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학과에 가겠다고?

2003. 9. 6. 16:33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어떤 고등학생이 이런 질문을 해왔습니다.
지금 2학년인데 사진과를 가려면 어떤 사진기를 준비하고, 지금 시작한다면 늦은 것이 아니냐? 하고…. 제가 학교서 가르치는 학생이 아니고 다음카페 사, 사, 사에서 받은 질문입니다.


솔직히 저는 우리 애들이 사진과를 간다고 하면 말리는 쪽입니다.
아주 예전에 제가 학교에 처음 발을 내디디었을 때, 사진반을 맡아 한 아이가 사진과에 간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제가 가기 전에도 우리 학교에서 사진과에 간 아이들이 여럿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낸 것은 그 아이가 처음이었습니다.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아주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성격인데 사진학과에 가겠다고 해서 제가 잘 생각했다고 격려하며 학원에 보냈고 제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서울예전 사진학과에 들어갔습니다.


그 때만 해도 사진학과가 그리 많지 않았고 중앙대 사진학과를 못 간다면 서울예전이나 신구전문대 사진학과를 가는 것이 낫던 시절입니다. 사진학과를 나오면 진출할 곳도 많았고 해서 자신 있게 보냈는데 이 학생이 군대에 갔다오니까 사진학과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그 와중에 4년제 나와 외국에 유학을 갔다오면 대부분 사진학과 교수로 빠져나갔습니다. 그것이 불과 3-4년 사이에 확 바뀐 일이라 우리 애는 시운이 안 맞은 것입니다.


그러고 얼마 뒤에는 사진이 아니라 이젠 영상시대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니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학생들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어정쩡하게 설자리를 잃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학생을 볼 때마다 늘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4년제 만 나왔더라도 어떻게 자리를 찾아볼 텐데 2년제 나와서 유학을 갔다온대도 그렇고 방황을 하다가 제자는 결혼하여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 뒤부터는 학생들이 사진학과를 간다면 걱정이 앞서 말리게 된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 나라의 많은 학생들이 대학을 가기 위한 방편으로 예체능계열을 선택합니다.
제가 현장에 있기 때문에 이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예체능계열을 간다고 할 때는 대부분 담임교사들이 말리지만 그렇게 선택을 하게된 데는 복잡 미묘한 과정이 많이 있기 때문에 강력하게 저지하지는 못합니다. 공부를 잘 못하는데 담임이 대학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이 첫 째 이유이고, 학원이나 그 밖의 요소가 이미 애들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말려도 듣지 않는다는 것이 다른 이유입니다. 어떤 예체능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소질이 있다고 부추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옆에서 보면 이게 다 욕심 때문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미술을 해서 대학에 가겠다는 애들 열 명중에 일반고등학교에서는 화가가 되겠다는 애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다 디자인계통으로 간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화가가 되어 먹고산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데 누가 화가가 될 아이를 성공할 때까지 뒷바라지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보통 재력을 가진 집안이 아니고는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순수사진을 찍어 먹고사는 사람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저명한 대학교수가 찍은 작품도 사진으로는 가격이 나가질 않습니다. 하물며 강단에 서 있지도 않은 사람이라면 사진을 아무리 잘 찍는다해도 그 실력을 인정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들이 사진학과를 간다고 하면 어찌 걱정이 앞서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사진반을 담당했던 지도교사 때문에 사진학과를 가게 되었다는 말은 정말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취미로 하는 정도를 좋아할 뿐이지 사진학과를 가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얘기할 수는 없지만 이런 요지의 글을 질문한 학생에게 보내고 다시 한번 신중히 생각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학생이 사진학과를 가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사진학과를 나온다고 해도 사진으로 직업을 택하지 않겠다고 하며, 성적이 부족하여 중앙대학교나 상명대학교에 가지 못할 것 같지만 사진학과를 가겠다고 답이 왔습니다.


그 답 글을 읽으면서 제 자신이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그 학생을 한번 만나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너무 현실적인 생각에만 사로잡혀 아이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국문과를 나온다고 다 국문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 사진학과를 나온다고 해서 다 사진으로 먹고 살아야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대학을 나오면 바로 직업현장으로 나가야한다는 제 좁은 소견이 지금까지 다른 아이들의 장래를 제 마음대로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듭니다.


사실 애들의 생각이 너무 이상적일 때가 많아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자주 얘기하는데 그런 얘기들이 아이들의 꿈을 가로막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현실을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제 사정이기도 합니다.


그 학생을 만나보고 싶은 것은 정말 사진에 대해서 그렇게 애정이 있는가 하는 것을 직접 얘기 들어보고 싶어서입니다. 사진을 찍는 것이 그렇게 좋아하는 일이라면, 또 평생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진을 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런 사람들이 사진을 해야한다고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솔직히 사진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미치도록 빠진 것은 아닙니다.
사진에 미칠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미치게 빠져든다면 사진에서도 충분히 건질 것이 있고,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거기까지는 두렵고 그냥 제 일을 하면서 즐기는 취미로 생각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 정도에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다른 것에 한눈 팔지 않고 사진에만 매달려 시간을 보낸 것에 흐뭇해하는 마음이 적지 않으면서도, 과연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의미 있는 일인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결코 후회가 되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 학생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라면 어리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기 장래에 대한 생각이 뚜렷한 학생이라면 좋은 사진인 하나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아이를 만난다는 것, 좋은 친구를 하나 얻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우리 회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 지 모르지만 저는 오늘 그 질문과 그 학생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사진기가 더 좋으냐? 어느 렌즈가 더 좋으냐하는 그런 우문(愚問)들에 대답하기보다는 길을 묻는 것에 대한 대답이 더 어렵겠지만 더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