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11. 23. 21:31ㆍ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오늘 네 번째 주례를 섰습니다.
제가 이 나이에 주례를 선다는 얘기를 들으면 대부분 사람들이 그 나이에 무슨 주례를 벌써 서느냐고 의아하게 생각하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벌써 네 번째 주례를 섰으니 어찌 보면 우습기도 합니다.
제가 처음 주례를 선 것은 벌써 5년 전입니다.
제가 학교에 있기에 제자들 때문에 언제든 주례를 서게 될 것이라는 것은 저도 생각하고 있었지만 5년 전에 처음 주례를 선 것은 제가 가르친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서울포토클럽에서 만난 후배인데, 같이 사진을 찍으러 다니고 술을 마시다보니 제가 주례를 서도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저는 처음에 그 친구가 주례를 서달라고 하기에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그 당시 서울클럽에는 지도교수님도 계시고, 저보다 훌륭하신 어른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정색을 하고, 제가 주례를 서주기를 당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알고, 자기를 아는 사람이 주례를 서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떨결에 마흔 두 살의 나이로 첫 주례를 섰습니다.
광장동에 있는 남서울호텔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그 날은 서울클럽회원들이 대거 참석을 하시어 신랑·신부와 주례를 서는 저를 격려해주셨습니다. 식이 끝난 뒤에 천호동에 가서 뒤풀이까지 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다음에는 제자 결혼식에 두 번 주례를 섰습니다.
제가 늘 아끼던 제자가 있고, 저를 잘 따르던 제자가 있어 그런 제자들 결혼식에는 제가 주례를 설날이 오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했던 제자가 아닌 제자들이 주례를 부탁해와 섰던 것입니다. 두 번째 주례를 서게 된 제자는 고등학교 때 속을 많이 썩힌 제자였습니다. 무단 결석을 50일 넘게 하여, 학생부에서 담임인 저더러 제적시키라고 압력을 넣었지만 저는 끝까지 담임은 못하니까 교장 명령으로 제적을 시키라고 버텨서 간신히 졸업을 시켰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대학에는 진학하지 못했지만 태권도사범으로 군에 가서 하사관으로 복무했는데 이미 아이를 낳은 상태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첫 주례를 설 때도 조금 떨려서 애를 먹었지만 두 번째도 떨었습니다. 제자들이 많이 와서 흐뭇했던 자리였습니다.
세 번째 주례는 제가 1년 담임을 하고, 2년을 가르친 아이였습니다.
그 아버지도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는데 아버지 친구가 저와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시어 제가 담임이 아니었는데 그 선생님이 제게 맡겨서 1년 담임을 했었습니다. 사실 그 때는 그 선생님이 주례를 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는데 제자가 제게 부탁을 해와 제가 선 것입니다. 식장에 가보니 양가 친인척이 대부분 지방에서 오신, 연세 드신 분들이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식장이 호텔이어서 예식장보다 집중되는 상황이라 부담도 되었지만 떨지 않고 제대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많은 제자들이 하객으로 와서 인사를 하고, 만나고 하니 무척 흐뭇한 자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네 번째 주례였습니다.
오늘 결혼식을 올린 제자는 이미 예전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가 주례를 서겠다고 했는데 그것이 현실로 된 것입니다. 오늘 결혼식을 올린 제자는 제가 담임을 한 적도 없고, 가르친 적도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연이란 묘한 것이어서 고3 시절과 졸업한 뒤에도 자주 만나 술도 많이 마시고, 여행도 같이 다니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연락이 끊겼는데 두어 달 전에 우연히 남대문상가에서 만났습니다. 남대문 사진기상가에 잠깐 들렀는데 제자와 그 여자친구가 디지털카메라를 사러 왔던 것입니다.
그 여자 친구도 이미 여러 해전에 같이 만났던 적이 있었지만 계속 유지되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같이 만나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셋이 맥주집에 가서 한잔하며 여러 얘기를 나누었는데 결혼을 물으니 머지않아 할 것이라고만 대답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결혼할 때 주례를 서달라고 해서 그러기로 대답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고는 잊고 지냈는데 지난 11월 첫 주에 제자가 전화를 해서 11월 23일에 결혼식을 올리니 주례를 서달라고 부탁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의례적인 사양을 했는데 진심으로 부탁을 하는 것이라고 정중하게 얘기를 해서 승낙을 했습니다. 결혼 2주전에 만나서 다시 인사를 받고 선물도 받았습니다.
날이 다가오자 또 부담스러웠습니다. 다른 제자보다 특별한 사이였고, 박사학위를 받기 전인데 고등학교 은사인 저보다 대학의 지도교수가 주례를 서는 것이 여러 모로 도움이 될 것 같았고. 저처럼 젊은 사람이 그런 자리에 선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금도 아쉬움이 남지 않게 해야겠다는 마음에서 주례사를 여러 번 고쳐가며 교실에서 연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주례사가 너무 길면 지루하고, 너무 짧으면 싱겁게 끝나기 때문에 그 시간 조절과, 연설 형식을 취해야할지 대화형식으로 해야할지도 고민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어제 오전까지 대충 마무리를 지었다고 생각을 하고는 어제 결혼하는 제자 동생 결혼식에 갔습니다. 주례를 선지가 오래 되어서 감도 익힐 겸 주례서시는 다른 분도 볼 겸 갔던 것입니다.
어제 결혼한 신랑과 신부는 고등학교와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이었고, 주례는 신랑이 근무하는 부천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셨습니다.
객석 맨 앞에 앉아서 하나, 하나를 유심히 보았는데 교장 선생님이 아주 편안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결혼식을 진행해나가는 것을 보고 아주 많이 배우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 분 교장 선생님은 메모지도 없이 말씀을 하시는데 아주 겸손하시고 여유가 있으시어 학생들 때문에 소란스러운 식장이 경건하고도 즐거운 자리가 됬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그 교장 선생님의 모습에 배운 바가 있어, 제가 썼던 내용을 대폭 수정하였고, 경직되지 말고 부드럽게 해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결혼식에 간다고 했더니 또 다른 제자가 자기네 회사에서 접대용으로 쓰고 있다는 벤츠 최고급 승용차로 모시러 왔고, 제 친구부부도 격려하러 와 주었습니다. 예식장에서 멀지않은 곳에 살고 있는 대학 후배도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다고 찾아와서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조금 긴장이 되기는 했지만 먼저 했던 것보다는 상당히 여유 있는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식이 끝나고 신랑의 선·후배 되는 많은 제자들이 찾아와 인사를 하고, 주례사가 감명깊었다고 얘기를 해주어 속으로 많이 흐뭇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대로 다 하지는 못 했지만 제 스스로 생각해도 웬만큼은 된 것 같았습니다.
식이 끝나고 친구부부와 함께 영화도 한편보고 술도 한잔하고 들어왔습니다. 주례를 선다는 것은 결혼하는 부부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한다는 부담도 되지만 그로 인해서 더 열심히 살아야되기 때문에 제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례서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앞으로 제자들 결혼에 몇 번은 더 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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