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 9. 09:28ㆍ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3(마지막 휴머니스트)
선생님, 오늘이 2009년 어린이날입니다.
어린이날에 이렇게 선생님께 글을 올리는 것은 23년 전 오늘, 선생님께서 저와 정숙이를 위해 경희대학교 임간교실에서 주례를 해주신 은혜를 떠올려서입니다. 그날도 오늘처럼 날이 참 좋았습니다. 비록 최루탄 냄새 자욱한 교정이었지만 좋은 날에, 좋은 장소에서, 저를 가장 아껴주신 선생님을 모시고 결혼식을 올릴 수 있어 우리는 무한히 행복했습니다.
선생님,
오늘 정숙이, 혜경이, 용범이와 함께 장모님 모시고 나가서 점심을 먹고 들어왔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선생님 돌아가시고, 이제 제 곁에는 장모님밖에 안 계십니다. 제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닌데도 제가 모셔야할 분들이 한 분, 한 분 제 곁을 떠나셨습니다. 한 달 뒤엔 용범이가 입대를 합니다. 슬하의 자식이라더니 이젠 아이들도 다 커서 자기 자리를 찾아 갈 때가 오나봅니다. 입버릇으로 얘기하던 ‘외롭다’는 말을 이제 실감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그렇게 갑자기 떠나신 뒤에 저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선생님의 부재(不在)는 제가 철이 들어 느낀 가장 큰 슬픔이었습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제 곁을 떠나셨다고 슬퍼했는데 괴산 선생님의 ‘금봉은 늘 우리 가슴에 남아 있다’는 말씀을 듣고 다시 생각해보니 선생님은 우리 곁을 떠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선생님은 떠나셨는지 모르지만 저는 선생님을 보내드리지 아니하였습니다.
선생님,
다 보고 계시지요? 사모님, 우리, 주환이가 슬픔에서 헤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꿈에라도 뵙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가끔 선생님을 꿈에서 뵙고 있습니다. 꿈에서 뵙는 선생님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여서 선생님이 언제나 제 곁에 있다는 생각을 접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님,
사람들이 읽지 않는 책이었어도 선생님이 계셔서 마음 놓고 만들었는데 이젠 선생님이 곁에 안 계시니 이런 책을 만드는 것도 부끄럽습니다. 제가 만든 책의 진정한 독자 한 사람이 바로 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읽어만 주신다면 앞으로 열권이 아니라 그 몇 배의 책이라도 만들겠지만 감히 종자기(鍾子期)가 죽은 뒤에 백아(伯牙)가 절현(絶絃)한 것처럼 저도 이제 제가 책을 내는 것은 그만두려 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부족한 이 한 권에 다 담고 싶었지만 제 능력이 미치지 못하여 선생님에 관한 말씀보다 제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 같아 죄송스럽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시고 ‘영주야, 빼 먹은 얘기가 많구나!’ 하실 지도 걱정스럽고, 만들고 나니 또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선생님께서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기 비옵니다.
선생님,
책 제목이 마음에 드실지 걱정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글을 부탁했지만 다들 일이 바쁘다고 영희와 중기만 보내와서 같이 엮었습니다. 이번에도 우리 영일고등학교 국어교사들에게 교정을 부탁해서 손을 보았고, 정숙이가 감수(監修)했습니다. 제가 가난하다고 도서출판 깨우리 이국표 사장님이 원가(原價)에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다들 감사한 일입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선생님께서 가르친 모든 제자에게 ‘우리 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늘 자랑하시던 ‘우리 영주’가 감히 모든 제자를 대표해서 이 부족한 책을 선생님 영전(靈前)에 올립니다. 그냥 웃으며 보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그럼 뵈올 날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2009년 어린이날에 불초(不肖) 제자 영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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