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잎이 솔잎 나무란다구...

2003. 1. 4. 09:33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성경 말씀에 '네 눈 속에 들어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 속에 들어있는 티는 보느냐' 구절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말은 참 많은 곳에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제가 펜탁스클럽에서 맺은 인연중에 대학 후배 한 분이 있습니다. 나이 차가 조금 나기 때문에 학교다닐 때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펜탁스클럽에서 렌즈를 사고파는 인연으로 만났습니다.
이 후배가 장터의 단골손님인데 저 만큼이나 많이 사고 팝니다. 저도 참 많이 사고파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제가 많이 사고 팔게 된 것에는 가보카메라에서 언제나 외상으로 가져 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렌즈와 사진기는 그 가격이 싼 것이라 해도 다 십여 만원은 넘어가기 때문에 그냥 쉽게 살 수 있는 것들은 아닙니다. 솔직히 어떤 것들은 백만원 가까이 되는데 어떻게 자주 살 수 있겠습니까?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얘기처럼 그냥 가져올 수 있으니까 많이 산 것이고 또 쓰다보면 필요성이 떨어져 팔곤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하나를 사면 조금 써보고, 아니다 싶을 때 파는 쪽인데 어떤 사람들은 샀다가 1주일 만에 다시 내어 놓곤 해서 놀랐습니다. 제 후배는 일단 펜탁스에서 나온 것은 다 써본다는 생각인데 자주 사고 자주 팔길래 못난 선배가 선배라고 한마디 핀잔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집에서도 알고 있는 일이고, 다른 것에 빠져 돈쓰는 것보다는 사진이 더 낫고, 말린다고 될 일이야고 그 부인이 이해를 해준다고 합니다. 우리 사진인들이 다 이런 천사같은 부인을 만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이 후배가 연차수당(?) 받은 것이 있어 또 사야겠다고 얘기합니다....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얘기한 것은 저도 후배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가랑잎이 솔잎 나무란다고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덜하지 않으면서 선배랍시고 충고한 제가 낯 뜨겁습니다.
방학 전에 애들 논술지도하고서 얼마의 수당을 받았습니다. 저도 우선 손에 웬만큼 큰 돈이 들어오면 꼭 렌즈라도 하나 사야 마음이 놓입니다. 주머니에 돈 있어봤자 다 술값으로 나가니 나가기 전에 그래도 뭔가 하나 사 놓는 것이 남은 것이라는 생각이지요...
지난 연말에 펜탁스 수퍼에이를 하나 샀는데 그래도 조금 여유가 있길래 한참을 망설이다가 '빌링험하들리프로' 가방을 하나 샀습니다. 사진기 가방이 수십만원한다고 놀랬던 제가 낯 뜨겁게도 19만원이나 주고 가방을 산 것입니다.
사진기 하나와 렌즈 3개를 넣고 다닐 가방을 구하느라 무척 애를 썼습니다. 늘 메고 다니려면 옆으로 커서는 안되고 너무 무거워도 안되고 천박해 보여도 안되고... 제가 날이면 날마다 가방을 메고 다니니까 좀 괜찮은 것으로 사고 싶었습니다. 이미 매틴에서 나온 것을 세 개나 없앴고, 로우프로, 탐락 등 여러 메이커 것을 몇차에 걸쳐서 찾아보고 사려고 돈까지 꺼냈다가 도로 마음이 변해 다시 나오고 했습니다.
매틴 것은 재질이 약해 1년만 메고 다니면 겉 천이 닳아 떨어집니다. 때를 타면 빨아서 쓰긴 했지만 한번 빨고 나면 때가 바로 올라 아주 보기에 흉해지는 단점이 싫었습니다. 생긴 것은 빌링험과 아주 흡사한데 왜 그렇게 밖에 못 만드는지... 로우프로는 홍콩서 제작한 것들인데 너무 투박한 것이 마음에 안 들고, 내부구조도 내키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탐락이 그런대로 괜찮은데 가격이 빌링험과 큰 차이가 나지않아 그냥 눈 딱 감고 빌링험으로 한 것입니다.
사면서도 사치와 낭비가 심하다고 스스로를 나무라고 또 나무랐는데 지금 안 사면 또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무리를 했습니다.
19만원이 무리가 아니라 가방에 너무 큰 돈을 들인 것이 무리라는 얘기입니다.
이제 더 살 것이 없다고 얘기하지만 이런 다짐이 며칠이나 갈지 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