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인의 자세

2003. 3. 23. 21:36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지난 일요일에 석화촌에 다녀왔습니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사릉 근처에 있는 석화촌은 시인이신 김돈식 님이 가꾼 철쭉화원입니다. 보통 영산홍이라고 말하는 철쭉들이 가득 들어찬 곳인데 많은 시간과, 돈과, 공을 들여 만든 곳으로 늦은 봄에 많은 상춘객들로부터 사랑 받는 곳입니다.
저는 여기 석화촌을 알고 다닌 지가 한 5년 됩니다만 갈 때마다 사진인들의 자세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안을 수가 없어 몇 자 적어봅니다.
우선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사람들은 어디서도 좋은 말을 듣지 못하는 것에 대해 지적하고 싶습니다.
사진인이 모이는 장소에 가보면 필름곽들이나 필름을 담는 플라스틱 통들이 항상 눈에 띕니다. 누군가 버린 것이지요. 특히 슬라이드 필름곽을 보면서 "이것은 일반인이 아닌 사진인이 버린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슬라이드필름은 일반인들이 쓰기엔 너무 비싸므로 반드시 전문인이나 전문사진가를 꿈꾸는 아마추어사진인들이 버린 것입니다. 조금만 신경 쓰면 버리지 않을 것인데 어디를 가나 눈에 띕니다.
그 다음엔 출입금지구역을 함부로 드나드는 것입니다. 줄을 쳐 놓았으면 들어가지 말아야지요. 굳이 들어가서 아직 피지도 않은 꽃들을 마구 밟습니다. 물론 남보다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것을 나무라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관리자가, 혹은 주인이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사진기가진 것이 무슨 특권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혐오감이 듭니다.
사진 찍는 내가 이럴진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보면 뭐라 하겠습니까?
애써 가꿔 놓은 곳에 가서는 "찍을 것이 없다느니,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온다느니" 하며 쓸데 없는 불평을 큰 목소리로 늘어 놓는 사진인도 많습니다. 누가 자기 더러 거기와서 사진 찍으라고 했습니까? 설령 찍을 것이 없다면 자기 심미안이 부족한 것인데 그것이 무슨 자랑이라고 큰 목소리로 떠드는지...
거기다가 다른 사람 사진기에 왜 그리 관심이 많은지, 남의 사진기만 보면 한마디씩 보태고 자기가 가진 것 자랑하고...
이런 몰지각한 사진인들이 많다보니 어디를 가든 사진인들을 싫어합니다. 물론 저도 위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날 것도 없지만 적어도 남의 기분 언짢게 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사진은 자기자신을 위하여 찍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에게 어떤 피해를 주거나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은 삼가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어떤 비싼 사진기를 가졌다고 해도 남들이 우러러 보지 않습니다. 라이카나 핫셀이나 놀라이 가지고 다닌다고 해서 그런 사람을 위대한 사진가(?)로 보던 시기는 지났습니다. 이제 사진기는 부를 상징하는 기계가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매체에 불과합니다. 아직도 비싼 사진기 들고 다니면서 폼을 잡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분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진인일 것입니다.
아직까지 사진은 예술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항의하실 분들이 많겠지만 그림이나 조각들은 예솔품으로 인정되어 이동시에 보험이 가능하지만 사진은 예술품이 아니라 물품으로 분류되어 항공기나 선박으로 운반할 때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입맛이 쓸지도 모르지만 현실은 그렇습니다.
또한 다른 장르의 예술가보다 사진인이 가장 천대받습니다. 이것은 사진인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은 사람이 찍는 것이어야 하는데 좋은 사진기가 좋은 사진을 찍는다고 사진인들 스스로 믿고 떠드니 누가 사진인을 예술인으로 인정하겠습니까?
사진을 예술로 생각하든, 좋은 취미로 생각하든 다 좋지만 사진인 스스로 남들이 꺼려하는 일들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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