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패밀리와 파인더

2002. 11. 17. 22:04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사진을 왜 찍느냐고 물으면 사진이 좋아서 찍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자아완성이니, 자아실현이니 하는 거창한 말들을 내걸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사진을 찍는 것은 자아도취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대부분 자아도취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이구요...
오늘 저는 전시회를 두 곳 보고 왔습니다. 대학로에 있는 예총회관에서 경희대학교 사진 동아리인 "파인더"의 전시회가 있다길래 갔더니 1실에서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포토패밀리"의 전시회가 있고 2실에서는 파인더의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오늘 두 전시회를 보고서 느낀 것은 한마디로 '아, 옛날이여!' 였습니다.
먼저 "파인더"의 작품들은 대학교 동아리답게 그들만의 주제를 표현하려 애쓴 점은 보이지만 이미 너무 구태의연한 리얼리즘을 추구하려 하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대학 동아리들의 주제는 한결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이 흑백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좋을 것들을 흑백으로 살리려하는 것은 시대감각에 떨어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게 합니다. 그렇지만 20년이 넘게 명맥을 유지해오는 열정에 찬사를 보냅니다.
저는 대학시절엔 사진기를 가진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도 못했습니다. 지금도 사진기는 비싸지만 제가 복학해서 대학에 다니던 시절엔 렌즈가 교환되는 수동사진기 한 대 가격이 시골 자갈밭 몇 마지기 값과 맞먹을 만큼 비쌌습니다. 요즘은 국민소득도 많이 높아졌고 상대적으로 사진기 가격이 많이 내려서 대학생뿐만 아니라 고등학생들도 고가의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것을 많이 봅니다.
제가 가장 놀랐던 것은 31회 전시회를 가진 "포토패밀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사진을 처음 시작하던 80년대 후반만 해도포토패밀리는 전국에서 다섯손가락안에 드는 대단한 동우회였습니다. 처음에 "팬탁스패밀리"로 시작하였다가 회원들의 사진기가 펜탁스에서 니콘, 캐논, 라이카 등으로 바뀌자 "포토패밀리'로 이름을 바꿨고 많은 회원과 수준 높은 실력을 자랑하던, 이름만으로도 천하를 울릴 유명한 그 동우회가 광고도 없이 예총회관 한쪽 전시실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왔습니다.
그런데 그 포토패밀리의 전시회는 초라하다못해 안쓰러울 정도였습니다.
연세드신 어른들만 몇 분 나와 계시고 도록도 없는 전시회.... 아무리 생각해도 포토패밀리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격세지감이라더니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물론 우리 서울포토클럽도 크게 다를 것이 없어 그들을 바라보는 제 심정은 착잡하기만 했습니다.
좋아서 사진 찍고, 자아실현과 자아완성을 위해서 사진을 찍는다던 사람들은 다 어디가고 연세드신 몇 분만 남아 겨우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사진클럽들... 거기서 나간 사람 다 사진을 그만두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디선가 자아도취에 빠져 아랫사람 지도한다고 뻐기고 있을 것이며,어디선가 다시 자기가 지도하는 클럽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진기를 사고, 렌즈를 사고, 바꾸고 또 사고 다 좋지만 자신을 키워준 둥지를 버리고 날아가는 철새들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사진은 권력을 위한 것도, 돈을 위한 것도, 명예를 위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아니 명예를 얻을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명예 다 허욕입니다. 돈으로 명예를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산 명예 그것으로 끝입니다.
부끄럽지 않은 사진인이 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절대 아니겠지만 부끄럽지 않은 사진인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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