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12. 16:36ㆍ세렌디피티(serendipity)/올드스쿨입니다
저는 30년 전에 동부전선 화천에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처음 춘천 103보충대에 가서 대기생활을 하고 4박 5일을 보낸 뒤에 화천 칠성부대 훈련소에 가서 8주 훈련을 받고 최전방 철책 바로 아래 부대로 배속을 받았습니다. 제가 소속된 중대는 이미 철책근무를 완료하고 뒤로 빠진 상태였는데 우리 소대가 다시 지원을 나가게 되어 저는 이등병을 달고 철책 근무를 섰습니다.
철책 근무는 아주 단순합니다. 부대원 중 상황병 한 명과 취사병 한 명만 남고 전원이 챌책근무에 투입됩니다. 제가 있던 곳은 화천 지역인데 거기는 산악지대라 초소와 초소 사이가 서부전선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되어 있지 않고 지형의 유, 불리에 따라 70m에서 130m 까지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부대는 철책선에서 15분에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습니다. 부대원들이 저녁을 일찍 먹고 두 명만 빼고는 철책에 투입해서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에 해뜰 무렵 철수해서 아침 밥을 먹고는 오전에 다 잠을 잡니다. 저희 소대가 근무를 서는 곳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망루가 있고 거기에 두 명, 그리고 철책으로 들어가는 통문에 두 명이 오전에 근무를 섭니다. 이 사람들은 오후에 교대하여 오후에 잠을 잡니다.
원칙적으로는 부대 주변에도 초병을 세우게 되어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대개는 다 잠을 자느라 부대 주변에 초병을 세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철책을 넘어서 귀순한 인민군이 부대를 찾아와 문을 두드렸어도 몰랐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 받을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매우 유명한 격언이 있는 것처럼 경계는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만약에 그 귀순병이 귀순이 아니라 무장을 하고 들어와서 부대 내에 수류탄이라도 투척했다면 엄청한 인명피해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책임을 물어야 하고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는 저도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군대를, 군인을 해이하게 만든 것은 우리나라 정치인들입니다. 맨날 앉아서 북한이 주적이 아니라느니, 종복이 주적이라는 것은 잘못된 얘기라느니 하고 있으니 군인들인들 그 영향을 안 받겠습니까?
군인들의 긴장감을 다 풀어놓게 만든 것이 정치인들이 무슨 낯으로 군인들을 비난하는지 한심스럽습니다. 군인은 군인이어야 하는데 그 군인들을 민간인으로 만들어 놓고는 무슨 얘기들 하는지 한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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