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SLR 사진기의 혁명을 이룬, 미놀타(Minolta)

2012. 4. 5. 21:55The 35mm Camera(마루 엮음)

 

 

 

 

 

 

 

 

 

 

사진기 생산의 꿈

 

미놀타는 192811월에 가즈오 다시마(Kazuo Tashima)가 설립한 일독 사진기 회사(Japan-Germany Camera Company)로 시작되었다. 처음엔 렌즈를 생산하지 못하여 아사히광학에서 렌즈를 납품받아 사진기에 장착했으나, 지금의 일본 사진기 메이커 중에서 렌즈용 광학 유리를 자신의 회사에서 생산하고 있는 곳은 미놀타를 포함한 단지 2개의 회사에 불과하다.

 

광학 유리의 용융(溶融)은 상상외로 큰 설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소량의 광학용 유리를 생산하는 것이 가격 면에서 결코 유리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미놀타가 광학 유리의 자가 융용 설비를 가지고 있으며, 자기 회사의 광학 유리로 렌즈의 생산을 하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것은 한 청년의 사진기에 대한 집념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면에서 미놀타는 아미파의 자리에 놓으면 좋을 거다.

 

아미파는 그 시작이 소림의 무술에서 시작되었다. 곽양 조사가 소림으로 양과를 찾으러 갔다가 각원 대사에게 깨달음을 얻어 문파를 열었던 것이다. 처음 시작은 소림이었다고 하지만 아미파는 무상금광신공(無想金光神功)과 소청검법(小凊劍法), 무상검식(無想劍式), 포옥검(抱玉劍) 등으로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던 것이다. 미놀타가 독일의 라이카와 제휴하여 일본 사진기 렌즈 중의 최고라는 평을 듣기에 아미파의 자리에 미놀타를 놓는다.

 

192829세의 한 청년이 오사카의 센이마야 거리에 ʻ일독 사진기 상점ʼ이라는 간판을 걸었다. 이것이 미놀타의 창업자인 가즈오 다시마(Kazuo Tashima)ʻ사진기 제작ʼ이라는 꿈의 출발점이었다. 다시마가 ʻ일독 사진기ʼ라고 한 것은 당시 최고의 사진기를 생산하는 독일의 기술을 따라잡고 싶어서였다.

 

다음 해인 1929년에 다시마는 미놀타 사진기 제 1호기인 니프카레트(Nifcalette)를 완성하고 회사의 명칭을 몰더 합자회사로 바꾸었다. 처음에 미놀타는 렌즈를 자체 생산하지 못해서 아사히광학으로부터 렌즈를 납품받아 장착했다.

 

1933년에는 나중에 브랜드 이름이 될 미놀타(Minolta)가 등장하였고, 그 뒤를 이어 미놀타 베스트(Vest), 미놀타 식스(Six) 등이 계속하여 발매되었다. 1937년에 다시마는 다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가 염원하던 렌즈 가공 전문 공장이 완성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회사 이름을 ʻ치요다광학정공ʼ으로 변경하였다.

 

19421월 치요다광학정공은 해군 장관으로부터 광학 렌즈 용융 공장의 건설 명령을 받았다. 이것은 치요다광학정공의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었지만 동시에 상당한 투자를 필요 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광학 유리의 생성 자체도 어렵지만 용융의 어려움 역시 ʻ유리는 살아있는 물건ʼ이라는 표현에서 잘 알 수가 있을 만큼 힘든 것이다. 유리는 규산과 소다, 석회, 붕산 등의 혼합물을 고온으로 녹인 뒤에 결정시키지 않고 무리하게 고체화시키는 것으로서 물질의 구조 자체는 액체 상태라는 특수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용융 뒤의 냉각 조건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품질에는 커다란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전시(戰時) 중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시작한 광학 유리인 SK 렌즈의 제작이 뜻대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SK 렌즈는 바륨이 다량으로 들어간 당시의 신기술로서 종래의 광학 렌즈와 비교할 때 커다란 굴절률을 가지고 있었다. 미놀타의 용융 기술로 SK 렌즈의 제작을 성공한 것은 패전(敗戰) 직후였다.

 

 

미놀타의 로커(Rokkor), 그리고 미놀타 렌즈

 

전후의 혼란기에 조금도 쇠퇴하지 않고 광학에 대한 열정으로 어려운 시기를 넘긴 사장 다시마는 1946년에는 스프링 사진기 ʻ세미 미놀타 IIIʼ의 시험기(試驗機)를 완성시켰다. 이는 일본 최초로 렌즈에 코팅을 입힌 사진기였고 미놀타 최초의 수출용 사진기가 되었다. 그 후에도 렌즈 셔터와 포컬플레인 셔터 사진기의 생산을 시작하여 미놀타 35와 미놀타 메모를 탄생시켰고, 다시 한 번 TLR 사진기의 개발에 힘을 쏟았다.

 

이것들은 주력 수출용 상품이 된 개량 형 미놀타플렉스 B와 미놀타 코드, 미놀타 오토코드 등 이었다.

이러한 미놀타의 활약은 전후(戰後) 일본 산업의 부흥에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된다. 미놀타는 렌즈 개발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였다. 렌즈 공장의 설립 후 렌즈의 연삭과 연마를 위한 멜틸접착제의 다이아몬드지석(砥石)을 도입하고, 중심 고정 기계와 정밀 연마용 최신식 구면 생성기 등을 서독으로부터 수입하였다. 또한 기술면에서도 독일 라이카와 제휴하여 미놀타에서 생산하는 로커(Rokkor) 렌즈가 일본에서 생산되는 렌즈 중 최고의 성능을 가졌다는 평을 들었다.

 

독일로부터의 고도의 제작 기계의 도입에 의하여 렌즈의 생산량은 수십 배로부터 수백 배로 대폭 증가하였다. 당시 일본 광학 렌즈 산업계에서는 ʻ1차 기계 혁명ʼ이라고 불릴 정도의 커다란 사건이었다. 이러한 투자는 1962년 기념될 만한 커다란 사건으로 연결되었다.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 비행이었던 ʻ프랜드십 7ʼ에 미놀타 하이-매틱이 탑재되었던 것이었다.

 

우주 비행에서 사용한 하이-매틱 덕분에 광학 성능, 견고성, 조작성 등의 여러 조건들을 만족시킨 ʻ우주 사진기ʼ라는 미놀타의 명성이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이것을 계기로 하여 회사 이름을 ʻ미놀타 사진기(Minolra Camera Co. Ltd)ʼ로 변경하였다. 2차 기계화는 품질의 안정만이 아니고 고성능 렌즈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

 

현재 미놀타에서는 AD(이상 분산) 렌즈를 포함하여 100 종류 이상의 렌즈를 생산하고 있다. 이것들은 굴절률이 각 렌즈의 설계 수치에 적합하도록 검사 기계의 한계치가 소수점 이하 다섯 자리까지 컨트롤된 광학 렌즈이다. 회사 자체에서 광학 유리를 용융하고 일괄 생산을 하여야만 품질의 보증 및 유지가 가능한 광학 렌즈를 제대로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던 미놀타 50년 세월의 역사 축적에서 이루어낸 것이다. 미놀타의 이러한 노력은 AD 렌즈와 비구면 렌즈라는 최첨단 기술로 결실을 맺고 있다. 현재 각 메이커가 필사적으로 제조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비구면 렌즈는 결정적으로 그 성형의 어려움 때문에 양산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미놀타에서는 붉게 용해되어 있는 상태의 유리를 고도로 정밀한 금형을 사용하여, 직접 비구면 렌즈를 제작하는 가라스몰더 형성법을 가장 먼저 개발하여 그 양성화의 디딤돌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이것에 의하여 비용의 절감과 정도(精度)의 확보가 동시에 실현되었고 이것은 먼저 콤팩트 사진기용 줌 렌즈에 실제로 사용되었다. 44매 구성으로 된 렌즈의 첫째 매에 양면 비구면 렌즈를 채용하여 최상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심플한 렌즈를 구성하였다.

 

미놀타는 현재 많은 노하우의 축적으로 보다 고도의 비구면 렌즈의 제작에 도전 중이고, 대구경 비구면 렌즈를 양산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이다. 미놀타는 라이츠와의 제휴로 일본에서 라이카 상표 렌즈를 생산하기도 하였다. 오랜 시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광학 렌즈의 자가 용융 설비를 최대한으로 살리고 있는 미놀타는 이상적인 렌즈 제작의 길을 먼저 걸어가고 있다.

 

 

 

 

미놀타의 사진기

 

 

미놀타는 초소형 사진기와 6×6 판의 TLR 사진기도 제작 발매했지만 여기서는 35mm 롤필름 사진기만 이야기한다.

미놀타에서 처음으로 만든 35mm 롤필름 사진기는 미놀타 351947년에 나왔다. 미놀타 35는 미놀타 최초의 35mm RF 사진기로 소개되었으며 이 사진기는 라이카 스타일로 처음에는 24×32판이었다가 후기에는 24×36mm 화면으로 변경되었다. 교환이 되는 슈퍼 로커 4.5mm/f2.8 렌즈로 라이카 스크루 마운트(Leica Thread)와 호환이 된다. 좌우 주행 포막 FP 셔터로 T, B, 11/500의 셔터 스피드를 가졌으며 여섯 가지 모델의 사소한 변경으로 이어졌다.

 

미놀타 SR-21958년에 발매된 기종이다. 35mm SLR로 퀵 리턴 밀러를 가졌다. 자동 조리개에 좌우 주행 포막 FP 셔터이고 B, 11/1,000초의 셔터 스피드로 미놀타 베이어닛 마운트이다. 이 시기의 미놀타 사진기들은 대부분 미놀타 로커(Rokkor) PF 55mm/f1.8 렌즈를 표준으로 장착하였다.

 

하이­매틱(Hi­Matic)1962년부터 나오기 시작하여 여러 기종으로 생산되었다. 미놀타의 베스트 상품으로 셀레늄 노출계가 내장된 35mm RF 사진기이다. 로코르 PF 45mm/f2.0 렌즈를 장착하고 시티즌 셔터 1/500초의 셔터 스피드이다. 디자인이나 기능에서 조금씩의 진보가 있었고 삼성에서 미놀타와 제휴하여 한국에서도 생산되었다.

 

미놀타 SR-M1970년에 발매된 기종으로 모터드라이브를 측면에 내장시킨 최초의 35mm SLR 사진기이다. 미놀타 SR-T101에서 노출계를 생략시키고 모터드라이브를 조합시킨 것으로 모터의 그립이 사진기의 측면 방향에 있는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이 방법이 홀딩하기가 쉽다는 이유 때문이다.

 

미놀타 XK1973년에 나온 사진기로 일본 국내에서는 X­1, 미국 시장에는 XK, 나머지 지역에서는 XM 또는 XM Motor, 오세아니아 지역에서는 X­1으로 판매되었다. 이 기종은 1970년대 초반 전문가용의 사진기 시장에서 태어나긴 하였지만 그 이전의 몇몇 경쟁 제품과 한 세대를 이루고 있다. 몇 가지 특징적인 사양 중의 하나는 자동 미터(노출계), 센스위치(Sens Witch)와 같이 그 시대에서는 거의 환상인 기능을 가진 기종이다.

 

미놀타 XK는 보다 일찍이 나온 경쟁 제품인 니콘 FF2, 그리고 1970년의 캐논 F-1과 비교해 볼 때도 손색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4가지의 교환용 프리즘, 9가지의 포커싱 스크린, 250매 벌크 필름 백과 3.5fps의 필름 감기 모터드라이브(ʻXKʼ 또는 ʻXM Motorʼ로 모터드라이브를 부착하여 판매되기도 했다.), 원격 및 무인 자동 사진 촬영을 위한 방대한 액세서리 등이 시스템을 이루고 있다.

 

전자식 티타늄 포일 포컬플레인 셔터로 B, 161/2,000, 1/100X-싱크로의 셔터 스피드를 가졌다. 다중 노출 및 셀프타이머가 있다. FP급 벌브(Bulb)는 전 스텝 스피드 1/2,000초까지 동조하며, 전환 스위치가 AE 파인더에 위치하고 있어, 내장된 자동 ʻ센스위치ʼ는 사진기를 손에 잡고 있는 동안 항상 파인더파워를 유지한다. 이 사진기는 MC(Meter­Coupled) 로커­X 50mm/f1.7 렌즈와, 50mm/f1.4 렌즈 또는 58mm/f1.2 렌즈 등을 표준 렌즈로 장착하였다.

 

미놀타 XD­11(XD­7)1977년에 나왔다. 이 사진기는 유럽에서는 XD­7, 북미에서는 XD­11, 일본에서는 XD로 판매된 기종으로, 세계 최초의 멀티 모드 AE 35mm 사진기이다. 셔터 우선 및 조리개 우선 AE 수동 노출 모드의 측광이 가능하며 전자 릴리즈를 가진 수직 주행 메탈 포컬플레인 셔터를 가졌다. 전자식 무단 셔터 속도는 B, 11/1,000초의 셔터 스피드인데, 1/100초에서 X 싱크로와 기계식 셔터 로 작동된다. MD용의 미놀타 베이어닛 마운트로 블랙과 크롬이 있다.

 

라이츠 미놀타 CL197376년에 생산되었다. 1973년 라이츠와 합작으로 콤팩트 라이카가 제조되어 라이츠에서는 라이카 CL이라고 불렀고 일본에서는 라이츠 미놀타 CL로 나왔다.

 

미놀타 CLE1981년에 나왔다. 유명한 라이츠 미놀타 CL의 후기 모델로 콤팩트한 35mm 자동 RF 사진기이다. 라이카의 교환용 베이어닛 렌즈를 사용할 수 있다. 당시의 CLE는 첨단 전자 기술을 이용하여 가장 사용하기 편하도록 하였다. 조리개 우선 AE2-스톱까지 자동 노출 보정이 덧붙여졌다.

 

미놀타 XG­1은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가진 모델이지만 G라인의 고급 기종이다. 뷰파인더 내에 조리개 표시가 없는 조리개 우선 AE 기능을 가지고 있다. 전자식 포컬플레인 셔터로 11/1,000, 1/60초 플래시 싱크로의 셔터 스피드를 가지고 있으며, MD 로커 50mm/f1.7 렌즈를 장착했다.

 

X-7001982년에 나온 미놀타 수동 사진기의 간판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사진기 제조 기술과 짧은 제품 수명에 비하면 X-700은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수명이 긴 이유 중의 하나는 컨트롤 백과 파워드라이브, 교환용 포커스 스크린, 액세서리와 어태치먼트 등 사용자에게 완벽한 시스템을 가져다주는 아마추어 지향적인 수동 포커스 SLR 사진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노출 자동을 원하는 사진가에게 프로그램과 조리개 우선 AE 모드를 제공한다. 측광 범위 EV118(ISO 100, f1.4렌즈), 필름 스피드 범위는 ISO 251,600이다. 뷰파인더는 표준 스크린의 중앙 스플릿 이미지 레인지에 마이크로프리즘으로 외곽 부분까지 전면 초점 조절이 된다.

X-700은 우리나라 삼성항공에서 미놀타와 제휴하여 라이선스로 생산하여 국내에 많이 판매된 기종이다. ʻ전문가도 탐내는 명품ʼ이라는 광고문구가 인상적이었다.

 

 

AF-SLR의 미놀타

 

사진기의 초점을 맞추는 것은 렌즈의 경통을 돌려서 수동으로 맞추는 것이 일반 상식이었다. 그것이 SLR 사진기이든 RF 사진기이든 초점을 맞추는 방식은 동일했다. 그러다가 1978년에 일본 코니카에서 C35 AF로 자동 초점이 시작되어 이제는 손으로 돌리지 않고 전기의 힘으로 초점을 맞추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 사진기는 명암을 대비하여 감지하는 AF 시스템으로 플래시가 내장된 프로그램 AE 방식을 사용했다. C35 AF가 나오고 몇 년이 안 되어 자동으로 초점을 맞춰주는 콤팩트 사진기가 보편화되었으며, 캐논, 미놀타, 올림퍼스 등에서 나온 35mm 사진기가 전 세계 사진기 시장을 휩쓸었다.

 

1985년에 미놀타에서 발표한 맥섬 7000AF는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혁명이었다. 기존의 AF-SLR 사진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고 혜성같이 등장했던 것이다. 이 사진기는 최초의 멀티 모드 AF 35mm SLR 사진기이다. 북미 지역에서는 맥섬으로, 유럽에서는 7000AF, 일본에서는 α-7000으로 나라마다 다른 브랜드 이름으로 발매 되었다.

 

자동 초점(AF : Auto Focus) 방식은 렌즈를 통한(TTL : Through The Lens/metering) 위상차 검출 방식으로 중앙의 1점만 사용되었다. 셔터는 전자로 제어되는 금속 막으로 B, 30"1/2,000초이고, X 접점은 1/100초였다. 측광 방식은 TTL 중앙 중점 평균 측광인데 플래시를 사용할 때는 다이렉트(Direct측광이었으며, 노출 모드는 프로그램 AE, 속도 우선 AE, 조리개 우선 AE, 수동 방식의 네 가지이다. 파인더 시야 배율은 94%×0.85였다. 플래시는 전용 플래시가 있지만 다른 것도 쓸 수 있도록 범용 타입의 핫 슈를 장착하였다.

 

미놀타는 초점 방식만 바꾼 것이 아니라 렌즈 마운트에서부터 전부 새로운 시스템으로 교체했다. 발매와 동시에 교환 렌즈도 풍부하게 갖추어 AF-SLR 사진기 시장을 2년간이나 독점할 수 있었다.

단지 자동으로 초점을 맞출 뿐만 아니라전용의 프로그램 플래시를 사용하면 어두운 곳에서도 AF 보조 광으로 초점을 잡을 수 있어 초보자만이 아니라 전문 사진인들도 주목했던 것이다.

 

초점에 있어서의 AF만이 아니고, 필름 감도 자동 설정 코드(DX CordSLR 사진기에 처음으로 채용한 것도 이 사진기이다. 오늘날의 더욱 진보된 AF SLR 사진기와는 그 기능면에서 비교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 사진기가 등장함으로써 본격적인 AF-SLR 사진기의 시대가 도래 했다고 자리매김할 수 있다.

 

미놀타 맥섬 7000AF1985년의, ʻGrand Prix ʼ85Interchange Camera 국제 상ʼʻEuropean Camera Of The ʻ85 ʼ을 수상하며, 새로운 35mm SLR-AF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맥섬 9xi1992년에 발매된 프로용의 고급 AF SLR, 고성능의 다 영역(Multi Zone) 자동 초점에 멀티 패턴 측광 시스템과 놀랄 만큼 광범위한 파인더 정보를 제공한다. 맥섬 9xi는 앞서나온 7xi의 전자 기술과 특징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 적용했다. 프로 지향적인 9xi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1/12,000초의 셔터 스피드에, 1/300초의 플래시 싱크로와 4.5fps 속도의 모터드라이브를 가졌다. 초점 우선(Focus Priority)이나 셔터 해제 우선(Shutter-Release Priority)을 선택하면 자동으로 싱글 촬영이나 연속 촬영으로 전환된다.

 

낮은 휘도의 피사체를 빠르게 탐지하기 위하여 포커스 어시스트 빔(Focus-Assist Beam)이 부착되었다. 4개의 CCD 센서에 의해 광범위한 AF 영역을 선택하며 초점 조절은 수동으로도 가능하다. 자동 노출 시스템은 하니 콤(Honeycomb) AE로 실수가 없다.

 

초점 거리, 피사체 타입, 크기, 동작 상태에 기초를 둔 엑스퍼트 인텔리젠스(Expert Intelligence) 프로그램 AE, 셔터와 조리개 우선 AE, 수동 노출과 AE 록 기능이 있다. 13분할 하니 콤 패턴 SPDEV020(ISO 100, f1.4 렌즈를 사용할 때)까지 측광한다. 측광 모드로는 사용자 선택 중앙중점 측광과 스폿 측광으로 ±4EV에서 1/2EV씩 노출 보정 된다.

 

몸체 뒤편의 퀵 버튼 모드로 드라이브 모드, 스폿 측광, AF 선택, 노출 및 플래시 브라케팅, 다중 노출, 피사계 심도를 즉시 선택할 수 있다. 파인더와 LCD 패널에 초점 거리가 표시되고 아이스타트 시스템(Eye-Start System)은 사진기를 눈에 갖다 대면 자동적으로 메인스위치가 작동된다.

 

이러한 자동 초점 방식의 사진기는 사진을 찍는 일을 더욱 쉽게 해주었으며 사진기에 장착된 많은 첨단 기능들은 사진기를 컴퓨터와 같은 고성능 기기로 만들었다. 수동식 사진기를 여전히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 시력이 약해진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반가운 사진기가 되었다.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미놀타의 사용자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전문 사진가 집단에서는 니콘에 밀려 사용자가 아주 미미하다. 예전에는 미놀타 사진기가 내구성이 약하다는 풍문이 있었지만 그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일제의 다른 사진기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 판명이 되었는데도 일부의 악의적인 루머에 의해 근거 없는 이야기가 떠돈 것이다.

 

미놀타는 일본 사진기 메이커 중에서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삼성과 제휴를 하여 기술이전을 해준 곳이다.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이 천문학적 자금을 주고 미놀타의 사진기를 들여왔던 것이다. 이 제휴를 계기로 일본 업체들이 한국에 사진기를 공급하였고, 그 덕에 니콘이 아남정밀을 통하여 많은 니콘 사진기를 판매할 수 있었다. 일본 업계에서 매국노라는 욕을 들으면서까지 한국에 기술 이전을 해준 미놀타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삼성 케녹스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근래에 인터넷사이트에 미놀타 클럽이 생기면서 수준 높은 아마추어 사진인들이 미놀타를 많이 쓰고 있고 뛰어난 성능에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라 관심을 가져도 좋을 거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