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8. 16. 23:00ㆍ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어제 경복궁에 촬영 나갔었습니다.
요 근래에 덕수궁에서 연꽃 전시회를 하고 있어 두 번 갔었는데 그런 전시회는 대개 한 번이면 다 찍을 수가 있어 두 번 이상 가기는 낭비일 때가 많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서울포토클럽 정기촬영을 갔었는데 이미 많이 지친 모습이었습니다. 날이 흐린 탓도 있었지만 시들고 물이 지저분해서 사진으로 찍기는 좀 지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나갈 적에 스프레이를 가져갔는데 거기 관리요원들이 스프레이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했습니다. 잎에 물방울이 생기면 돋보기역할을 하여 빛을 끌어들여 검게 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용하지 않았는데 아닌게 아니라 꽃잎이나 잎에 검게 탄 흔적들이 자주 보였습니다. 날마다 물을 갈아주고 잎을 손보아 줘야하는데 그렇게 하기엔 일손이 부족한지 시간이 지날수록 초라해져 가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 연꽃 전시회도 상업적 목적을 가진 것이라 문화재 관리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도 합니다.
경복궁에 가면 그냥 습관적으로 발걸음이 닿는 곳이 향원정입니다.
향원정은 언제 가도 사진을 찍을 것이 있는 곳이라 다른 곳보다 훨씬 많이 찾게 됩니다. 제가 어제 종묘와 창경궁을 거쳐서 향원정에 도착한 것이 10시 30분쯤 되었을 때인데 이미 수 십 명의 사진인들이 거기서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연못을 반 이상 채우고 있는 수련은 이미 거의 지고 꽃은 얼마 없었지만 군데군데 피어 있는 노란 개연꽃이 그런 대로 연못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늘 다리가 있는 앞쪽에서 사진을 찍는데 어제는 많은 사진인들이 그 반대쪽에서 찍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옮겨서 찍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쪽에서 향원정을 찍게 되면 배경처리가 마땅치 않을 것 같아 그냥 쉬고 있다가 사진인들이 자리를 뜬 뒤에 다시 제가 찍은 곳으로 옮겨 찍었습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게 피어 근래에 보기 드문 배경이 되어 주었습니다. 어제는 광복절이라 라이카를 가지고 나갔는데 펜탁스67을 안 가져 나온 것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라이카로 찍는 것보다는 판형이 큰 67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래도 여기 저기 자리를 옮겨가며 36컷 한 롤을 다 찍었습니다. 주로 28mm f/2.8로 찍었는데 이 렌즈의 화각이 향원정에서는 가장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초여름에 찍은 사진은 28mm 로 찍었더니 사방이 잘려서 나와 어제는 UV필터를 빼고 PL필터를 장착했습니다. 제가 가진 렌즈가 구형이라 그런지 필터를 두 장 겹쳐서 끼우면 많이 먹고 들어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보니 어디서 오신 분인지 연세가 많이 들어 보이는 어르신이 아주 열심히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작은 체구에 수염이 많이 바랬던데 70은 훨씬 넘어 보였습니다. 사진기는 니콘인지 캐논 수동인지 확실치 않았는데 줌 렌즈는 비비타에서 나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놀랄 만큼 집중해서 사진을 찍으시던데 제가 예전에 많이 찍었던 개연꽃을 주로 찍고 계셨습니다. 곁에 가서 아는 체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열중이셔서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인사도 드리고 어디서 오셨는지 묻고도 싶었지만 그렇게 열중하고 계신데 실례가 되는 것 같아 차마 참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 시간 가까이 그렇게 열중하고 찍으시던데 나중에 보니 개연꽃 주변의 불필요한 것들을 쳐내기 위한 지팡이 같은 기구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위태롭게(?) 열중하니까 주변에서 보는 사람들이 다 걱정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연세가 드신 분이 열심히 사진을 찍으시는데 늘 사진기나 렌즈 타령만 하며 시간을 보낸 제 모습이 참 왜소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나이가 먹어 저렇게 까지 사진을 계속 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제 거기 향원정에 왔다 간 사진인이 100명은 족히 넘을 것입니다. 그 중에 그 어르신이 가장 연세가 많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 사진에 대한 열정도 가장 높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르르 몰려 와서 대충대충 찍고는 우르르 몰려가는 사진인들, 저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아껴왔던 렌즈 하나를 내어 놨습니다. 제가 정말 아끼고 아꼈고 지금도 그 렌즈 성능에 대해서는 만족하고 있지만 겹치는 것이 많아 눈물을 머금고 내어 놨습니다. 비비타시리즈원 70-210mm f/3.5. 이 렌즈는 제가 구하려고 무진 애를 썼던 것이고 아주 깨끗한 것을 구해서 잘 써 왔던 렌즈입니다. 그런데 탐론 SP 70-210mm f/3.5-4.0 렌즈를 가지고 있고 펜탁스 SMC-f 70-210mm f/4.0-5.6 렌즈 까지 있다보니 70-210mm 렌즈가 셋이나 되어 사용빈도가 가장 낮은 비비타시리즈원을 내어 놓은 것입니다. 탐론 렌즈는 아답톨만 있으면 캐논 T90과 펜탁스 여러 사진기에 두루 쓸 수가 있어 조금 마음에 덜 들어도 남겨 놓고 비비타시리즈원을 처분했습니다.
아주 저렴하게 내어 놓았으니 누군가 임자를 잘 만나면 좋은 사진을 찍는 것에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렌즈를 사기보다 팔기가 더 어렵다고 하면 믿지 않는 분들도 있겠지만 아끼던 렌즈를 내어 놓기는 정말 아깝다는 것도 이해하실 분들 많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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