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20. 04:52ㆍ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설이 이제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전 같으면 여자들은 옷을 만들고 음식을 준비하느라 무척 바쁠 때지만 지금은 명절 일주일 전이 바쁘다고 할 사람은 한 분도 없을 것 같습니다. 별로 할 일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명절만 되면 명절 증후군 이야기가 나와서 조금은 어이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옷을 사서 입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닙니다. 물론 여기서 ‘그리 오래’라는 말이 조금은 어폐가 있을 겁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불과 60년 정도라고 하고 싶은데 그게 적은 세월은 아니네요.
추석빔이라는 말은 생소해도 ‘설빔’은 귀에 익은 말일 것입니다. 추석 때는 농사일로 바쁘기 때문에 어머니들이 자녀 옷을 지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때가 농촌에서는 가장 바쁜 시기의 막바지이기 때문에 하루만 시간을 놓쳐도 곡식을 거두는데 손해가 커지기 때문에 음식 장만도 바쁠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설에는 이미 농사가 다 끝나고 여자들도 한가한 시간이 되기 때문에 어른들 옷과 자녀들 옷을 지을 시간이 충분해서 대부분 설에 새 옷을 만들어 입혔기 때문에 설빔이라는 말이 나온 거였습니다. 요즘 집에 반짇고리가 있는 집도 드물다고 할 정도이니 어머니들이 자녀 옷을 짓는다는 얘기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나 있었던 걸로 알 것입니다.
음식도 대부분 사다가 먹거나 반은 준비가 된 것을 사다가 쓰기 때문에 예전의 어머니들처럼 힘든 일은 없다고 보는데 여자들이 명절만 되면 ‘죽겠다’는 말들을 달고 살고 또 방송에서 은근히 그를 부추기는 듯한 일들을 보면서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예전 같으면 한 달 전에 과(강정)을 만들기 위해 쌀을 반죽해서 발효시키고 그것을 다시 말려 놓아야 하고, 보름 전에는 엿을 고아야 그 엿으로 과도 만들고 다른 음식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흰떡을 한 말 정도만 해도 그것을 써는데 이틀 밤은 꼬박 걸리는데 서 말씩 하는 집은 그야말로 떡을 써는 것이 며칠 이어지고 칼만으로는 다 썰 수도 없으므로 떡을 써는 작은 작두를 서너 개씩 준비해서 썰었습니다. 식구들도 많았지만 어른이 계신 집에 세배하러 오는 손님마다 떡국을 올린 상을 차려 내려면 종일 부엌에서 나올 시간도 없었습니다. 이런 얘기하면 누가 그런 일을 했냐고 하겠지만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해마다 설에 하신 일입니다.
남자들은 할 일이 별로 없지요,,, 부엌에서 필요한 나무만 준비해 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샘이 공동우물이었으므로 물이 충분하게 부엌에 있는 물독에 계속 물을 길러다주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눈이 많이 오면 안마당 바깥마당 눈 치우는 것도 남자가 할 일이지요.
애들은 설 전에 머리 깎고 목욕하면 할 일 다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설을 맞아 이발을 하고 왔습니다. 저는 남자들이 미장원 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지금까지 미용실에 가 본 것은 딱 한 번입니다. 군에서 제대하고 머리가 길으니까 누나가 광천에 친구가 미용실을 하고 있으니 가서 머리 자르라고 해서 가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동네에 이발소가 하나뿐이었습니다 그 이발소에 광성리 1, 2, 3구, 화계리 1구, 신풍리 2구, 오성리 아이들이 모두 와서 머리를 깎으려 하니 명절 때는 밖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었습니다. 저야 동네에 이발소가 있으니까 상황 보면서 사람이 없을 때에 가서 깎으면 되었지만 먼 동네에서 온 아이들은 추위에 떨면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저씨 혼자서 이발을 하니 머리를 자른 다음엔 감아줘야 하고 그러고서 다시 깎아야 하니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려서는 집에서 물을 데워 부엌에서 다라에 물을 퍼놓고 목욕을 했는데 중학교 다닐 때부터는 광천 목욕탕에 가서 돈을 내고 목욕을 했습니다. 다른 때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명절 때가 되면 마치 군대 목욕탕처럼 사람이 붐볐고 탕 속의 물은 구정물처럼 변해 있었습니다. 그래도 돈을 내고 들어갔으니 탕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본전을 뽑는 거였습니다.
서울은 이발소가 많이 줄었다고 해도 미용실이 그만큼 늘어났으니 명절 때라고 해서 더 붐빌 일은 아닐 겁니다. 오늘 이발하러 갔더니 명절이 다가온다고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줄을 이어 오셨습니다. 그 중의 한 분은 몸이 몹시 불편하여 마나님께서 부축하여 오셨는데 이발소 문턱을 넘지 못해서 한참을 힘들어 하셨습니다. 이발하시는 아저씨가 얼른 가서 부축하려 하니까 한사코 거절하시면서 혼자 그 문턱을 어렵게 넘어 들어오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른들은 아직도 명절에 머리를 꼭 깎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다들 이발은 하셨습니까? 아직 시간이 여러 날 남았으니 오랜만에 미용실 말고 이발소에 가서 명절 이발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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