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북두의 지존, 라이카

2012. 4. 9. 21:01The 35mm Camera(마루 엮음)

 

 

 

 

 

 

라이카를 만든 사람들

 

사진기를 조금 아는 사람들은 사진기의 대명사로 니콘을 생각한다. 그러나 니콘이 명함을 꺼내기가 민망한 사진기가 있으니 그게 바로 35mm 사진기의 지존 라이카이다. 무림의 태산북두가 소림파라고 한다면, 사진기의 살아있는 전설은 누구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라이카이다. 라이카 앞에 라이카 없고 라이카 뒤에 라이카 없다는 말을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라이카, 라이카는 35mm 사진기가 존재하는 한 영원한 신화로 살아남을 것이다.

 

강호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왜 소림파가 무림 최고의 문파라고 하는지 의문을 갖지 않는다. 소림파는 소림사의 스님들로 구성되어 있어 강호와는 거리가 먼 것 같지만 무림의 원조는 소림사이기 때문이다. 달마 조사가 창건한 소림사는 ʻ달마역근경ʼ을 비롯하여 72종의 절기로 무림을 휘어잡았다. 72종의 절기를 다 익힌 사람은 없지만 그 중에 한두 가지만 정통해도 절정 고수로 인정받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35mm 사진기와 렌즈를 이야기할 때는 단연 최고의 자리에 놓는 것이 라이츠의 사진기 "라이카" 이다.

 

라이카는 35mm 사진기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의 다게르(Louis Jacques Mande Daguerre)가 사진 기술에 대한 발표로 특허를 획득하여 공식적인 사진술이 시작된 지 정확히 10년 후인 1849년에, 독일의 수학자 칼 켈러(Cal Kellner)가 베츨러((Wetzler)에 현미경과 렌즈 등을 연구 생산하는 ʻ광학연구소ʼ를 설립한 것이 라이카의 시작이다. 켈러가 죽은 뒤 1869년에 이 연구소에 근무하던 에른스트 라이츠(Ernst Leitz, ?1920)가 회사를 이어받아 그 회사 이름도 ʻ에른스트 라이츠ʼ로 바뀌게 되었다.

 

칼 차이스(Carl Zeiss)의 광학연구소에서 근무했던 오스카 바르낙(Oscar Barnack, 1879~1936)1911년에 라이츠에 합류해 일을 하면서 1913년에 최초의 라이카 모델을 만들었다. 그는 영화 필름을 사용할 수 있는 작은 사진기를 만들었고 그 결과 꽤 큰 확대가 가능한 고품질의 네거티브를 얻게 되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라이츠의 명구(名句) ʻ작은 네거티브 큰 인화ʼ의 연원이 된다.

 

우르 라이카(Ur-Leica)라 이름이 붙은 이 사진기는 1/40초의 고정 속도를 가진 것으로 영화 사진기와 같은 것이다. 우르 라이카의 몸체는 모두 금속으로 만들었는데 끼워 넣을 수 있게 만든 렌즈 마운트 구조(침동식 구조)로 인해 그 크기가 당대에서는 파격적으로 작아져 사진인들이 바라던 소형화가 가능해졌다.

 

이 사진기는 사진기의 조작 제어 장치가 몸체 윗부분에 배치되어 오늘날 35mm 필름을 사용하는 사진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손으로 다루기에 알맞도록 그 모양과 크기가 결정되었다. 오늘날의 개념으로 볼 때, 이 사진기는 인체 공학에 충실히 접근했던 것이다.

 

바르낙은 이 사진기를 사용하여 그 주변의 일상생활을 사진에 담아 나갔다. 우르 라이카의 설계자이면서 최초의 라이카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바르낙은 이때 그 사진기가 지닌 여러 문제를 확인하면서, 셔터 기능, 뷰파인더, 렌즈 뚜껑 등에서의 결함을 철저히 개선해 나갔다.

 

라이츠와 카메라의 합성어로 만든 라이카(Leica)는 우르 라이카 이후 계속 연구되어 1923에서 1924년 사이에 ʻ0ʼ(Null)시리즈 라이카 31대가 만들어졌다. 일련 번호 101131까지의 이 사진기들은 양산 전 단계 시리즈(Pre-Production Series)로 여러 가지 시험 평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라이카를 이야기할 때 빼어 놓을 수 없는 다른 한 사람이 막스 베렉(Max Berek, 1986-1949)이다. 베렉은 라이카의 핵심이라고 할 라이카 렌즈를 설계하여, 라이츠, 바르낙과 함께 라이카 성공의 3총사로 불린다. 베렉은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라이카 렌즈를 설계했고, 현재의 라이카 렌즈도 베렉의 처음 설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초창기는 라이카의 렌즈가 콘탁스의 렌즈에 못 미친다고도 했지만 현재의 라이카 렌즈는 명실 공히 세계 최고로 인정되고 있다.

 

 

 

라이카 전설의 시작, 라이카

 

1925년에 드디어 상업적으로 양산된 ʻ라이카 (모델 A)ʼ이 나왔다. 이 사진기는 처음에 아너스티그매트(Anastigmat) 50mm/f.3.5(1925) 렌즈를 장착하였다가 뒤에 엘막스(Elmax) 50mm/f.3.5(1925-26), 엘마(Elmar) 50mm/f.3.5(1926-30), 헥터(Hektor) 50mm/f.3.5(1930) 렌즈 등이 표준으로 장착되었다.

 

셔터 스피드는 초기에 1/25, 1/40, 1/60, 1/100, 1/200, 1/500이었다가 나중에는 1/20, 1/30, 1/40, 1/60, 1/100, 1/200, 1/500으로 바뀌었다. ʻ라이카 Ⅰʼ의 공식적인 생산 시기는 1925년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그 해 봄 라이프찌히 박람회에 그 사진기가 공식적으로 대중에 선을 보였기 때문이며 실제는 1924년에 생산되었다.

 

라이카 I은 라이카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갖는 사진기이다. 그러나 라이카 I은 아직 레인지파인더(RF, Rangefinder) 사진기로 불리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라이카 I은 아직 RF를 갖추지 못했고 정확한 초점 조절을 위해서는 ʻ스케일 포커싱(Scale Focussing)ʼ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스케일 포커싱이란 거리를 측정하는 별도의 RF를 사진기 위에 부착하여 거리를 잰 후 이를 렌즈 조절 링으로 조절해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다.

 

라이카 은 모두 금속 재질로 만들었는데 무게는 425g이며 A, B, C형의 세 가지 종류가 생산되었다. 1925년 처음 출시된 라이카 I(A)는 초점 거리가 50mm/f3.5인 렌즈가 고정되어 있었고, 1/25~1/500초의 포컬플레인 셔터를 가진 매우 단순한 구조였다.

 

라이카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디자인에서 향후 모든 개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두 가지 개념의 도입이었다. 첫 번째는 1930년에 모델 C부터 도입된 렌즈 교환 방식이다(초기에는 사진기에 새겨진 일련번호의 첫 3자리 숫자를 렌즈에 음각시킨 형태로, 특정한 사진기에 특별히 맞춰진 일련의 렌즈들로만 교환이 국한되었다.).

 

두 번째는 모든 렌즈에 자동적으로 연동되는 RF를 내장하는 것이었다. 모든 라이카 렌즈가 사진인이 마음먹은 대로 언제나 라이카에 장착될 수 있도록 플렌지와 필름 면 사이의 거리가 표준화된 것이 1931년의 일이었고, 그 이후 1932년이 지나서야 그 결합이 효율성을 갖게 되었다. 초기 렌즈들도 물론 정확한 등록 번호가 확인되고 보정되면 레인지파인더를 부착할 수 있었다.

 

1926년에서 1930년 사이에는 모델 B(라이카 ), 1930년에서 1933년에는 모델 C(라이카 )가 나왔는데 모델 B에서는 포컬플레인 셔터 대신에 콤파 셔터(Compur Shutter)로 교체가 되었고, 모델 C부터는 렌즈도 고정 방식에서 교환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때까지는 RF 연동이 아닌 스케일 포커싱으로 초점을 잡았다.

 

라이카 I은 사진기 가격이 비쌌던 당시에 총 57,000대 이상이 생산되었을 만큼 성공작이었다. 라이카 I은 그 이전까지 생산되었던 어떤 35mm 사진기도 이루지 못했던 상업적 성공을 이룸으로써, 사진 역사에서 35mm 사진기를 본격적으로 등장시키는 커다란 획을 그었던 것이다.

 

라이카 (모델 D)1932년에서 1948년까지 생산되었으며 최초의 연동 RF를 장착한 사진기로 엘마 5cm/f.3.5 렌즈가 표준 렌즈였다. 하나의 문제점이 개선될 때마다 라이츠에서는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여 문제점들을 줄여나갔다.

 

1933년에서 1939년 사이에는 라이카 (모델 F)가 나왔고, 1935년에서 1948년 사이의 라이카 a(모델 G)는 독일군에게 군용으로 납품된 것이며, 1938에서 1946년 사이의 라이카 b(모델 G)는 전쟁 전 라이츠에서 생산된 최후의 사진기로 알려져 있다.

 

1940년에서 1951년에 나온 라이카 c1940년 이후에 나온 라이카의 내부 배치와 메커니즘이 재디자인되어 배치되고 다이캐스트 몸체가 적용되었다. 여기에 플래시 동조 회로(Flash Synchronization)가 채용된 것은 라이카 f이다.

 

계속해서 d(1939-1947), c(1948-1951), 1c(1949~1952), f(1951~1956), 1f(1952~1957) 등이 발매되었다. 사진기의 디자인은 큰 변화가 없었지만 기능에서의 작은 진보가 있거나 단순화되어 나온 것이다. 그리고 1957~1960년 사이에 라이카 g가 나왔는데 이 사진기가 스크루 마운트의 마지막 기종이다.

 

라이츠에서 RF 스크루 마운트의 사진기가 제작 중단되었다는 것은 렌즈의 교환이 훨씬 간편한 베이어닛 마운트로 들어간다는 얘기가 된다. 라이츠는 소형 사진기 시장에서 라이카 시리즈로 선두에 나섰으며 라이카 M3가 나오면서 최고의 사진기 메이커로 인정받게 되었다.

 

세계의 소형 사진기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자리매김이 되고 있는 ʻ라이카 M3ʼ의 탄생은 이미 수십 년 간 축적되어 온 라이카의 정밀 광학이 꽃을 피운 것으로 볼 수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이 M3가 라이츠에 영광과 굴욕을 함께 준 사진기로도 평가될지도 모른다. 너무 큰 성공은 다음 성공을 준비하는데 게을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라이츠가 M3의 성공에 빠져 있을 때에 일본 사진기 업계는 35 SLR 사진기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살아있는 전설 M3, 그리고 M 시리즈

 

19544, 독일 쾰른에서 열린 포토키나에서 라이츠는 지금까지의 ʻ바르낙형 라이카ʼ에서 획기적인 기종 변화를 도모한 라이카 M3를 발표했다. 라이카 M3는 전성기에 있던 라이츠의 사진기산업 기술을 상징하는 것으로 당시 사진기 업계에 큰 충격을 줄 만큼 놀라운 것이었다.

 

M3의 대단한 성공에 힘입어 라이카의 명성은 사진기 업계에서 태산북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이미 다른 업체에서는 SLR 형식의 사진기 개발에 힘을 쓰고 있었으나 M3의 성공에 힘입은 라이츠에서는 계속해서 RF 형식의 사진기를 내어놓았다. 1956년에서 1957년에 나온 라이카 MP는 전문가들을 위해 만들어진 M3의 특수 버전이다.

 

1958년에서 1967년 사이에 생산된 M2M3를 단순화시킨 것이다. 1959년에서 1964년 사이에 생산된 라이카 M1은 과학, 의학 및 복사 등의 특수 목적에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비조플렉스 미러 반사 하우징(Visoflex Mirror Reflex Housing)용으로 개발되었다. 1964년에서 1966년 사이에 나온 라이카 MDM1을 단순화시킨 것으로 불필요한 부분과 고가의 뷰파인더를 제거했지만 필요할 때는 액세서리 슈에 부착하여 사용할 수 있었다.

 

라이카 M4M3M2의 대체 모델로 두 사진기의 특징을 조합시켜 1967년에서 1975년 사이에 생산되었다. 뷰파인더 안에 35mm, 50mm, 90mm, 135mm 렌즈들의 밝은 프레임 선이 있다. 라이츠는 1976년 포토키나에서 M4-2를 선보인 후 TTL M5를 포함해 M 시리즈 사진기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생산비 상승과 자금 부족이 그 원인이었고, 라이카가 무시했던 SLR 형식의 사진기가 RF 형식의 사진기를 누르고 강자로 떠오르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요에 의해 1978년 캐나다에서 제조한 M4-2M 시리즈 사진기를 재도입했다.

 

M4-P1981년에서 1987년까지 캐나다에서 생산되었는데 전문가에게 이상적인 사진기로, 어두운 곳에서도 정확하게 초점 조절을 할 수 있는 대구경 75mm/f.1.4 스미룩스(Summilux) 렌즈와 함께 나왔다. 35mm, 50mm, 90mm, 135mm 외에도 28mm75mm 렌즈를 사용하는 밝은 프레임 선이 있다.

 

RF 사진기인 라이카 M 시리즈가 SLR 형식의 사진기와 경쟁에서 보였던 가장 심각한 단점은 렌즈를 통한 측광(Through The Lens)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이카 M5는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TTL 측광 방식으로 1971년에서 1975년 사이에 제조되었다. 그렇지만 사진기 몸체가 더 커지고 무거워져서 이것이 또 다른 단점으로 작용하여 사진기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1984년에 등장한 라이카 M6RF 사진기에 TTL 측광의 확실한 해답을 제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M6는 전문가와 진정한 사진가들에게 여러 가지 SLR 사진기의 대안으로 확고하게 재정립되었다. M6M3와 같은 크기의 사진기로 M4-P의 몸체 스타일과 뷰파인더를 가졌고 완전 전자식 TTL 측광 방식이다.

 

라이카 M72003년에 새롭게 등장했다. M7의 특징은 한마디로 전자화가 된 기계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셔터 스피드는 전자로 제어되며 소음이 아주 적다. 필름 감도 설정은 매뉴얼과 DX설정 두 가지가 가능하며, 자동 노출 모드에서는 ±2EV의 노출 보정도 할 수 있다. 또한 조리개 우선 AE 기능도 추가되었다.

1970년대 이후 사진기 시장은 SLR 사진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라이카의 고급스런 M 시리즈들은 여전히 사랑받고 있으며 RF 사진기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라이츠의 SLR 사진기

 

라이츠가 라이카 M3의 대단한 성공과 갈채로 인해 느긋함에 빠져 있을 때, 세계 사진기 시장은 RF 형식의 사진기에서 SLR 형식의 사진기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사진기 형식의 전환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진기 산업의 역할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1954년의 라이카 M3의 성공에 너무 빠져 있던 라이츠는 1950년대 말기와 1960년대 초기의 중요한 시기에 M 시리즈 사진기의 도입 이후부터 누려왔던 본능적인 직감과 리더십을 상실했으며, 주도권을 상실하자 라이츠는 혁신적인 일본제 사진기를 따라잡을 수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보도 사진 분야에서 ʻ니콘 Fʼ는 라이카를 밀어내고 있었다. 라이츠 최초의 SLR 사진기인 라이카플렉스가 등장한 1964년에 이미 니콘 F5년째 시판되고 있었으며, 유명 사진가들의 손에서 베트남 전쟁을 시험 조건으로 해 튼튼함과 신뢰성을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라이카만이 가지고 있는 사진기 디자인, 정밀성, 베이어닛 마운트의 내구성, 밝은 포커싱 스크린 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산이었으며, 뛰어난 렌즈 성능과 부드럽고 조용한 기계적 작동은 라이카가 SLR 사진기에서도 최고의 자리를 누릴 수 있는 잠재력으로 충분하였다.

 

라이카플렉스는 1964년에 등장하여 1968년에 생산이 중단되었다. 라이츠 최초의 SLR 사진기로 좀 늦기는 했지만 신뢰감을 주는 기종으로 뒤에는 라이카플렉스 스탠더드로 알려져 있다. 라이카플렉스는 새로운 바이어닛 마운트로 광각과 대구경 렌즈를 수용하기 위해 M 시리즈 사진기보다 훨씬 커졌다.

 

1968년에 등장한 라이카플렉스 SL은 라이츠 최초의 TTL 측광 SLR 사진기로 스폿 측광을 실현한 기기인데 1974년에 생산이 중단되었다. SL21974년에 라이카 60주년 기념으로 나온 기종으로 일본 기술이 유입되기 전 베츨라에서 제조된 최고의 사진기로 평가된다. 제조 단가가 맞지 않아 오래 생산되지는 않았다.

 

라이카 R31976년에 등장했다. 이 사진기는 기존의 라이카플렉스의 전형에서 탈피하고 모델 이름도 새롭게 바꿨다. 라이카플렉스와도 다르고 후기의 R 시리즈와도 디자인이 달랐으나 일본 미놀타의 XE와 아주 흡사한 모양으로 되어 있어 일제를 모방했다는 비난을 많이 들었다(실제로 R3XE는 같은 모델로 보인다). 이 사진기는 1979년에 생산이 중단되고 새로운 모습의 R4가 등장했다.

 

1980년에 첫 선을 보인 라이카 R4는 기존의 라이카플렉스와 R3 사진기의 구조와 모양을 재배치시켜 몸체가 그전보다 작아졌다. 라이카 R51986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했는데 R4의 기능 외에 TTL 플래시 측광과 평균 측광의 가변식 프로그램 모드, 뷰파인더에 모든 기능 정보가 보이게 만들었다. 셔터 스피드 범위가 12~1/2,000초로 증가되었다.

 

라이카 R6R3, R4, R5에서 보였던 전자식에서 완전 수동 작동으로 복귀한 사진기이다. 1988년부터 생산되다가 1992년에 중단되었다. R6는 전문가와 수준 있는 아마추어용으로 촬영자가 전부 조작해야 하며 전지가 없어도 작동한다. 라이카 M6에 견줄만한 사진기로 기계식 메탈 블라인드 셔터, 셔터 스피드 1~1/1,000초와 B, X(동조 속도 : 1/100), 셔터 스피드와 조리개의 수동 조작, 노출 모드는 스폿 측광과 평균 측광 두 가지로 셔터 스피드 아래의 스위치로 선택한다. 뷰파인더로 적정 노출과 노출 과부족 상태를 LED로 볼 수 있다.

 

라이카 R71992년에 나온 기종으로 라이카 R5의 대체 사진기로 1992년 포토키나에서 소개되었다. 노출 모드와 측광, 뷰파인더가 R5와 비슷하지만 TTL 플래시 기능을 비롯한 여러 부분이 개선되었다. 플래시 어댑터를 조합시켜 주광과 보조광 플래시용의 TTL 플래시 조절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다.

 

라이카 R81997년에 등장하였다. 이 사진기야말로 라이카-R 철학의 절정이라고 할 것이다. R8은 보다 좋은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진정한 사진가의 요구에 완벽하게 부응하기 위해 완전히 새롭게 개발되었으면서도 라이카의 고전적 가치를 시의 적절하게 연출했다.

 

라이카 R8은 탁월한 조작성과 완벽하고 뚜렷한 선으로 새로운 사진기 디자인의 표준이 되었다. 잡기 쉬운 그립과 단순하고 편리한 기능 장치를 최적으로 배치했다. 멀티 모드 자동 기능과 모터 드라이브를 연결할 수 있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장착한 새로운 SLR이 등장한 것이다. 전기 접점을 가진 라이카-R 베이어닛 렌즈 마운트로 18mm에서 800mm에 이르는 30여 종의 라이카 R 렌즈를 사용할 수 있으며,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노출 측정은 TTL 방식으로 전 영역 종합 측광(Full-Field Integral Metering)과 분할 영역 측광(Multiple field Metering)을 할 수 있는데 촬영 모드와 마음대로 조합할 수 있다.

 

2002년에 등장한 라이카 R9은 라이카 R8의 개선 형으로, 크기는 그대로이나 무게가 100g 더 가벼워지고 더 단단한 몸체를 자랑한다. 사진기 윗부분을 마그네슘 합금으로 교체해서 더 가벼워진 것이다. 그리고 R8에서 지적된 세세한 문제점들을 개선하여 사용자 중심의 사진기를 만든다는 라이츠의 정신을 실현하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1/10EV 스텝에서 보정되는 획기적인 비율 측광 시스템은 라이카 R8로 정평이 나 있는 측광 정도를 한층 더 향상시킨 것이며, 배경과의 밸런스가 높아진 프로그램 AE 모드에 의한 플래시 조광이나, 새롭게 추가된 최고 1/8,000초까지의 고속 동조 촬영이 가능하게 된 점 등은 사진인의 창의성을 배가시킨 것이다. 조작 모드 선택 장치 다이얼이 소정의 위치에 잠금이 되게 만든 것은 사소한 것까지 배려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미 독일의 사진기 산업은 거의 다 문을 닫아 SLR 사진기나 고급스런 RF 사진기는 대부분 일본에서 나오고 있고, 일본의 SLR 사진기는 이미 다 자동 초점 형식으로 바뀌었지만 라이카는 사진기 왕국 독일의 대표로서 홀로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래서 더욱 더 태산북두의 지존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라이카도 많은 부분에서 기계식만 고집을 할 수가 없어 부득이 전자식으로 바뀌긴 했지만 초점 조절만은 아직도 수동으로 하고 있다. 라이카가 렌즈의 초점 조절을 수동으로 지키는 이유는 라이카 렌즈의 성능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라이카의 렌즈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평가가 많지만 현존하는 35mm 사진기에서 라이카의 렌즈에 필적하는 렌즈는 없다고 본다. 라이카의 렌즈들에 평가는 양극을 달리고 있지만 반대편의 이야기대로 허명만 가진 것이라면 라이카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예로, 니콘 니콜 50mm/f1.4 표준 렌즈 깨끗한 중고가 17만 원 내외, 펜탁스 SMC-A 50mm/f1.4 표준 렌즈 중고가 13만 원 내외에 거래되고 있지만, 라이카 50mm/f1.4 표준 렌즈 중고는 120만 원 내외에 거래도 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라이카 신형 표준 렌즈는 200만원이 넘어간다. 렌즈들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다면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라이카가 많이 비싸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그들만이 가진 품질과 성능을 인정받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제는 사진기도 대중화되어 전문 사진인이나 아마추어 사진인이나 그 장비에 있어서는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좋은 사진기가 많이 보급되었지만 아직도 라이카는 쉽게 가질 수 있는 사진기가 아니다. 그 시장 점유율은 미미한 편이어도 라이카는 최고급 사진기로서의 품위를 여전히 갖고 있다.

 

지금 라이츠에서 준비 중인 것은 새로운 모습의 디지털 사진기가 아니라 라이카 R9의 뒤 뚜껑[필름 백]을 디지털 백으로 교환하는 형식이라고 한다. 그것이 어떤 반응을 얻을지는 모르지만 ʻ라이카ʼ라는 이름만으로 행세를 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라이카가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언제나 최고의 품질과 성능을 가진 사진기와 렌즈를 개발하는 데 그 정신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 라이츠의 끊임없는 노력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