어서 계면쩍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제는 나도 만성이 되어서 그러려니 할 뿐이다. ‘우리 영주는 지난 22년간 내 생일과 설날, 스승의 날, 추석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를 이렇게 모십니다.’ 선생님은 내 칭찬으로 말씀을 꺼내셨다. 추석에는 내가 선생님 댁에 한 번도 가지 못했지만 선생님께서 혼동을 하신 것인지 아니면 그냥 알면서도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우리 영주가 어디에 가서 좋은 것을 먹으면 반드시 나를 그 집으로 다시 모시고 갑니다. 내가 예전에 영주 때문에 강화도에 와서 등소평이가 즐겨 먹었다는 술에 취한 새우를 먹은 적이 있습니다.……나는 잘 모시지도 못하면서 좋은 날에 선생님을 찾아뵙는 것은 거르지 않았었다. 특히 선생님 생신 때는 내가 아는 한도에서 제일 좋은 곳으로 모시고 싶었다.

 

선생님의 기억력은 누구나 다 찬탄하는 바이지만 선생님은 벌써 10년도 더 된 얘기를 정확하게 꺼내셨다. 내가 예전에 누구의 초대인지 기억도 안 나는 초대를 받아서 강화도 어딘가에 가서 술에 취한 대하구이를 먹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대하양식이 일반화되지 않은 때여서 대하 자체가 귀했었고 그 집은 등소평이 영양식으로 즐겼다는 술에 취한 대하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나는 대하구이가 아주 인상 깊었기에 나중에 선일이를 불러 그 집으로 선생님을 모시고 갔던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아직도 그 일을 잊지 않고 계신 것이었다. 나는 선생님이 말씀을 꺼내셔서 아련하게 기억이 날뿐 거기가 어딘지도 생각이 안 났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을 꺼내시면서 여러 얘기가 오고 갔다. 박 선생님도 영일에 계시다가 다른 학교로 가시면서 매월 한 번씩 만나기로 하여 그 약속을 거의 다 지켜오고 있기 때문에 나에 대해서라면 좋은 말씀만 하시니 두 분께서 의기투합하셨다.

 

기분이 좋은 자리는 술을 더 빨리 마시게 만든다. 나야 두 분 선생님을 다 좋아하고 존경하니 저절로 마음이 흐뭇하여 두 분께 자꾸 권해드리고 두 분은 함께하면서 마음이 통하니 자주 비우셔서 짧은 시간에 선생님과 나는 취기가 올랐다.

 

우리는 두어 시간 마셨다. 그러고는 일어나서 화도면 마니산 주차장 부근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 동네가 작아 맥주집이 없어 가게에서 캔 맥주를 사다가 가로공원에 앉아서 마셨다. 한여름이었지만 강화도라 그런지 나무 그늘에는 앉아 있을 만 했다.

 

거기서 조금 바람을 쐬고는 다시 박 선생님을 댁으로 모셔다 드렸다. 들어가서 차라도 한 잔 하고 가라고 말씀하는 박 선생님께 길이 막히면 어려우니 그냥 가야겠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더 늦어져서 사람들이 움직일 때가 되면 길이 막힐까봐 걱정이 되었던 거였다.

 

박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는 강화도를 벗어나 서울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용인으로 갈 때에 나는 자꾸 졸음이 쏟아졌다. 내가 졸면서 운전하는 경후를 보니 경후도 눈이 자꾸 감기고 있었다. 선생님은 뒤에 앉으셔서 취중 말씀을 하시고 계시나 선생님께서도 당신이 하시는 말씀을 모르시는 것 같았다.

 

큰일이었다. 경후가 술을 마신 것은 아니었지만 사고가 나면 보나마나 음주운전으로 이야기가 나올 거였다. 나는 경후에게 졸지 말라고, 큰 일 난다고 말을 하면서도 자꾸 졸음이 밀려 왔다. 나는 어디 길가에 차를 대고 졸고 싶었지만 도로가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좌우로는 차가 거침없이 달려서 갓길로 빠져 나갈 수도 없었다. 나는 라디오볼륨을 높여 놓고 경후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내가 먼저 정신이 들기 시작했던 거였다, 그렇게 한 10분 지나니까 경후도 졸음에서 깬 목소리로 바뀌었다. 오랜 시간 경후하고 차를 타고 다녔지만 이런 일은 두 번째였다.

 

정신이 들기 시작하니까 나는 조금 전의 일이 다시 생각났다, 정말 아찔한 일이었다. 선생님은 그때까지도 취기가 남아 있어 우리가 하는 얘기를 듣지 못하신 게 분명했다. 선생님께는 죄송스런 일이었지만 선생님께서 모르시는 것이 다행이기도 했다.

 

흐뭇하고 아찔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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