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13. 20:25ㆍ시우의 여행기
17. 08. 11. 금. 비 오다가 개고 오락가락함
길을 걸으면서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실감이 안 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가끔 중국의 큰 산들을 보면 '잔도'라고 해서 산 중턱을 깎아내고 덧붙여서 좁은 길을 만들고 사람들이 그런 길로 돌아다니는 것을 보는데 나는 그런 길을 볼 때면 거기 가지 않고도 오금이 저릴 때가 많았다.
여기 호도협 트래킹 코스는 잔도가 아니다.
그냥 산 중턱에 길을 낸 것이지만 아래로 내려보면 까마득한 절벽이라 발을 한 번 헛디디면 그대로 쉬지 않고 굴러내릴 것이 확실한 곳이라 여기서도 가끔 오금이 저릴 때가 있었다. 이건 가서 직접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도 모를 것이다.
우리가 걷고 있는 산의 건너 편에는 차마고도 트래킹 코스가 있는데 산 위에 좁은 띠가 둘러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그 길이 가끔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다가 다시 보이곤 했다. 우리 쪽보다 차마고도 트래킹이 훨씬 더 무서운 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가는 길 도중에 관음폭포가 있었다.
말이 폭포이고 물이 흩뿌리는 별 볼일이 없는 폭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곳에 가서 보니 생각보다 웅장했다. 그러나 사진으로는 더 잘 보여줄 수가 없었다.
내려가는 코스가 나왔다고 좋아했지만 전혀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길이 생각보다 훨씬 미끄러워서 넘어지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나도 몇 번이나 넘어질 번 했기 때문이다. 나는 도중에 물이 많이 불어 냇가처럼 물이 흐르는 곳에서 신발을 신고 건넜다가 훔뻑 젖었다. 나중에 오는 사람들을 보니 신발과 양말을 벗어들고 와서 다시 신던데 나는 앞에 간 사람들이 그냥 건너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가 신발이 완전히 젖고 말았다.
내 신말은 트래킹화인데 방수가 되서 그동안 비가 와도 별 문제가 없이 잘 신고 다녔었다.
그런데 오늘 내 실수로 완전히 물에 젖어서 무거울 뿐 아니라 그거 말릴 생각에 걱정이 컸다. 나는 사진기 가방을 어깨에 메고 손에는 사진기 주머니에는 렌즈가 들어 있어서 남들처럼 가볍게 돌을 밟으며 건너 뛰지 못해 다 젖은 거였고 그래서 길이 더 미끄러웠는지 모른다.
넘어질까봐 엄청 조심하면서 간신히 티나스객잔에 도착했다. 대부분 나보다 먼저 와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는 볶음밥을 시켜서 먹고 물을 한 병 사서 목을 추겼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빵차를 타고 상호도협 강가로 갈 계획이었으나 비가 많이 와 낙석과 토사가 심해 갈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두 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몇 사람이 걸어서 강가로 가겠다고 하여 나도 사진기 들고 따라나섰다가 중간이 돌아왔다. 경사가 아주 급한 길인데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길이 미끄럽고 시간이 촉박하여 내 힘으로는 내려갔다가 시간 내에 올라오지 못할 것임을 스스로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물가에 내려가서 사진을 찍고 올라와야 제대로 호도협트래킹을 한 거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인데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 것을 어찌 하랴!
우리는 거기서 차를 타고 하파촌으로 떠났다. 13일 여정으로 온 사람이 열네 명이었고 10일 여정으로 온 사람들이 한 가족 네 분이었는데 그 네 분은 거기서 리장으로 가는 버스를 탔고 우리는 전세 낸 빵차를 타고 하파촌으로 향했다.
나는 우리 일정에 하파촌이 있는 것도 몰랐다.
부끄러운 일이다. 티나스객잔에서 차를 타고 나갈 때는 계속 아래로 내려가는 줄로 생각했다. 길이 좁은데 기사가 차를 험하게 몰아 매우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차 실수하면 그대로 수백 미터 아래 계곡으로 날아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앞에 앉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바로 졸았지만 나는 졸 수가 없었다. 내가 졸지 않는다고 해서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위험한 코스에서 나 까지 졸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다닌다. 한참을 내려가길래 그 아래 보이는 동네가 하파촌인 줄 알았는데 차가 다시 산을 돌면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대체 하파촌이 어디길래 차가 다시 올라가나 생각했는데 계속 오르기만 하는 거였다.
그렇게 계속 오르다가 산을 하나 넘으니까 다시 내려갔는데 그래도 바닥이 아닌 산 중턱에 마을이 있었다. 하파촌은 합파설산의 등산을 시작하는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라는 것을 거기 도착해서 알았다. 우리가 여장을 푼 곳은 하파촌유스호스텔이었다. 거기 내릴 때 까지는 몰랐는데 내려서 보니 등산을 갔다가 내려오는 젊은 사람들이 많았고 대부분 우리가 묵고 있는 유스호스텔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거기서 돼지고기 수육으로 저녁을 먹었는데 나가서 보니 물가가 무척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일가게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가격이 저렴해서 나도 망고를 열다섯 개를 샀다. 우리 팀 모두에게 하나씩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혹 하미과가 있는가 물었더니 없다고 했다. 물론 말이 안 통해서 한참 헤맨 뒤에 소통이 되었는데 나는 거기 있는 동과(冬果)가 하미과인가 하고 들고 가서 물었더니 정확한 발음으로 '동과'라고 해서 놀랐다. 동과는 우리나라에선 부안의 일부 농가에서만 키우는 귀한 것인데 여기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류미경 선생에게 드라이기를 가져왔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했다. 내가 신발이 다 젖어서 그걸 말려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했더니 신발 안에 휴지를 가득 채우면 훨씬 나을 거라는 얘기를 듣고 나는 천천히 걸어서 슈퍼에 갔다. 가서 휴지로 보이는 뭉치 두 개를 10위안에 샀다. 가지고 들어가서 뜯어보니 그게 휴지가 아니라 여자들 생리대였다.
한참을 혼자서 웃다가 그걸 다 뜯어서 신발에 가득 채우고 겉에서 감싸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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