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형난제(難兄難弟), 캐논

2012. 4. 6. 10:56The 35mm Camera(마루 엮음)

 

 

사진출처 : 위키백과 

 

 

일본 35mm 사진기의 시작

 

독일의 사진기가 오랜 세월 라이카와 콘탁스의 대결로 인해 발전을 해왔다고 한다면 일본의 사진기는 니콘과 캐논의 경쟁으로 인해 진일보했다고 할 것이다. 수동 초점 방식의 사진기 시장 쟁탈이 1차전이었다면 2차전은 자동 초점 방식의 사진기 시장에서의 경쟁이었다.

 

이제 이 둘의 대결은 디지털 사진기 시장에서 용쟁 호투를 거듭하고 있다. 독일 사진기들이 자동 초점 방식과 디지털 사진기 시장을 일본에 내어준 이상 앞으로의 피나는 싸움은 캐논과 니콘의 각축만 남았을 뿐이다. 강호에서 무당파에 비교되는 곳은 화산파이다. 화산파와 무당파는 검법으로 늘 상대를 제압하려 기회를 노리는 호적수이다.

 

니콘이 무당파라면 캐논은 화산파의 자리가 어울린다. 화산파는 자하신공(紫霞神功), 복호권(伏虎拳), 육합검법(六合劍法), 매화검법(梅花劍法), 복호장법(伏虎掌法)이 뛰어난데 무림 최고의 검법을 놓고 늘 무당과 자웅을 겨루며 발전했다.

 

캐논(Canon)이란 이름은 1933년에 개발된 콰논(Kwanon)이라 불리는 초기의 35mm 사진기에서 유래된 거였다. 상호를 캐논 사진기로 변경한 뒤에 렌즈 이름도 세이키광학 세레나(Seiki­Kogaku Serenar) 렌즈에서 캐논 세레나 렌즈로 변경했다. 그리고 1952년부터는 ʻ세레나ʼ라는 렌즈 이름을 생략하고 간단히 ʻCanonʼ 렌즈로 명명했다.

 

 

 

 

최초의 캐논 사진기, 한사 캐논(표준 모델)

 

라이카 Ⅱ가 1932년에 소개되고, 1933년에 콘탁스 Ⅰ이 뒤를 이었다. 세계 사진기 왕국 독일의 자존심인 이 두 상표는 전 세계 사진기 팬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고 그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는 최상급 사진기로 인정을 받았다.

 

그 당시 라이카 Ⅱ 사진기를 분해하여 그 내부 작동을 연구함으로써 일본에서 최초의 초점면 셔터 거리계 사진기의 제작을 시도한 일본인이 있었다. 그 사람이 고로 요시다(1900∼1993)이다. 바로 이 요시다가 캐논 사진기를 세계 시장에 내어놓은 세이키광학의 창시자였다. 그는 일본 최초로 35mm RF 사진기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이 사진기를 원형 콰논이라고 불렀다.

 

최초의 일본 고급 35mm RF 사진기의 제조는 독일이나 다른 서방 국가에 뒤지고 싶지 않았던 한 엔지니어의 자긍심과 꿈에서 시작되었고 그 꿈의 결과가 오늘날의 캐논을 있게 만든 거였다.

 

콰논 사진기를 상용화하기 위해 이루어진 집중적 시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요시다의 정밀광학기기연구소는 아직 사진기의 중요 구성품인 렌즈와 레인지파인더(RF, 거리계)를 조달할 전망이 없었다. 번민의 숙고 끝에 연구소는 일본광학의 렌즈를 이용하기 위해 일본광학으로부터 협조를 꾀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일본광학은 군사 장비를 전문으로 하는 최신의 제조 시스템을 갖춘 일본 최대의 광학 장비 제조회사로 그 위치를 이미 확립하고 있었고, 고급 렌즈의 민간 응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정밀광학기기연구소의 협조 요청 시기는 시의 적절한 것이었다. 양측의 이익을 인식한 정밀광학기기연구소와 일본광학은 한사 캐논(니콜 50mm f/3.5 렌즈를 장착한 표준 모델)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뒤에 최대의 라이벌이 된 두 업체의 공동 개발로 최초의 캐논 사진기가 1936년 2월에 시장에 소개되었다.

 

후에 콰논이라는 이름은 재판 또는 성경의 표준을 뜻하는 캐논으로 변경되었다. 정밀을 좌우명으로 노력하는 정밀 산업 회사의 새로운 상표, 캐논은 이렇게 태어났다.

 

사진기 산업 일각에서 한사 캐논을 라이카의 일제 모방품이라고 불렀지만, 이 사진기가 일본의 최초 고품질 35mm RF 사진기를 대표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비록 아직 그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제조 회사의 제품이었음에도 이 사진기는 사진기 산업의 내 외부로부터 상당한 관심과 기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얼마 뒤에 회사 이름을 정밀광학연구소에서 세이키광학으로 개명하였다.

 

 

캐논의 자체 렌즈, 세레나와 캐논

 

정밀광학산업의 고급 35mm 사진기는 ʻ최신 모델ʼ 소개 후 상표 이름에서 ʻ한사ʼ라는 말이 사라졌고, 상표가 ʻ캐논ʼ만으로 변경되었다. 그와 같은 진용으로 세이키캐논(정밀광학산업의 캐논)하면 일본의 고급 35mm 사진기를 지칭하는 명성으로 그 위치를 확립했다. 뒤에 자체 개발한 50mm/f3.5 렌즈 및 135mm/f4.9 렌즈의 이름을 회사 안에서 공모하여, 세레나가 이러한 렌즈들에 붙여질 이름으로 선정되었다.

 

세이키광학은 1947년 9월 15일자로 회사 이름을 캐논 카메라 주식회사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변경 후, 제조 회사와 사진기 이름이 캐논으로 통합되었고 렌즈 이름도 세레나 렌즈에서 1953년 캐논 렌즈로 변경되었다.

 

캐논에서 생산한 자체 렌즈는 일본광학의 렌즈보다 성능이 떨어진다 하여, 한동안 캐논 사진기가 고전을 면치 못하였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였고, 뒤에 캐논의 제 2세대 렌즈인 FD 렌즈로 발전하게 된다. 솔직히 SLR 사진기 시장에서는 캐논이 니콘의 상대가 되지 못했었다. 캐논의 초창기 SLR 사진기들은 니콘에 비해 고급스럽지 못했고, 니콘의 사진기들이 먼저 세계 사진기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캐논의 RF 사진기

 

1946년 10월 오래 동안 기다렸던 캐논의 신제품, SⅡ가 소개되었다. 이 사진기는 뷰파인더와, 연결된 레인지파인더를 단일 창 안에 결합했다. 이것은 라이카 사진기에서는 볼 수 없는 캐논의 독창적인 디자인이었다.

 

또 다른 새로운 구조가 1949년 4월에 출시된 ⅡB를 위해 개발되었다. 이 사진기의 특성은 3가지 방식 뷰파인더에 있다. 뷰파인더의 확대는 사용되는 렌즈에 따라 바꿀 수 있으며 이 3가지 방식 뷰파인더는 교환 가능한 렌즈와 대등한 캐논의 독창적 디자인이었다. 이 사양은 미래의 캐논 35mm RF 사진기로 이어졌다. 달리 말해서, 전후 정밀광학산업의 확고한 기초가 이 단계에서 확립되었다.

 

1954년 3월에 출시된 Ⅳ Sb의 개선 모델인 IV Sb2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기종이었다. 이 사진기는 이중 자동 기구 구조를 가진 완속(緩速) 조속기를 이용하여 1/15초의 셔터 속도를 얻을 수 있었다. 1/15초의 속도의 도래로 셔터 속도는 세계 최초로 렌즈의 f/stop 범위 및 노출 측정 표시처럼 두 개의 등비수열이 될 수 있었다. Ⅳ Sb2 사진기는 라이카와 같은 수준의 걸작으로 이즈음 캐논이 개발한 35mm RF 연동 사진기는 세계 최고의 사진기, 라이카와 대등한 제품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Ⅳ Sb2 출시 바로 직전에 라이카 M3가 1954년 서독 쾰른에서 개최된 제 4회 포토키나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자 캐논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라이카 M3는 RF 연동 사진기에 대한 재래식 개발 접근 방식과 완전히 다른 개념을 기반으로 한 사진기였기 때문이다.

 

라이카 M3를 처음 보았던 캐논의 기술자들은 RF 연동의 정확성은 물론 뷰파인더의 밝기와 시점이 표현하는 사진기의 완벽한 수준에 대단히 충격을 받았다.

 

캐논의 개선 기종 Ⅳ Sb2가 사용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캐논 기술자들은 라이카 M3의 출현과 더불어 사진기 세계는 대단한 변화를 겪게 되리라는 것을 감지할 수밖에 없었다.

밝은 뷰파인더와 정확한 RF 연동에 관한한 1954년에 소개된 라이카 M3를 모방하기 어려웠으므로, 캐논을 포함한 일본 사진기 메이커들이 내린 결론은, 일본 고유의 기술을 이용하여 개발할 수 있는 시스템 능력을 갖춘 단일 렌즈 반사(SLR) 사진기에 집중하는 일이었다.

 

캐논에서는 이제 RF 사진기의 정리 작업으로 P(Populaire, 인기)가 1959년에 출시되었고, 1961년 3월에 7(Seven)이, 1965년 4월에 7S 모델이 그 뒤를 이었다. 노출 측정기를 내장하고 겉모양이 인상적인 7 시리즈는 사용자들이 아주 좋아했다. 그러나 그 당시 35mm RF 사진기들은 SLR 사진기에게 이미 왕좌를 내주고 있었다. 1968년 9월 7S의 생산이 중단되자 콰논의 소개로 시작했던 캐논 35mm RF 연동 사진기의 전통은 종지부를 찍었다.

 

 

 

캐논의 SLR 사진기

 

 

캐논은 니콘과 거의 같은 시기에 SLR 형식의 사진기를 내어 놓았지만 니콘의 니콘 F에 밀려 고급 사진기 시장에서는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였다. 니콘 F가 전문가들에게 압도적인 호응을 받은 것에 비해 캐논의 사진기들은 겨우 명맥을 유지해나가는 정도가 되어 일본에서 조차 2류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사진기는 전문가나 재력 있는 일부 사람들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시대를 지나 중산층에 까지 그 소유가 확대되고 있었다. 이것은 위기이면서도 기회가 될 수 있는 전환점이었다.

 

1976년 4월 캐논은 ʻ신 모델 Xʼ 즉 AE-1사진기의 모습을 공개하였다. AE-1 사진기 개발 개념은 누구든 저렴한 사진기로 고가의 품질을 지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었다.

 

캐논은 사진기 전자 공학, 정밀 기계학, 광학 및 컴퓨터 보조 디자인 등의 최신 기술을 자동 기계 가공 및 자동화 조립과 성공적으로 결합하여 사진기 제조의 원가 절감에 한 획을 그었다.

 

이렇게 탄생한 AE-1은 셔터 속도 우선 TTL 노출 측정기 및 중앙 처리 장치(CPU)를 장착한 세계 최초 35mm AE SLR 사진기이다. 부속품인 Power Winder A는 초당 2컷 속도로 연속 촬영을 가능하게 해주었으므로 그 표어는 ʻ연속 촬영 SLR 사진기ʼ로 했다. AE-1은 사진기의 전용 스피드 라이트를 이용한 자동 플래시 노출 제어와 같은 획기적인 자동화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뛰어난 운용성을 지닌 AE-1은 세계 최초로 마이크로컴퓨터가 내장되었다. 이 사진기는 여러 부품을 단일 구성으로 통합함으로써 얻는 저가 생산의 합리성, 전자적으로 제어되는 완전 자동 시스템은 계량, 표시된 정보의 양 등을 포함한 전체 사진 과정에 관한 정밀 제어를 보장했다.

 

AE-1으로 길러진 자동화 및 컴퓨터화 기술은 A-1의 개발로 한 걸음 더 진보했고 그러한 진보된 기술은 계속적으로 발전하여 뒤이어 오는 T 시리즈와 현재의 ʻEOSʼ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1964년에 캐논은 전문 사진가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최고의 사진기를 생산하고자 연구를 시작했다. 5년의 개발 노력 끝에, 캐논 사진기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발자국을 남긴 F-1이 1971년 3월 그 모습을 드러냈다.

 

F-1의 개발 배경 의도는 전문 사진가들 전용으로 사진기를 만드는 데 있었다. 많은 수의 부품과 기능 이외에 이 사진기는 전문 사진가들이 자주 겪을 수밖에 없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잘 견디고 신뢰성이 높으며 성능을 잘 발휘하는 제품으로 만들고자 했으며 그것은 현장에서 입증되었다. 십만 장의 사진을 찍고도 모든 시스템 부품을 조정 없이 즉시 사용할 수 있으며, 섭씨 -30에서 +60도에 이르는 온도에서 성능을 발휘할 만큼 내구성이 충분했다.

 

그 신뢰성 덕분에 F-1은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하계 올림픽과 1980년 미국 레이크플래시티 동계 올림픽 공식 35mm 사진기로 지정되었다. 캐논이 F-1의 기본 사양과 기능을 10년 동안 변경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1970년대 내내 캐논의 주력 35mm 사진기로 유지했었던 F-1을 변경시켜 다시 내어놓은 것은 F-1N이다. F-1N은 1981년에 변경되어 나온 것으로 프로 지향적인 새로운 사양으로 사용자의 취향에 맞는 자신만의 사진기로 꾸밀 수가 있다.

 

캐논은 1983년 3월에 T50, 1984년에 T70, 그리고 1985년 4월에 T80을 포함하여 계속적으로 T-시리즈 사진기를 출시했다. T-시리즈 사진기는 쉽고 간단하게 촬영할 수 있도록 자동화된 메커니즘을 철저히 투입했다. 1986년 2월 캐논은 고급 아마추어 및 전문 사진가들을 목표로 ʻT90ʼ을 출시했다.

T90의 측광 모드는 중앙 중점 평균 측광, 부분 측광과 스폿 측광이며, 측광의 보조 특징으로 노출 보정, AE 록, H/L기능이 있다.

 

T90의 SPC(Silicon Photo Cell) 측광 센서는 2개소로 하나는 아이피스 상부에서 중앙 중점과 부분 측광을, 다른 하나는 밀러박스 바닥에 위치하여 스폿 측광을 담당한다. 밀러박스 바닥의 측광 센서는 3가지 기능으로 통상적인 스폿 측광, 300TL 전용 플래시를 사용하면 FEL에서 사전(事前)노출 스폿 측광(Pre­Exposure Spot Metering), A­TTL/TTL모드에서 리얼타임 측광(Realtime Metering)을 가졌다. 프로그램 AE는 표준 프로그램 AE와 변경할 수 있는 쉬프트 프로그램(Shift Program) AE가 있다. T90의 프로그램 AE는 변경할 수 있는 7가지 형식이 있다.

 

T90과 전용 플래시 300TL을 조합하여 후막 싱크로를 선택하면 후막이 닫히기 바로 직전에 플래시 발광이 된다. 이 기능은 느린 셔터 스피드로 촬영할 때 동체 감을 나타내는 데 특별히 효과적이다. TTL의 새로운 기능(A­TTL), FEL, 후막 싱크로 기능이 T90의 1/250초와 조합되어 있다. 이태리의 산업디자이너 루이지 콜라니가 디자인하였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 T90이 캐논뿐 아니라 모든 수동 사진기에서 가장 진보된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바로 뒤에 나온 자동 초점 방식의 새로운 SLR 형식의 사진기 때문에 T90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은 캐논으로서도 무척 안타까운 부분이겠지만 사진기를 아끼는 사람들에게도 조금은 아쉬운 일로 생각된다. 좋은 사진기가 언제나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캐논의 모험, EOS 사진기

 

1985년 2월 캐논이 T80 사진기를 출시하기 2개월 전에, 세계 사진기 산업계를 뒤흔들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미놀타가 완전한 자동 초점(Auto Focus) 35mm SLR 사진기, a-7000을 출시했던 것이다. 뒤이어 9월에 미놀타 a-9000을 소개했으며, 니콘도 1986년 4월에 니콘 F-501을 출시했다.

 

이러한 AF 방식의 SLR 사진기(AF-SLR)는 출시 즉시 히트 상품이 되어 침체기에 빠졌던 35mm SLR 사진기 시장에서 번개처럼 스타덤에 올랐던 것이다. 1985년 3월 캐논은 캐논 이름에 걸맞는 고도의 정밀 AF SLR 사진기를 개발하기 위해 새로운 시스템을 구상했다.

 

그 개발 프로젝트를 ʻEOS(Electro Optical System, 전자 광학 시스템)ʼ라고 불렀는데, EO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새벽의 여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EOS는 3가지 주요 지침 아래 개발되었다. 즉, AF 메커니즘 소개로 인한 가격 인상 없기, 300mm f/2.8 렌즈를 장착한 사진기를 손으로 잡고 실내 스포츠를 촬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경량 디자인, 그리고 노출 감도와 대등한 자동 초점 감도 등이 그 지침들이었다.

 

미래의 유망한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캐논의 EOS 개발 프로젝트 노력은 1987년 3월 EOS 650, 1987년 5월 EOS 620이 소개되고, 1989년에는 EOS 630이 출시되었으며, EOS 계통의 주력 제품인 EOS-1이 그 뒤를 이었다.

 

1989년에 그 모습을 드러낸 EOS-1은 전문가 또는 고급 아마추어 사용자들의 인정을 받았고, 캐논의 가장 발달된 모델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광학 및 전자 공학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보다 나은 기술 향상이 기대되어, 캐논은 첨단 기술 업적 바탕 위에 렌즈 개발에 전념했고, 대구경 렌즈 및 초대형 망원 렌즈와 만족스럽게 작동할 수 있는 모델의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했다.

 

그리하여 EOS 계통의 새로운 주력 사진기인 EOS-1N을 1994년 11월에 소개했다. EOS-1N의 탄생으로 사용자들은 고성능 렌즈 고유의 능력을 온전히 이용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모델이 EOS-1N 계통에 추가되었는데, EOS-1N RS가 그것이다. 이 사진기는 셔터 개방 때에 일시적 파인더 시각 상실이 없도록 설계하여 그 순간을 포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고정 박막 거울을 가지고 있다. 그 고정된 거울을 이용하여 초당 10컷의 속도로 고속 연속 촬영이 가능하다. 전문가용으로 완벽한 사진기인 EOS-1N은 사용자들의 신뢰에 힘입어 6년 간 계속적으로 주력 제품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캐논의 수동 초점 형식 사진기(MF-SLR) 렌즈는 최종적으로 FD 렌즈였다. 렌즈의 이름은 몇 차례 변경이 있었어도 초창기의 사진기와 모두 호환이 되는 것이었으나 AF 시스템으로 전환하면서 사진기의 베이어닛 마운트도 변경을 시켰다. 사실 이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사진기와 렌즈의 마운트가 변경된다는 것은 앞의 시대와 단절을 꾀하는 것으로 이것은 잘못될 경우 엄청난 손실을 가져올뿐더러 캐논의 존립마저 위태하게 할 수 있는 중대한 일인 것이다.

 

이미 AF 방식으로 전환한 니콘은 예전의 베이어닛 마운트를 그대로 사용하여 렌즈와 사진기의 호환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이것이 가장 안전하고 바람직한 방법이다.

 

그러나 캐논은 엄청난 부담을 무릅쓰고 베이어닛 마운트의 변경을 시도하였다. EOS 사진기와 함께 시작된 EF-시리즈 렌즈 개발로 그 마운트를 포함하여, FD 렌즈들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렌즈를 만들었다. 새로운 장착 시스템 디자인에 캐논은 사용자 만족에 최우선을 두었다.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 사진기 몸체와 렌즈 간에 고도로 정확한 실시간 자료를 전송할 수 있도록 해주는 완전히 전자적으로 제어되는 자동 EF 마운트를 만들어 내고자 했다.

 

그 개발 단계에서 캐논은 새로운 렌즈로의 전환에 대해 어떻게 사용자의 이해와 동의를 구할 것인지에 대해 협의했다. 그 해결 방안으로서 캐논은 다음과 같은 새로운 EF 렌즈 상용화 기본 지침을, 부담 없는 가격의 새로운 고성능 AF SLR 렌즈 개발, AF SLR 교환 가능 렌즈의 초점 맞춤 시스템용으로 초소음 모터(USM) 사용, 시간 경과 노후화로부터 오는 정밀성 또는 작동 오류가 없는 완전히 전자적으로 제어되는 시스템으로 결정했다.

 

캐논은 미놀타나 니콘이 AF의 방식을 사진기 구동으로 하였을 때에, 렌즈 구동의 방식으로 하였다. 캐논의 렌즈 구동 방식은 렌즈에 모터를 장착하기 때문에 렌즈가 좀 더 커지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초점을 맞추는 시간을 더욱 단축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초고속 AF 및 초소음 작동의 특성이 실현될 수 있었지만 처음에는 성능이 뒤쳐진 사진기만 내어놓아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EOS 5사진기의 성공으로 그 모험은 대성공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