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과 한글

2012. 10. 10. 09:59세렌디피티(serendipity)/올드스쿨입니다

 

 어제가 한글날이었다.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뒤부터는 한글날에 관해 관심을 두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한글날을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한글날을 꼭 기억해야 되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궁해질 수밖에 없지만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인 한글을 우리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다.

 학교에서 보면 3학년 학생들도 우리 말과 한글을 혼동하고, 국어과 교사가 아닌 대부분의 교사들도 혼동하고 심지어 방송을 하는 아나운서들도 혼동을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다들 우리 말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얘기들을 하는데 우리 말이 다른 말에 비해서 우수하다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고, 우리 말을 적는 글자인 한글이 우수한 거다.

 말은 어느 나라나 민족이 쓰는 특정 언어가 더 우수하다고 얘기할 수가 없다. 배우기 쉬운 말이 우수하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배우기 쉽다는 것을 계량화하기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아프리카 어떤 소수 민족들이 쓰는 말은 200 ~ 300 개 정도의 단어로만 구성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 정도의 단어만 알고 있으면 자기들끼리 소통하는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문법 규정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그 말을 적는 글자도 없지만 계속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그것으로 생활하는데 충분하니 다른 것이 더 필요가 없는 거다.

 지금 우리나라 큰 사전에 올라 있는  단어의 수는 2010년 기준으로 50만 개가 넘는다. 이 50만 개의 단어를 다 아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 백 개의 단어만 알면 생활하는데 불편을 느끼지 않을 거다. 그리고 학교에서 문법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도 언어생활을 하는데 별 지장을 느끼지 않는다. 지금은 다 학교를 나오지만 예전의 할머니, 할아버지 중에는 초등학교도 안 다닌 분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들이 언어생활을 하는데 불편을 느끼거나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고 본다.

 사람들은 태어나 자라면서 본능적으로 자기가 사는 환경의 언어를 익힌다.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도 안 다니는 어린 아이가 말을 또박 또박 하는 것을 보면 신기할 때가 많은데 그것은 그 부모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우기 때문이다.

 말은 그러하지만 글은 배우지 않으면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다. 글은 말을 적는 하나의 기호이지만 그 체계는 단순하지 않다. 중국 같은 경우, 자기네 말을 적기 위해서 한자를 쓰는데 그게 하도 복잡해서 자기네 문자를 버리고 다른 문자를 쓰자는 얘기까지 나왔었다고 한다. 그런 얘기가 있었지만 오랜 세월 사용해 온 자기네 문자를 버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한자를 간소화한 간체자를 쓴다.

 우리나라도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중국의 한자를 빌려다가 우리 식으로 만들어 쓴 향찰과 이두가 있었다. 우리 말과 중국 말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중국말을 적는 한자가 우리말을 적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었을 거다. 그래서 우리말의 어순에 맞게 한자를 변행시켜 쓸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러나 그게 말로는 단순하지만 그런 규정을 만들고 교육하는 일은 무척 지난한 일이었을 거였다. 그래서 우리에게 맞는 문자를 필요로 했고 그런 필요에 의해서 한글을 만든 거다.

 한글은 놀랄 정도로 체계적이다. 소리내는 방법과 위치에 따라 구별할 수가 있고, 적은 숫자의 자음과 모음으로 엉청나게 많은 단어를 적을 수 있다.

 세종대왕께서 글자를 만드실 때에 스물여듧 글자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거기서 네 개의 글자가 빠지고 스물넉 자의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솔직히는 여기에ㅣ 쌍자음과 이중 모음 등을 더하면 열아홉의 자음과 스물하나의 모음이어서 마흔 자의 자모음으로 되어 있다.

 엊그제 인터넷뉴스에서 보니 글자올림픽에서 우리 한글이 1위를 차지했는데 2위은 인도 문자이고 3위가 영어 알파벳이라고 한다. 영어 알파벳으로 적을 수 있는 소리는 300개이고, 우리 한글로 적을 수 있는 소리는 24자의 자모음으로 이론상 11,000 개이고 실제로는 8000여 개라고 나와 있다.

 문자는 적은 숫자로 많은 소리를 적을 수 있어야 좋다. 그래야 배우기가 쉽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기호가 하나의 소리만 낼 수 있어야 혼란을 피할 수 있다. 영어에서 A는 어, 아, 애 등으로 환경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지만 우리 한글은 그런 기호가 없다.

 우리 것이라 무조건 좋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 말은 문법체계로 설명하기가 쉬운 말이 아니다. 그나마 한글이 있어서 복잡한 구조의 우리 말을 쉽게 배우고 적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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