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우 수필집(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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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금, 돈키호태는 아니어도
능금, 돈키호태는 아니어도 그는 그리움에 산다. 그리움은 익어서 스스로 견디기 어려운 빛깔이 되고 향기가 된다. 그리움은 마침내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져 나온다. 떨어져 와서 우리들 손바닥에 눈부신 축제에 비할 바 없이 그윽한 여운을 새긴다. -김춘수, 「능금」에서, 호태는 국문과 83학번이다. 83학번 남학생 중에서 내가 졸업을 한 뒤에도 서로 연락하고 지낸 사람이 호태, 기윤이, 종수, 석영이인데 호태와 기윤이는 국문학과 동기면서 고등학교도 제천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드문 경우였다. 호태는 강원도 영월이 고향이고 기윤이는 충북 제천이 고향인데 둘이 같은 고등학교와 같은 학과를 다닌 거였다. 우리 국문과에 제천고등학교 출신이 여러 명이 있다. 81학번 태한이, 82학번 미희, 83학번 호태와 기윤이, 86..
2012.03.26 -
귀천(歸天). 기윤이 하늘로 가다
귀천(歸天). 기윤이 영면하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천상병, 「귀천(歸天)」에서, 83학번 기윤이는 2015년 9월 14일에 세상을 버렸다. 9월 8일 화요일에 화곡고등학교 홍규 선생이 문자를 보내 기윤이가 암이 뇌로 전이되어 위독하다고 토요일에 강남세브란스 병원에 문병을 가자고 했었다. 그 토요일은 내가 고향으로 벌초하러 가기로 되어 있는 날이었다. 나는 그날 갈 수가 없었지만, 이 사실을 기윤이와 가깝게 지내던 포천여자중학교의 호태에게 전했다. 그리고 김포 공항에 있는 중기에게도 전화로 알렸다. 두 사람이 다 일이 있어 그날 갈 수가 없다고 해서 그럼 우리끼리 날을..
2012.03.26 -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형이와 규범이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형이와 규범이 낙엽이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조병화, 「낙엽끼리 모여 산다」에서, 84학번 지형이는 내게 가까운 국문과 후배 중에 끝번이다. 지형이와 단짝이었던 석만이가 있는데 이 친구는 필리핀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는 말만 풍문으로 들었고 못 본지가 20년이 넘었다. 지형이는 재수해서 국문과에 왔고 당시 78명 중 차석으로 들어왔다. 내가 3학년 때 국문과 학회장을 지냈는데 1학년 과대표였던 지형이를 종그락 부리듯 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형이에게 많은 일을 시켰다. 그때 학회장인 나를 도와 일..
2012.03.26 -
사모님, 선생님을 따라가시다
귀촉도. 사모님 소천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서정주. 「귀촉도」에서 2018년 9월 27일 목요일이었다. 6교시 수업이 끝난 뒤에 교무실에 와보니 영희 선생으로부터 부재 중 전화가 와 있어 바로 전화를 했더니, 우리 선생님 사모님이 어제 별세했다는 부음을 전했다. 많이 울었다고 목소리가 영 안 좋았다. 영희 선생이 세세하게 얘기를 하지 못하고 울먹여서 길게 통화를 하지 못했다. 나는 내일 조문을 가겠다고 영희 선생에게 얘기를 하고는 선생님 따님인 우리 양에게 전화를 했는데 우리 양도 경황이 없어서 두서가 없는 말을 해서 내일 가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집에 와서 ..
2012.03.26 -
우리 선생님께
우리 선생님께 나는 떠난다. 청동의 표면에서 일제히 날아가는 진폭의 새가 되어 광막한 하나의 울음이 되어 하나의 소리가 되어. -박남수. 「종소리」에서, 선생님, 평안하신지요? 선생님께서 하늘나라로 가신지 벌써 15년입니다. 시간은 언제나 똑같다고 하지만 요즘 들어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벌써 예순다섯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서울 북창동에서 대희, 수명이, 흥술이, 정숙이, 순희와 즐거운 시간 갖고 선생님 얘기 많이 했습니다. 대희는 몇 년 전에 명퇴를 했고, 수명이는 작년 8월 31일에 정년 퇴임, 저는 올 2월 28일에 정년 퇴임을 했습니다. 흥술이는 2025년에 정년 퇴임이라고 합니다. 선생님, 저희가 다 별 탈 없이 교직생활을 마칠 ..
2012.03.26 -
고 백
내가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을 하면 대부분 믿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친구나 심지어 집사람까지도 내가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을 하면 농담으로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결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술에 취해 목숨을 잃을 번한 일도 있었으며, 어디 가서 ..
2012.03.25