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고백

2002. 10. 20. 18:49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제가 지난 주에 글을 올리지 못한 것은 좀 기분좋은 소식을 전하려고 기다리다가 그렇게 됬습니다. 죄송합니다.

지난 일요일에 설악산 한계령으로 사진을 찍으러 갔었습니다. 비도 조금 내리고 날도 흐려서 좋은 사진이 되겠냐고들 했지만 제 경험으론 약간 흐린 날이 분위기가 더 살아나서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양평으로 가는 길을 타지 않고 춘천으로 가서 구봉산을 넘는 길을 택했습니다. 구봉산을 지나서 느랏재 터널로 가는 길이 안개가 좋았던 경험이 있어서 그 길을 택했는데 생각만큼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 쪽 길을 따라가면서 보니까 단풍이 아주 곱게 물들어 있어 차를 멈추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계속 비가 내려 그냥 지나쳤습니다.
한계리 쯤 가니까 비가 그치고 약간 흐린 가운데 장수대휴게소부터 단풍이 얼마나 좋던지 가슴이 설레고 마음이 급해졌지만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 계속 올라갔습니다. 설악산에 단풍을 찍으러 여러 번 같지만 이렇게 산 전체가 아름답게 물든 것은 처음이라 할만큼 단풍이 고왔습니다.
한계령 정상 휴게소는 이미 만차가 되어 차를 세울 수가 없었고, 경찰들이 나와서 차를 통과시키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거기를 또 그냥 지나쳤다가는 다시 찍을 수가 없을 것 같아 경찰의 눈길이 머물지 않는 곳까지 내려가서 길가에 차를 세우고 사진기를 꺼내들었습니다. 빛이 없는 것이 많이 아쉬웠지만 그 상황에서 빛타령이나 하고 있을 처지는 아닌 것 같아 탄성을 연발하며 한참 찍고는 다시 이동하여 주전골로 들어가는 용소폭포 주차장까지 내려갔습니다.
주전골은 아주 여러 번 갔고, 또 내려갔다가 올라오려면 힘들것 같아 그냥 더 내려가면서 길가에 차를 세우고는 계속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 때문에 차가 많이 막혔는데 여럿이서 사진기 들고 사진을 찍으니까 지나가는 사람들도 대부분 우리 뒤에 차를 세우고는 내려서 보느라 더 길을 막히게 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길이 막히면 서울로 오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다시 돌려서 올라오다보니 아래서 쳐다보기에 너무 좋은 곳이 있어 다시 차를 가까운 곳에 세우고 내려와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마 단풍사진을 찍은 것 중에서는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 아닌가 싶었는데 그곳을 왜 이저야 보게 됬는지 후회할 정도로 좋았습니다.
눈으로만 봐도 너무 좋은 곳이 많았는데 차를 댈 수가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한계령을 다시 넘어 와서 원두막집(관광농원)에서 닭볶음을 먹었는데 시어머니는 안 계시고 며느리가 한 것이라 예전 같은 맛이 아니어서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제가 부끄럽게 고백할 것은 다름이 아니라 헛된 욕망에 관한 것입니다. 먼저도 말씀드렸지만 야후경매에 4*5판 린호프3가 나왔길래 응찰을 해서 85만원에 낙찰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너무 기분이 좋았는데 사진기가 막상 와보니 생각보다 휠씬 낡은 것이었고. 무브먼트를 하는 주름상자가 제 것이 아니라 교체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중하게 반품신청을 했고 파신 분이 너그럽게 받아드려서 반품을 했습니다.
이 사진기를 사려고 펜탁스645를 싼 가격에 넘기고 말았는데 마음에 드는 4*5판을 아직 구하지 못했습니다. 린호프는 깨끗한 것이 보통 300만원을 넘어가서 아예 포기했고 호스만4*5FA를 사려고 했더니 이것도 너무 비싸게 나온 것만 있어서 아직 사지 못하고 있습니다. 웨스타SP 중고가 아주 깨끗한 것이 저렴하게(80만원) 나온 것이 있어 그것으로 할까 망설이는 중에 벌써 팔리고 없어졌습니다. 솔직히 같은 일제라도 도요필드나 웨스타필드는 조금 조잡해 보이고 약해보여 별로 사고 싶은 생각이 안듭니다. 그래도 좀 나은 것이 호스만필드인데 제가 예전에 이것을 가지고 있다가 다른것을 산다고 팔아먹고는 지금 아쉬워하는 중입니다.
남들은 다 디지털로 가는 마당에 우슨 호랑이 담배 피우는 소리냐고 웃으시겠지만 불현듯 4*5판을 다시 갖고 싶어서 요즘 병이 났습니다.
다들 좋은 시간 되시기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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