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30. 20:57ㆍ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3(마지막 휴머니스트)
2007년 6월 15일은 금요일이었다.
3교시가 비어서 일찍 점심을 먹고 올라왔더니, 내 자리에 전화번호가 메모되어 있었다. 수원에서 근무하는 호태였다. 왜 삐삐를 치지 않고 전화를 했는지 궁금했다. 내가 자리에 막 앉으며 수화기를 드는데 함 선생이 내 자리로 와서,
“제가 전화를 받았는데 교수님이 돌아가셨다는 메시지가 왔다고 전화를 달라고 했습니다.”
“어떤 교수님? 내가 지금 전화로 확인할 참이야.”
수첩을 열지 않고 메모가 된 번호로 전화를 하니, 호태가 바로 받았다.
“야, 갑자기 무슨 일이냐?”
“아, 형님. 휴대폰에 ‘고경식 교수 별세 경희의료원 영안실’이라고 메시지가 왔어요. 형님은 무슨 소식 들었어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고 교수님이 돌아가셨다구? 누가 보낸 거냐?”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경희대국문과로 되어 있어서 전화를 했더니, 계속 강의 중이라고 메시지가 뜨네요.”
“전화 끊어. 내가 지금 당장 확인하고 다시 전화할게.”
나는 수첩을 열고 규범이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가 두어 번 가니까 규범이가 전화를 받았다.
“나야, 선생님이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다는데 무슨 소리야?”
“예, 선생님, 선생님께서 돌아가셨어요. 지금 여기 경희의료원입니다.”
“뭐? 정말 선생님이 돌아가셨단 얘기야?”
“네, 술을 드시고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언제 술을 드셨는데?”
“어제 서울에 가시어 친구 분을 만나 술을 드시고 오셨는데 아침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알았네……. 내가 5교시 수업을 마치는 대로 바로 갈게”
전화를 끊고 자리에 주저앉으니 나는 머릿속이 하얗지는 느낌이었다. 바로 호태에게 전화를 했다.
“나야, 선생님 돌아가셨대.”
“아니, 어떻게?”
“어제 서울에 가셔서 친구 분들 만나서 술을 드셨나봐? 그리고는 아침에 못 일어나셨대.”
“어디래요?”
“경희의료원, 나는 5교시 끝나고 바로 갈 거야. 언제 올래?”
“애들한테 연락하고 저는 밤에 가야할 것 같네요.”
“그래, 그럼 이따가 보자.”
호태와 통화를 마치고 나는 집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내 목소리에 물기가 있었는지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내 목소리가 더 잠겨서 ‘선생님 돌아가셨어’ 라고 했지만 잘 안 들리는 모양이었다. 재차 무슨 일이냐고 물어오는데 내 대답은 더 축축해졌다.
‘고 교수님이 돌아가셨다구’ 큰 소리로 말했더니 그제야 알아듣고 물기 젖은 목소리가 다시 온다. ‘갑자기 그게 무슨 얘기여요?’, ‘나도 모르겠어. 경희의료원 영안실에 모셨다니 가봐야 알겠지. 나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병원으로 갈게. 가봐서 밤늦게 집으로 가든지 거기서 새우든지 할게.’ 나는 전화를 끊고 나서 오늘, 내일 처리할 일들을 생각했다.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았고,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나는 다시 전화를 들고 영희에게 전화를 했다. 영희가 휴대폰을 받지 않아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영희야 선생님 돌아가셨단다.’고 메시지를 남기고는 은경이에게 전화를 했다.
낮에 전화를 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놀라서 묻는다. ‘형이 이 시간에 전화를 다하다니요?’, ‘음- 소식 못 들었지? 선생님이 돌아가셨단다.’ ‘형,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선생님이 돌아가시다니요?’ 은경이가 되물었다.
‘고 교수님이 돌아가셨다구, 나도 가봐야 알겠어. 경희의료원이래. 조금 있다가 그리로 갈 거야. 오늘 올래?’ 내 목소리도 우는 소리에 가까웠다. ‘이따가 저녁에 갈게요.’ 은경이 목소리도 물기가 잔뜩 묻어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나는 자꾸 눈물이 나왔다.
영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는 목소리였다. ‘형,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나도 모르겠어. 그냥 돌아가셨대.’ 나도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나는 조금 있다가 경희의료원으로 갈 생각인데 언제 올래?’ ‘집에 들렀다가 바로 갈게요.’ ‘그래, 울지 마라. 이따가 거기서 보자.’ 나는 전화를 끊고 1교무실로 갔다. 벌써 그 사이에 4교시가 끝나고 점심시간이었다.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벌써 두 시간이 흘러간 거였다.
1교무실, 특활부로 가보니 운선이가 자리에 없었다. 아마 점심을 먹으러 간 모양이다. 나는 화장실에 들러 얼굴을 물로 닦고 학생부로 돌아오다가 운선이를 만났다.
“연락 받았나?”
“예, 형님, 이게 무슨 일이래요?”
“나도 가봐야 알겠어. 규범이 말로는 어제 서울에서 술을 드시고 오셔서 돌아가셨다는데 무슨 얘긴지 모르겠어.”
“형님은 언제 가실 거여요?”
“수업 끝나면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바로 갈 생각이야.”
“저도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조금 늦게 갈게요. 오늘 밤은 거기서 새울 생각이에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구.”
학생부로 와서 생각을 하니, 광화에게 전달을 못한 것이 생각이 났다. 우리 학교에 경희대국문과 출신은 광화, 운선이와 나 셋이다. 나는 다시 1교무실로 가다가 광화를 만났다.
“아니 형님, 선생님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무슨 일입니까?”
“나도 가봐야 알겠어. 수업 끝나면 바로 갈 생각이야.”
“저는 집에 들렀다가 저녁에 가겠습니다. 거기서 뵐게요.”
“그래, 이따가 보자구.”
나는 교감 선생님께 내일 학교에 못 나온다고 말씀드렸다. ‘제게는 아버지 같으신 선생님이 돌아가셔서 오늘 당장 가봐야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부장회의에는 오치훈 선생을 대신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수업이 끝나는 대로 바로 나가야할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교감 선생님은 두말없이 그러하고 하셨다.
오늘은 금요일이라 6교시 수업만 하면 내 수업은 모두 끝이 난다. 바로 학생부로 와서는 오늘과 내일 사이에 내가 할 일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선 급한 일이 모레 윤정이 결혼식에 주례를 서기로 한 것이었다. 모레면 장례식인데 주례를 서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앞에 앉아 있는 유재량 선생에게 물었다.
“유 선생, 대충 상황을 짐작하겠지만 우리 은사님이 돌아가시어서 내가 거기 가봐야 하는데 모레 이윤정 선생 결혼식에 주례를 서기로 했거든. 지금 전화해서 주례를 알아보라고 하면 어떨까?”
“부장님, 냉정하게 판단해보십시오. 주례를 어떻게 이제 와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수 있겠습니까? 결혼식이 일주일 앞이라고 해도 곤란한 일을, 당장 모레인데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아니, 잘 알지만 내가 선생님 장례식에 꼭 가야 하거든.”
“부장님, 장례식도 중요한 일지만 결혼식도 일생에 한 번 있는 중요한 일입니다. 이윤정 선생이 부장님을 믿고 부탁한 일인데 여기서 잘못되면 두고두고 얼굴을 대하기가 어려워질 것입니다. 오늘, 내일 가서 일 보시고 모레는 결혼식 주례라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게 그런가?”
“부장님이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신다면 제 말이 맞을 겁니다.”
“그래, 알았네.”
나는 윤정이에게 전화를 하려던 것을 그만두고, 선일이, 대희, 수명이에게 했다. 선일이는 신호가 가도 안 받아서 음성메시지를 남겼고, 대희, 수명이 하고는 통화가 되었지만 금방 올 수가 없다고 했다. 다들 무슨 영문인지 정신없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까운 목동에 사는 미경에게 전화를 했다. 미경이가 불과 한 달 전에 선생님을 뵈었을 때에 그렇게 건강하셨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구 울음 섞인 목소리로 묻는다. 나도 아직 확인을 못했으니 제대로 알려 줄 수가 없었다. 나중에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얘기했다.
나는 경후에게도 전화를 해서 선생님의 부음을 전했다. 엊그제 출판기념회에서 정정한 모습을 뵈었던 터라 경후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주례를 서야한다면 머리도 깎아야 될 것 같았다. 이제 시간은 내일 하루밖에 없으니 오늘 모든 준비를 다 끝내야할 거였다.
선생님께 가져갈 조의금 봉투를 만들어 가방에 넣고는 나는 순희에게 전화를 했다. 순희는 벌써 소식을 들었는지 울먹이며 전화를 받았다. 나도 또 눈물이 났다. 순희는 얼마 전 스승의 날에 내가 종로에서 선생님을 뵙는다고 할 적에 온다고 하더니, 갑자기 일이 있다고 못 온 것이 너무 후회스럽다고 한다. 세상일을 미리 알 수 있다면 누가 후회할 일을 만들랴?
전화를 끊고서 다시 기윤이, 중기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전화번호를 알게 된 양주시청에 근무하는 84학번 명희에게 전화를 했더니, 놀라면서도 오겠다는 말이 없었다. 하기는 다들 자기 사정이 있을 것이니 내가 강요할 일은 아니다.
6교시 종이 쳐서 수업을 들어갔으나 내 목소리도 가라앉고 기분도 그래서 애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선생님의 선생님이 갑자기 돌아가시어 거기 가봐야 하는데 내가 목소리가 안 나와서 수업을 못하겠으니 자습을 하라고 했다. 애들도 내 기분을 눈치 챘는지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 나는 바로 1교무실에 가서 교감 선생님께 퇴근한다고 말씀 드리고 학생부로 왔다. 오치훈 선생에게 내 사정을 이야기하고 내일 아침에 부장회의에 대신 들어가라고 일렀다.
나는 집으로 오다가 고은사우나에 들러 이발을 하고 신발을 닦았다. 모레 아침에 집에서 바로 결혼식장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미리 준비를 해두려는 생각에서였다. 집에 들어가서 옷을 가볍게 바꿔 입었다. 늦게까지 있어야할 것이고 혹 심부름이라도 하려면 편한 복장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나는 검정색 바지에 검정색 남방을 입고 나가서 바로 택시를 탔다.
내가 예전에 대학원을 다닐 적에 학교 앞에서 술을 많이 마시면 택시를 자주 타고 왔지만 집 앞에서 회기동까지 택시를 타고 간 일은 거의 없었다. 택시는 내부순환도로를 타고 종암동으로 내려가서 경희대 앞까지 갔다.
나는 경희의료원 앞에서 내려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공간을 따라 빈소로 갔다. 경희대의료원영안실은 예전에 선일이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적에 와보고는 두 번째이다. 쭉 들어가니 지하가 나왔고 거기로 해서 1층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1충으로 올라가니 낯이 익은 얼굴들이 간간이 보였다. 인사를 하는 후배들에게 눈으로 답례를 하고 안으로 가니 안내 자리에 앉아 있던 규범이가 일어서 나왔다. 나는 규범이를 눈으로 만류하면서 빈소로 들어갔다.
검은 옷을 입은 사모님과 우리, 주환이가 서 있었다. 선생님 영정사진은 모자를 쓰고 웃으시는 얼굴이셨다. 언제 영세를 받으셨는지 이름이 토마스 아퀴나스셨다. 내가 향을 올리고 절을 하려 엎드리니, 갑자기 눈물이 복받쳐 올라 나는 그대로 머리를 바닥에 대고 10여 분간 울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다니……, 설마 이게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동안 선생님과 함께 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바로 일주일전에 뵈었을 적에 내가 까부느라 선생님 행장을 내가 쓰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정말 이렇게 돌아가시다니……,
아무리 덧없는 게 인생이라지만 이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이젠 선생님을 아무리 외쳐 불러도 다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온갖 설움이 끊이지를 않았다.
나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었지만 울음이 쉽게 가라앉지를 않았다. 그렇게 울다가 일어나 재배를 하고 상주들과 마주 인사를 하자니 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서른둘의 우리, 서른하나의 주환이 둘 중의 하나만이라도 결혼을 시키고 돌아가셨더라면 그래도 나을 것을, 하루아침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내가 무슨 위로의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말인가? 눈물로 범벅이 된 내 얼굴을 보면서 사모님도 우리도 주환이도 말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선생님이 이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다. 정말 이게 꿈이 아닐까 싶었다.
엊그제 선생님 댁 앞에서 뵈었을 적에 곧 날을 잡아서 통영에 모시고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었다. 호태하고 기윤이와 셋이 선생님을 모시고 세근이와 환석이가 내려가 있는 통영에 다녀 올 생각을 했었다. 그 말씀을 드렸더니 선생님이 그렇게 좋아하셨건만 이젠 다 과거형이 아닌가?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서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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