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5018)
-
망가진 정치가 부른 전쟁
조금 과장을 보태면, 지금의 중동전쟁을 예고한 전조는 빵이었다. 가자전쟁부터 이스라엘-이란 전면전 위기까지 일련의 사태는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테러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이보다 1년 반 전, 2022년 4월 6일 이스라엘 국회의원 한 명이 돌연 탈당을 선언한다. 당시 집권당 야미나의 원내대표였던 이디트 실만은 하메츠(누룩으로 발효시킨 빵)를 문제 삼았다. 유월절엔 하메츠를 안 먹는 유대교 관습이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당을 떠났다. 크네세트(국회) 120석 중 61석, 단 한 석 우위로 아슬아슬 유지되던 집권연정은 그의 ‘빵 탈당’에 깨지고 말았다. 그 연정에는 의석을 가진 13개 정당 중 8개가 참여하고 있었다. 아랍계 소수당까지 긁어모아 부패 혐의로 기소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몰아..
2024.10.04 -
검찰 내부서도 ‘부글부글’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사건이 결국 무혐의 처분으로 종결되자 검찰 내부에선 “국민이 어떻게 볼지 걱정” “대통령실도 책임 있는 것 아니냐” 등의 의견이 분출했다. 수사팀은 “법률가의 양심에 따라 내린 결론”임을 강조했지만 수백만 원 상당의 명품가방을 받았는데 처벌할 수 없다는 수사 결과는 국민 공감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컸다. 특히 제2부속실 설치 등 정무적으로 해결했어야 할 일을 검찰이 떠안은 것이란 불만도 나왔다. 한 간부급 검사는 2일 “법리를 떠나 영부인이 금품을 받았다는 건 도덕적으로 창피한 일”이라면서도 “국민들은 명품가방을 받았는데 적용할 처벌 조항이 없다는 부분에 의구심이 많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한 평검사는 “법리와 무관하게 검찰 신뢰도는 더 떨어질 것 같다”며 “이제 검..
2024.10.03 -
두 일본인의 쓸쓸했던 추석
지난 추석 오후, 망우역사문화공원 산책길을 걸었다. 서울에는 추석 연휴 마지막 날까지 역대 가장 늦은 폭염 경보가 내려졌다. ‘2024년 뒤끝 더위’ 속에 ‘가을저녁’(秋夕)이 무색했다. 흠뻑 젖은 등허리의 땀을 식히기 위해 망우산 고갯길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춰 섰다. 저 멀리 한강 물줄기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도 바로 이곳에 섰다. 지금의 구리시 ‘건원릉’ 묫자리를 친히 답사하고 흡족한 마음으로 환궁하던 중이었다. 그러고는 ‘내가 이 땅을 얻었으니 근심을 잊을 수 있겠다’라고 경탄했다 하여 이곳을 ‘망우리’(忘憂里)라 이름 붙였다. 다시 망우산 숲속 사잇길을 짚어 내려가는데, 봉긋이 솟아오른 봉분마다 성묘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깊이 뿌리 박힌 잡초를 솎아 내고 흙탕물로..
2024.10.02 -
집 나간 전어
옛 문헌에 전어는 화살 전(箭·정약전 ‘자산어보’)을 쓰기도, 돈 전(錢·서유구 ‘임원경제지’)을 쓰기도 했다. 바닷가에선 화살 한 묶음처럼 열 마리씩 묶어 팔던 값싼 생선이지만, 내륙 도읍에선 비단 한 필 값에도 사먹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연간 십 수만t씩 잡히던 1980년대만 해도 해안지방에서 다른 생선을 사면 덤으로 주는 ‘箭魚’였는데, 2000년대 ‘며느리 컴백’ 마케팅과 함께 각지의 전어축제가 성황을 이루며 ‘錢魚’의 입지를 다져 왔다. 전어구이는 한국과 일본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입맛을 보여주는 대표적 요리다. 일본인은 전어 굽는 냄새를 왠지 역하다고 여겨 주로 초절임이나 초밥을 해 먹는 반면, 한국에서 집 나간 며느리는 회도, 무침도 아닌 전어 기름이 타는 그 냄새에 돌아온다. 이에 ..
2024.10.01 -
이재명·조국 `호남 쟁탈전`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10·16 재보선에서 호남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두 당에 호남이 갖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패한 쪽은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호남 승부를 좌우할 새로운 변수가 하나 떠오르고 있다. 전남 영광지역에 잔존하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를 향한 팬심이다. 이 팬심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영광군수와 곡성군수 재선거 중 관심이 모아지는 곳은 영광군수 재선거다. 유력 주자 중 한명이었던 장현 후보가 민주당을 탈당해 혁신당 후보로 출마하는 등 정치구도에 변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2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장세일 민주당·장현 혁신당 후보와 이석하·오기원 무소속 후보가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국민의힘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 각..
2024.09.30 -
청와대 관저에서 맴돌던 의문
지난 추석 연휴 기간 가족 친지들과 함께 청와대를 둘러본 뒤 머리를 맴돌던 물음은 이런 것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왜 이곳에 들어오지 않고 무리한 이전을 추진했던 것일까.’ 제왕적 대통령제의 상징적 공간인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고 국민 곁에서 소통 행보를 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취지는 어찌 보면 가히 혁명적 발상이었다. 과거 왕조 시대의 유물인 왕궁 개방부터가 혁명적 체제 변화에 동반된 것이었다. 현대 들어서도 1979년 이란 혁명으로 탄생한 이란이슬람공화국은 구체제 타파를 기념하기 위해 팔레비 왕조의 왕궁을 전면 개방해 박물관 등으로 활용했다. 권력 공간을 옮기는 것은 단순한 지리적 차원의 이전이 아니다. 과거 권력과의 단절 및 체제 전환이라는 시대사적 함의가 담긴 것이다. 민주적 대통령제 시대..
2024.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