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는 허명(虛名)이다

2012. 4. 9. 20:58The 35mm Camera(마루 엮음)

 

 

 

 

 

 

 

그러면 먼저 라이카에 대한 얘기부터 해보자. 사진기를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라이카가 나오는 이유는 비싸기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그만큼 얼토당토않은 전설이 제일 많은 기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보기에 라이카는 너무 비싸다. 중형이나 대형 카메라 중에 비싼 기종들은 그래도 그만큼 크고 나름대로 주장할만한 거리가 있지만 겨우 35mm에 불과한 이 라이카가 이렇게 비싸서야 말이나 되겠는가?

 

라이카에 대한 전설은 대충 다음과 같은 것들인데 ʻ렌즈의 성능이 환상적이다.ʼ ʻ중형 카메라를 쓰느니 라이카를 쓰면 중형과 같은 성능, 해상도를 얻을 수 있다.ʼ ʻ전지로 확대해도 입자가 보이지 않는다.ʼ ʻ기계가 정교하고 고장이 나지 않는다.ʼ 그리고 ʻ총알도 뚫지 못할 만큼 단단하다.ʼ 등등 이다.

 

내가 처음에 써본 라이카는 R3이다. 렌즈는 스미크론(Summicron) 50mm/f2.0이었다. 사실 라이카에 대한 황당한 얘기들을 그대로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가 차이가 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8의 루페로 아무리 들여다봐도 다른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차이를 모르겠다. 뭐 좀 더 샤프한 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입자가 작은 것도 더더욱 아니었다. 11×14로 확대한 사진에서도 차이를 느낄 수가 없다. 도대체 펜탁스(Pentax)나 니콘(Nikon)으로 찍은 사진과 어디가 다르다는 얘긴가? 안광이 지배를 철하도록 필름을 들여다본 끝에 결론을 내렸다. ʻʻ, 아마도 내가 사력이 짧아 라이카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없는 모양이구먼, 좀 더 써 보면 알겠지……ʼʼ

 

그래서 처음엔 라이카가 얼마나 좋으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ʻ역시 라이카는 뭔가 달라.ʼ 라고 대답을 했다. 그 사람들도 그런 대답을 기대하고 물어본 것이니까. 그런데 사진을 아무리 더 찍어 봐도 도저히 모르겠다. ʻ이건 아닌데…….ʼ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엔 솔직히 콘탁스(Contax) 카메라의 플라나(Planar) 렌즈가 훨씬 더 좋아 보였다.

 

지금은 R3에서 M4를 거쳐 라이카 f를 쓰고 있다. 카메라 연대기로 보면 시대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 라이카 f는 내가 정말 아끼면서도 35mm 사진 작업에 즐겨 사용하는 주력 사진기이지만 이제 와서 특별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평범한 사진기일 뿐이고 성능도 그저 그렇지만 작고 단단한 몸체에 휴대성이 좋고 이미 손에 익어 다루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래서 라이카를 삼신할머니처럼 믿고 있는 고수들에게 도대체 어디가 차이가 나는 것인지 물어 보기 시작했다. 제일 흔한 대답은 11×14정도론 차이가 나지 않고 전지로 크게 확대를 해야 그 차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미 11×14에서도 입자가 보이기 시작하는 필름이 더 크게 확대하면 선명해 질 거라고?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대답이어서 실재로 더 확대를 해볼 필요를 느끼지도 못했다.

 

더 웃기는 경우는 중형 카메라로 찍은 사진보다도 좋다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자기가 촬영한 필름을 자세히 보기나 하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내가 실제로 사용해본 제일 값싼 중형 사진기인 야시카(Yashica) TLR로 촬영한 사진보다 라이카의 사진은 훨씬 못하다. 네거티브 면적이 4배 정도 차이가 나는데 사진의 선명도를 서로 비교한다면 이건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이 싸우는 권투 시합 같은 거다. 처음부터 체급이 맞지 않는 것이다.

 

35mm35mm끼리, 중형은 중형끼리 비교를 해야 공정한 것이고 또 35mm와 중형 카메라는 각자 고유한 쓰임새가 있는 것이므로 서로를 비교해서 이것이 저것보다 낫다, 아니다를 논할 일이 아닌 것이다. 중형 필름의 면적이 35mm 보다 4배 넓다는 의미는 같은 성능의 렌즈를 사용하였을 때 사진이 4배 더 선명하다는 것을 의미 한다.

 

그런데 라이카로 찍은 사진이 중형 카메라로 찍은 사진보다 더 좋다면 라이카(Leica) 렌즈는 중형 카메라의 렌즈보다 4배 이상 더 선명하단 말인가?

 

일반적인 렌즈의 해상력이 60lpm(lines­per­millimeter) 정도 인데 라이카의 렌즈는 최소한 240lpm을 넘는다는 말인가? 오늘날의 렌즈는 물리적인 한계에 가까운 해상력을 가지고 있는데 라이카(Leica) 렌즈는 어떻게 물리적인 법칙을 무시하고 240lpm을 낸단 말인가? 중형 야시카는 그렇다 치고 중형 핫셀브라드나 롤라이플렉스도 최고급 렌즈를 가지고 있는데 라이카(Leica) 렌즈는 최고급 렌즈보다도 더 최최 고급이란 말인가?

 

라이카의 사진은 다른 35mm 사진기와 비교해 보면 사실 특별히 흠 잡을 데는 없다. 적어도 니콘이나 캐논 렌즈로 찍은 사진과 비교해 더 떨어질 것도, 더 나을 것도 없다. 그러나 중형 카메라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로 어이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 정도면 이 계통에서는 광신도에 가깝다. ʻ믿으면 곧 보이리라ʼ는 식으로 그렇게 믿는 사람의 눈에는 거친 입자도 선예한 윤곽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이왕 시작한 김에 라이카 광신도들을 좀 더 몰아붙이기로 작정하였다. 니콘과 라이카로 찍어놓은 사진을 몇 장 골라서 테스트를 하기로 한 것이다. 라이카 렌즈가 그렇게 환상적이고 다른 렌즈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다니까, 그 사진들 중에서 라이카 렌즈로 찍은 것과 니콘 렌즈로 찍은 것을 가려내 보라고 내밀었다. 이 짓궂은 테스트는 사실 아무도 호응을 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말았는데 내가 사진을 내놓으면 일부는 질겁을 하고 급히 전화할 곳이 있다는 둥, 자리를 피하고 일부는 마치 계룡산 도사 같은 표정으로 그런 차이는 ʻ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ʼ 거라 대답했다. 글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차이면 도대체 무슨 차이인가? 사진은 시각 예술이 아니던가?

 

사실 차이가 있을 리 없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다른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 있을 리 없고 설령 있다고 해도 그 사람 눈에만 보일 터이니 ʻ이야기 속으로ʼ 같은 데 나오는 ʻ귀신 붙은 사진기ʼ이거나 아니면 ʻ자신이 자기 스스로를 접대하는 자기만족ʼ일 뿐이다. 좀 짧은 말로 줄이면 ʻ셀프 접대ʼ라고 말할 수 있겠다.

"???....."

 

무엇을 스스로 접대하는고 하니 자신의 눈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묘한 차이라도 구분해 낼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고 추켜세운다는 얘기다.

 

라이카의 신화는 사실 라이카 사용자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렇게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 광학 엔지니어로서 반도체 분야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본사가 통칭 실리콘 벨리(Silicon Valley)라고 불리는 산호세(San Jose, California)에 있는 KLA-Tencor사인데 반도체 장비는 특성상 최첨단의 광학 시스템을 갖추어야만 하게 되어있다. 반도체 제조 공정도 사진을 만드는 과정과 기본적으로 동일한 것인데 그 대신 반도체 공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선(회로 패턴)을 광학적으로 구현해 내야 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해상력과 광학적 평면성(Optical Flatness : 화면의 주변부에 초점 이동이나 왜곡이 생기지 않는 것)을 요구하는 분야이다. 이 정도의 극한에 가까운 성능을 요구하는 분야는 인공위성의 감시 카메라 말고는 없을 것이다.

 

반도체라고 하면 우리나라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고 세계 시장의 흐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이다. 그러는 의미에서 사진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지 개요를 잠깐 살펴보자.

 

먼저 웨이퍼(Wafer)라고 불리는 실리콘 단결정 원반 위에 감광 물질을 칠하여 ʻ인화지ʼ에 해당하는 것을 만든다. 그 다음으로 회로의 패턴이 그려진 마스크(Mask; 네거티브에 해당)를 스테퍼(Stepper; 확대기에 해당)에 넣어 노광을 주고 트랙(Track ; 45분 현상소의 자동 현상기 같은 기계)을 이용하여 현상과 정착을 하면 사진 공정(Photo Process)을 마치게 된다. 사용되는 장비와 재료는 다르지만 그 원리는 일반적인 사진과 완전히 동일한 과정이다.

 

메모리칩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진 공정 이외에도 식각(Etching), 확산(Diffusion), 박막(Thin Film) 등의 추가적인 공정을 더 거치기는 하지만 사진 공정에서 얼마나 미세한 패턴을 그려 줄 수 있느냐에 따라 회로의 집적도가 달라져서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오는 "한국의 모 기업, 세계 최초로 256M 메모리칩의 시제품 개발" 등의 기사가 실릴 수 있는 것이니 실로 사진 공정이야 말로 반도체 기술 경쟁의 핵심을 이루는 분야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시판되는 16메가 메모리칩을 생산하는 요구되는 최소 선폭은 0.3um(um10의 마이너스 6제곱)이어서 64메가 메모리칩이라면 0.2um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반도체 산업에 사용되는 광학 렌즈들은 렌즈 제조업체들의 최신 기술이 총 망라 되어 있고 또 반도체의 사진 공정에 쓰이는 장비들은 정밀 기계 공학의 상징인 카메라 제조업체에서 생산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예를 들어서 스테퍼(Stepper: 자동 패턴 기록 장치이며 한 대당 가격이 200$정도 한다)같은 것은 하나의 생산 라인에 40~50대 가량 들어가는 고가 장비인데 일본의 니콘(Nikon)사와 캐논(Cannon)사가 전 세계 시장을 양분하여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는데 왕년에 독일이 카메라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을 당시, 치열하게 각축을 벌이던 라이카와 콘탁스의 싸움은 그 후 카메라 시장의 주도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라이카의 복제품을 만들던 캐논과 콘탁스를 그대로 모방한 니콘과의 각축전으로 변했는데 차이스(Zeiss Ikon; 콘탁스 카메라의 메이커)의 렌즈 기술을 추종한 니콘이 단연코 우위로 나서 일본의 고급 카메라 기종이라고 하면 니콘 F(Nikon F) 시리즈 카메라를 가리키는 말처럼 되어 버렸다.

 

이런 경향은 스테퍼 시장에도 그대로 이어져 렌즈의 성능이 시원찮은 캐논은 지리멸렬하며 시장에서 떨어져 나갈 위기에 몰렸는데 여기에 한국이 새로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면서 변수가 생겼던 것이다.

 

당시의 스테퍼도 니콘이 독점하다시피 하여 그 횡포와 거만이 대단했었다. 한국 사람들의 성격이란, 이런 것은 두고 보지 못하는 법이라 캐논에 ʻ안 되면 되게 하라!ʼ는 식으로 대량 발주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반도체 회사들은 같은 가격에 성능이 더 우수한 니콘만 사용하고 있는 터였는데 ʻ한다면 하는ʼ 한국 사람들이 발주를 내자 캐논은 구세주라도 만난 듯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한국 시장에 달라붙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니콘도 비슷하게 파격적인 조건을 걸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고 만년 2위에서 벗어나려는 캐논은 눈물겨운 연구 정진으로 성능을 개선해 나갔고 그 사이에 한국이 반도체 생산에서 세계 제일의 위치가 되자 이제 당당히 니콘과 어깨를 겨루는 처지가 된 것이다. 스테퍼 한대의 가격이 500$ 짜리 카메라 4~5천대의 가격과 같은 정도니까 이런 장비를 한번에 40~50대씩 판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엄청난 시장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럭저럭 캐논은 기사회생하였고 그 여세를 몰아 EOS 기종을 들고 나와서 니콘의 시장 점유율을 잠식하고 있으니 그 이면에는 한국인의 다소 우악스러운 고집이 작용하였던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스테퍼 같은 기계를 만들 수 있는 광학적, 기계적 기술이 우리에게는 아직 없다는 것이다. 니콘과 캐논의 이름만 들어도 짐작이 가겠지만 카메라와 스테퍼는 사촌 격으로 다 같이 정밀 기계 공학과 광학 기술의 정수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국의 광학 산업과 정밀 기계 분야는 일본에 비하면 아직 수준이 많이 뒤떨어지는데다 일본인들이 한국의 카메라 회사에 부품과 주변 기술은 줄지언정 핵심 기술을 내놓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니 결국 우리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는 없는 일인데 아까 삼성 카메라가 롤라이의 기술을 열심히 배워서 비싼 카메라를 하나 만들면 어떨까 한 것도 그냥 해 본 소리가 아니라 다 배워두면 두고두고 쓸모가 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KLA-Tencor에서 사용하는 광학 시스템은 라이츠(Leitz; 라이카 카메라의 메이커)사의 렌즈들과 미국 멜리스 그리오트(Melles-Griot)사의 렌즈 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광학 엔지니어로 일하려면 당연히 라이츠 렌즈 군의 광학적 특성이나 스펙(Spec: 사양)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 같은 찍새가 라이츠의 사진기용 렌즈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라이츠의 기술 자료를 아무리 훑어보아도 라이카 렌즈의 해상력이 다른 메이커의 렌즈보다 우수하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나도 깜짝 놀란 사실이지만) 라이카 렌즈들은 구면 수차를 완전히 수정하지 않고 약간 남겨 두어 해상력을 의도적으로 떨어트리고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3차원의 피사체를 2차원의 인화지에 재현하는 사진기 렌즈에서 해상력을 다소 희생시키더라도 보다 입체감 있는 묘사를 해주기 위해서이다. 또한 라이츠는 사진을 선명하게 하기 위하여 렌즈의 해상력을 올리는 대신 콘트라스트를 올리는 방법을 더 선호한다. 렌즈의 콘트라스트가 높아지면 피사체의 윤곽이 더 뚜렷하게 구분되어 보이게(즉 밝고 어두운 차이가 크다) 되는데 이것은 렌즈가 더 세밀하게 묘사(해상력이 높다)할 수 있다는 것과는 다른 얘기이다.

 

결론적으로 라이츠 렌즈들은 구면 수차가 남아 있어 해상력은 생각처럼 높지는 않고 오히려 약간의 흐려짐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을 높은 콘트라스트의 윤곽선으로 보상하여 선명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졌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진이 선명한 듯 하면서도 부드럽게 묘사되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는 것인데 그러고 보면 라이카 렌즈의 맛은 ʻ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ʼ이라는 계룡산 도사 급의 촌평이 뭔가 예언에 가까운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내가 짧은 안목으로 도사 앞에서 발칙하게 까불었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라이카 렌즈로 찍은 사진과 다른 렌즈로 찍은 사진을 구별해 낼 수 있는 혜안을 가지지 못하였다. 도사는??)

 

어쨌든 이런 독특한 묘사 능력은 렌즈의 사양을 토대로 한 추정일 뿐이고 실재로 느끼기는 다소 힘들다. 그 이유는 선명한 듯 하면서도 부드러운 독특한 묘사력이 인화지 위에 재현될 정도로 구면 수차를 많이 남길 수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오늘날은 과학적 데이터와 기술 자료를 무작정 신봉하는 시대라 구면 수차를 많이 넣어 해상력이 다른 회사의 제품보다 떨어지는 렌즈를 만든다면 대번에 물건이 팔리지 않게 된다. 외국의 여러 사진 잡지나 인터넷의 사진 관련 사이트를 보면 온갖 렌즈에 대한 꼼꼼한 테스트들이 올라와 있는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자료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뭐가 좋은 건지 알기 힘들게 되어 있고 ʻ이거나 저거나 다 똑같은 것이다ʼ는 것을 이렇게 어렵게 얘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런 테스트들은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개인의 취향이나 의견 같은 주관적인 것은 무시하고 ʻ해상력 테스트ʼʻMTF 테스트ʼ 등의 객관적 데이터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니 라이츠가 해상력을 낮게 잡아 렌즈를 디자인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오래된 기종에 붙어 있는 구형 렌즈들은 라이카 고유의 특징이 강하다. 라이츠의 스크루 마운트(Screw Mount) 카메라는 G 기종을 끝으로 1956년에 생산이 중단 되었는데 당시에 35mm 카메라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ʻ짜이스 이콘(Zeiss Ikon)ʼ사의 콘탁스(Contax) III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이 당시에 라이카 fG에 사용되었던 슴마(Summar), 스미타르(Summitar), 엘마(Elmar) 렌즈들은 구면 수차로 인하여 해상력은 떨어지지만 독특한 흐려짐이 있어 다른 렌즈(특히 면도날로 자른 듯이 선명한 묘사를 하는 차이스의 렌즈)와 차이가 났던 것이다. 이런 흐려짐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오늘날 생산되는 라이츠 렌즈들은 이런 것을 잘 느낄 수 없다.

 

당시의 차이스 렌즈의 선명한 묘사는 ʻBite lookʼ(깨물어 뜯은 자국처럼 선명하다는 의미)이라는 말을 유행시킬 정도였는데 차이스의 텟사(Tessar)를 복사한 라이츠의 엘마(Elmar) 렌즈나 플라나(Planar)를 복제한 슴마(Summar) 렌즈는 원조 렌즈와 같은 성능을 도저히 낼 수가 없었고 라이츠는 렌즈의 해상력이 아닌 분위기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콘탁스는 성능이 뛰어난 만큼 그 가격도 만만치 않아 라이카(Leica) 기종의 1.5배 정도 나가는 그야말로 최고급 기종이었는데 불행히도(라이츠로서는 다행히도) 콘탁스 III의 바디는 라이카 f나 그 후의 M3만큼 튼튼하지는 못하였다. 그 주요 원인은 셔터였는데, 라이카의 셔터가 헝겊으로 된 막을 수평으로 움직이는 방식인데 비하여 콘탁스의 셔터는 얇은 금속 막을 수직으로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비록 콘탁스의 셔터 방식이 더 우수한 점이 많아서 오늘날 사용되는 포컬플레인 셔터(Focal plane shutter)의 원조가 되기는 했지만 그 당시의 기술로 이런 금속 막 셔터를 정교하게 동작시키는 데는 무리가 따랐던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 수리로 생업을 꾸려가던 기술자들 사이에서는 콘탁스가 단연코 좋은 제품으로 인정받은 것이다(콘탁스의 셔터 문제는 2차 대전 후에 개량형 A가 나오면서 해결 되었다).

 

한편 콘탁스는 필름을 교환하기 쉽도록 밑판과 뒤판이 같이 떨어지게 되어 있으나 라이카 III기종은 바닥판만 떨어져 나오기 때문에 이 좁은 틈으로 필름을 장전하려면 엄청난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 요즘에 나오는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겐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번거로운 것이 바로 ʻ구형 라이카에 필름 넣기ʼ인데 이런 사용자들의 희생 덕분에 라이카는 몸통 전체를 다이캐스트(Die Cast)로 주조 할 수 있게 되어서 라이카 바디는 총알도 뚫기 힘들 정도로 튼튼하다는 말이 엄연한 사실로 되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 까지나 III기종에 대한 얘기이고 밑판과는 별도로 뒤판도 열 수 있게 만든 M 기종은 역시 단단한 편에 속한다고 하지만 일본 미놀타(Minolta)에서 미놀타XE-7이나 XD-11을 껍데기만 바꿔 라이카 R3, R4, R5 등으로 이름을 붙여 생산한 기종에 이르면 튼튼하다는 말도 남의 일이 되고 만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라이카에 대한 황당 중의 황당,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뻥 구라의 지존을 소개하자면, ʻ라이카의 렌즈는 시각 장애인이 만든다.ʼ는 이야기이다.

 

소문의 의하면 라이츠는 기계적인 가공도 믿지 못하여 손끝의 감각이 크리넥스 홑겹을 두 쪽으로 가를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한 시각 장애인을 고용하여 렌즈를 쓱 더듬어보고 잘 깎였는지 아닌지를 판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자신이 직접 본 것처럼 (한 손으로는 아끼는 라이카를 쓰다듬어 가면서) 천연덕스럽게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 샤머니즘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이다. 이런 무속의 경지에 이르는 발상도 따지고 보면 다분히 동양적인 것인데 서구인들이란(특히 독일인들은 더욱 더) 확고한 물리적인 법칙과 과학적인 측정 기술을 저희 조상들의 음덕보다 훨씬 더 신뢰하는 인종들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렌즈를 만져보고서 판정한다는 것은 아마도 ʻ렌즈 만드는 것ʼʻ고려청자 만드는 것ʼ을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이 지어낸 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쨌든 라이카는 하나쯤 가져 볼만한 사진기이긴 하다. 잘 만들어진 기계이며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디자인을 가지고 있고(R 기종은 이 말에서 빼고 싶다) 또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수도 있다. 라이카라는 이름은 사진의 역사에서, 그리고 카메라의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그런 카메라를 소유한 덕분에 덩달아 부러움의 눈초리를 받게 된들 그리 나쁠 것도 없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ʻ환상적인 작품이 우수한 렌즈에 힘입어 쉽게 만들어 질ʼ 거라는 기대 때문에 라이카 같은 비싼 카메라를 사고 싶어 한다면 그건 정말 말리고 싶다. 사실은 생각과는 반대로 사진을 배우는 데 커다란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고가의 장비를 아끼지 않고 함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보통은 사진기의 광택을 보존하느라 가죽 케이스에 꼭꼭 싸서 여인네가 은장도 품고 다니듯 가지고 다니는 것은 물론 심지어 셔터에 무리가 갈까 봐 사진을 잘 찍지 않는 사람도 있다. 렌즈도 너무나 비싸기 때문에(어차피 사치품은 다 그런 거지만) 이것, 저것 필요한 대로 사서 쓸 수가 없다. 서너 달 동안 이 카메라를 아끼느라 노심초사하다가 아예 사진에 대한 흥미가 피곤으로 변해 버리는 사람도 보았다. 이렇게 되고 나서도 사진을 제대로 배우거나 잘 찍게 되는 사람을 나는 본적이 없다. 진짜루~. 사진기가 본래의 목적에 종사하지 못하고 위세를 떨치는 용도로 전용되면 그 사람의 사진 세계도 거의 끝난 것이다.

 

글쓴이 : 닮산 김종욱, 출 처 : 천리안 사진동(go pcman), 비싼 카메라는 왜 비싼가?

 

여기 저기 많은 사진클럽에 신화처럼 인용되는 글이고, 라이카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받아드리는 글이다. 라이카를 갖지 못한 사람은 갖지 못해서 라이카를 싫어하고, 라이카를 가진 사람은 갖고 있어서 라이카를 좋아하는지는 모르지만, 라이카를 써 본 나도 조금은 얘깃거리가 있기에 이 글을 인용했다.

 

김종욱 님은 광학계에 종사하는 전문인이니까 나보다는 훨씬 더 잘 알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나는 위 글에 동의하지는 않는 편이다. 라이카는 라이카로서의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주력 기종이 펜탁스 67이고, 근래에 라이카 R시리즈인 SL2R7을 갖게 되었다. 위에서 얘기한 대로 소형 사진기인 라이카로 찍은 35mm 필름 사진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중형 사진기인 펜탁스 67로 찍은 120 롤필름을 따라 잡을 수 없다는 것에는 나도 동의한다.

 

슬라이드 필름으로 비교하여 보면, 라이카로 찍은 것이 더 선명하게 보이긴 해도 20R(20인치 × 30인치) 정도의 크기로 확대인화를 해보면 역시 67사진기로 찍은 것이 더 나아 보인다. 그런데 내가 쓰는 67사진기의 렌즈들은 칼 차이스의 것이 세 개, 라이카의 것이 하나, 차이스 제나가 하나, 러시아제 두 개, 펜탁스 오리지널이 하나여서 내 사진기의 필름으로는 서로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라이카를 흔히 중형 사진기에 비교하는 것은 35mm 사진기에서는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콘탁스가 경쟁 상대였지만 현재 독일에서 생산되는 35mm 사진기는 라이카밖에 없는데, 솔직히 라이카를 일본의 광학제품들과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맹인이 검사하는 것이 아니라 30, 40년씩을 렌즈 연마에 종사한 전문가들이 한다는 얘기는 맞을 것이다. 이것이 일본이 독일을 따라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비싸도 갖고 싶은 것이 라이카인데 정말 아무 차이 없이 라이카가 비싸기만 하다면 그게 수십 년 세월 동안 통할 수 있겠는가?

 

다만 나도 좀 더 많이 알고, 확실할 때에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