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 여행기(2020. 02. 14 ~ 22)

2020. 11. 14. 08:49시우의 여행기

2020년 발칸 반도 여행(2020. 02. 14 ~ 02. 22)

여행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많은 얘기에서 ‘여행은 어디에 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갔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어디를 갔느냐’가 어찌 중요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번에 발칸반도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를 돌아보는 여행을 선택했다. 예전엔 ‘유고슬로비아’로 하나의 나라였던 지역이 지금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몬테니그로, 코소보, 북마케도니아’ 등의 일곱 나라로 분리가 된 곳이다. 이렇게 여러 나라로 분리가 된 것은 유고슬로비아를 형성했던 여러 지역의 주민들이 서로 다른 민족인 이유도 있을 것이고 특정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종교도 큰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1945년 세계2차 대전이 끝난 뒤에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 출발했던 이 나라는 1991년 공산권의 붕괴에 발을 맞추어 먼저 슬로베니아가 독립을 했고 이어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연방과의 내전이 나서 많은 사람이 죽고 문화재가 훼손이 되었는데 지금은 일곱 나라로 분리가 되어 각각 나름의 길을 가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 일곱 나라 중에서 크로아티아가 주(主)가 되고 슬로베니아가 종(從)이 되는 여행코스를 택했는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두 번 통과를 하게 되고 거기에서 하루 잠을 자게 된다고 했다.
이 지역의 여행은 봄과 가을이 가장 좋다고 하는데 우리는 방학을 이용해서 가기 때문에 그 좋은 계절을 택하지 못했고 또 밤이 길고 낮이 짧은 때에 가기 때문에 좋은 계절에 비해 경비가 많이 저렴하다는 것이 2월 여행을 선택한 이유였다.
계절에 따라 캐리어의 내용물이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추운 계절에 가게 되면 따뜻한 옷의 종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겨울 여행은 짐이 많아진다. 크로아티아의 2월 하순 일기를 계속 검색했는데 우리나라보다 더 춥다는 얘기가 많아서 두꺼운 옷으로 준비를 했다. 사실 옷이 많이 필요가 없는데도 다들 여행을 갈 때는 왜 많은 옷을 준비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다녀와서는 늘 후회가 따랐는데 이번에도 추울까봐 따뜻한 옷을 여러 벌 챙기느라 짐이 많아졌다.
나는 여행을 떠날 적에 옷을 챙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진기와 렌즈를 챙기는 일이다. 필름을 쓰지 않는 시대이니 디지털사진기만 챙기면 될 거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디카도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촬상 소자가 35필름 풀사이즈인 K-1과 그보다 작은 K-3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에 따라 렌즈가 달라진다. 사진을 위한 여행이라면 K-1을 가지고 가야하겠지만 이번엔 여행을 위한 것이라 K-3로 정했다.
K-3사진기와 렌즈는 10-17, 16-85, 70-210 등 세 개의 줌렌즈와 35, 50, 135 등 세 개의 단초점 렌즈를 챙겨서 사진기배낭에 넣었다. 이렇게 챙기면 충분한데 이걸 다 넣은 배낭을 지고 다니려면 무거워서 다시 작은 사진기 가방을 챙겨서 캐리어에 넣었다.
나는 여행을 갈 적에 음식물은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현지에 가서 먹고 마시면 된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게 떠나는데 여행을 가서 함께 모여 간식시간을 가질 때는 미안한 생각이 든다. 늘 나만 맨손으로 가기 때문이다.
옷과 사진기를 챙기고 나면, 소소한 것들 늘 먹는 혈압약과 혹 모를 통풍약, 소화제, 쌍화탕, 상처에 붙일 밴드 정도는 늘 준비한다. 그러면 다 된 것이다.

 

20. 02, 14. 금. 맑음.
출발, 베니스 공항 도착, 슬로베니아 크란.


새벽 네 시에 일어났다.
알람을 네 시에 맞춰 놓고 잤는데 알람이 울어서 잠을 깼고 우선 시계부터 알람을 07시로 맞춰 놓고 씻고 기도했다. 그러고는 집사람을 깨워 아침밥을 먹은 뒤에 집에서 다섯 시 20분쯤 집사람이 운전해서 홍대앞으로 갔다. 다섯 시 45분에 역으로 들어가서 열차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갔다.
차에서 내려 공항으로 들어가는데 신해 선생 부부와 전소영 선생이 함께 앞에 가고 있었다. 인사하고 같이 올라갔는데 벌써 짐을 부친다고 다들 이동하고 있었다. 짐을 부치고 약속한 시간인 일곱 시에 3층 N카운터 앞으로 갔다. 주덕근 가이드가 나왔는데 첫인상이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신화진 선생 언니가 같이 간다고 오늘 처음 봤는데 화진 선생보다도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아서 놀랐다. 나이 차가 얼마 안 나는 모양이다. 길게 얘기할 것도 없이 각자가 다 알아서 터미널로 나가는 분위기였고 나도 그냥 나갔다.
09시 40분에 탑승을 했는데 31c석이라 앉고 보니, 내 옆에 신해 선생 부부였다. 가운데 신해 선생이 앉고 좌측에 내가 앉은 것인데 나는 통로 쪽이라 그나마 조금 나았다. 유재량 선생이 나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옆자리인데 내가 비좁아 보인다고 자리를 바꾸자고 했는데 괜찮다고 그냥 앉아 있었다. 보니 군데군데 자리가 비어 있었다.
10시 05분에 출발하고 한 시간 정도 지난 뒤에 재량 선생이 30석 f좌석에 가서 앉으라고 해서 옮겼다. 그게 앞과 공간이 있어 그냥 좌석보다는 훨씬 편한 자리였다. 그런 자리가 아홉 석인데 가운데 세 좌석을 빼고 양쪽으로는 '유료 좌석'이라고 붙어 있어 아무도 앉지 않았고 가운데 좌석 중의 d는 우리 가이드가 앉아 있었다. 나는 가운데 자리를 비우고 f에 앉은 거였다.
기내식으로 쌈밥과 닭고기파스타가 나왔는데 가이드가 닭고기파스타를 먹길래 나도 그걸 달래서 먹었다. 15시에 간식으로 조각 핏자가 나왔는데 먹을 만했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시간이 계속 갔는데 19시에 다시 기내식이 나와 쇠고기유산슬덥밥을 먹었다.
22시 15분에 베니스공항에 도착했는데 현지 시간이 우리나라보다 여덟 시간이 늦어서 두 시 15분이었다. 베니스공항의 이름은 마르코폴로공항이었다. 밖에 나와서 같이 간 사람들을 보니, 우리 영일고팀 13명과 전북대 무슨 과 동기생이라는 네 분 여자친구, 두 자매와 70세 되신 어머니, 고1이 되는 천채윤 학생과 74세 된 할머니, 초등 6년인 이승준과 아버지, 부부 한 팀 등 26명이고 가이드인 주덕근 등 총 27명이었다.
세 시쯤에 45인승 버스가 와서 우리를 태웠다. 크로아티아인 기사 이름이 스테판이었다. 버스를 타고 시속 80 ~ 100km로 달리는데 여기서는 차에 장착한 기기에 계속 주행 속도가 기록되기 때문에 누구도 빨리 달릴 수가 없다고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우리나라 겨울 들판과 비슷했다. 논인지 밭인지 분간이 안 되는 넓은 들에 풀이 조금씩 나있거나 땅을 갈아 엎어놓은 상태로 보였다.

 

다섯 시 반쯤에 휴게소에 들러 잠시 화장실에 들러 일들을 보고는 조금 쉬었다. 커피가 맛있는 곳이라고 했는데 우리 커피보다 양이 조금 작고 더 쓴 맛이었다. 나는 커피를 시키지 않았다. 여기 휴게소들은 상점을 통해서 화장실에 가게 만들어 화장실에 가려면 어쩔 수 없이 상점에 들러야 했다. 그리고 상점에 들어가는 문과 나가는 달라서 처음 온 사람들은 조금 혼란스러울 것 같았다. 물론 나도 그랬다.


밖에 나와서 보니 부부가 담배를 피우고 젊은 여자애들도 밖에서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고 있어 놀랐다. 우리나라 같으면 휴게소라고 해도 대부분 금연이고 흡연구역은 따로 지정이 되어 있을 것인데 여기서는 담배를 피우는 것에 상당히 관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는 넓은 들이 좋은데 거기는 모두 밀을 키운다고 했다. 벼농사는 짓지 않는다고 해서 조금 이해가 안 되었다.
밭들은 다 겨울이라 휴경이고 드물게 무슨 풀들이 자라는 곳도 있었다. 군데군데 포도밭도 보이고 멋있게 보이는 나무들이 많았다.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으라고 하면 좋은 사진을 많이 찍을 수가 있을 것 같아 아쉬웠다. 그리고 멀리 눈이 덮인 산들도 보였다.
길을 가다보니 도로를 확장하는 공사가 진행이 되고 있어 길이 막혔다. 가이드의 말로는 지금 몇 년 째 공사 중인데 여기는 덥다고 쉬고, 춥다고 쉬고 휴일이라고 쉬다보니 우리나라에선 다섯 달 정도 걸릴 공사가 몇 년이 지나도 진척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게 참 우스운 이야기인지 서글픈 이야기인지 분간이 서질 않았다.
그렇게 한참 가서 다섯 시 40분에 슬로베니아 크란에 도착했다. 이탈리아보다는 슬로베니아가 물가가 싸서 슬로베니아에 있는 호텔에서 자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다섯 시 반쯤부터 어두워져서 밖이 안 보일 정도였다.
이탈리아에서 슬로베니아로 국경을 넘을 때는 아무 검사도 없었다. 유럽연합국가 중에 크로아티아만 제외하고는 쉔칸 조약을 맺고 있어 국경을 넘나드는 것이 자유롭다고 했다. 그냥 차를 탄 채로 국경을 넘어간다는 것이 싱겁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다. 국경이라고 해서 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철조망도 없으니 여기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녁때라 빛이 부족했지만 슬로베니아 산골 마을들이 아주 예뻤다. 빛도 부족하고 달리는 차에서 사진을 찍은들 소용없는 일이라 그것을 그냥 눈으로만 보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나는 춘식 선생과 방을 같이 쓰기로 했는데 203호였다. 저녁 식사는 일곱 시에 했는데 호텔 뷔페가 괜찮게 나와 꽤 많이 먹었다. 가이드 엘비스 주가 여기는 음식과 와인이 맛이 없다고 얘기를 해서 솔직히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내가 먹기엔 아주 좋았다. 특히 두툼하고 길쭉하게 나온 돼지고기가 맛이 있었다. 예전에 언재 선생님이 양고기에 꿀을 발라 먹으면 맛이 좋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나서 나는 돼지고기에 꿀을 발라서 먹어봤는데 아주 좋았다. 나는 여기서 꿀맛의 참 뜻을 이해했다. 내가 엘비스 주에게 돼지고기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고 했더니 그게 베이컨이 아니었냐고 물었는데 내게 그게 무슨 문제가 되랴! 잘 먹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저녁을 먹고 여덟 시에 207호 용주 선생 방에 모여 신해 선생이 공항에서 사온 양주 한 병과 여러 사람들이 가지고 온 소주와 안주로 꽤 많이 마셨다. 다들 아는 사람이지만 여행을 왔으니까 한 방에 모여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고 또 오면서 겪은 일들, 기내식, 가이드에 대한 뒤 담화 등 얘기를 나누었고, 신해 선생님 사모님과 화진 선생 언니인 소영 선생에 대한 소개도 있었다. 즐거운 시간 보내고 아홉 시 반에 헤어져 방으로 왔다. 첫날은 열 시에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